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씨방 Jan 02. 2019

'좋은 것 같아요'라는 말

주머니탐구생활#07. 꼼지락꼼지락

지난 한 해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좋은 것 같아요”다.

누군가 의견을 물어올 때, 특히 상사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를 구해올 때 내가 하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회의실을 나와서도 고갯짓이 멈추지 않는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흔들 머리 인형처럼 끄덕끄덕, 종일 삐그덕삐그덕. 주머니 속 손만 꼼지락댄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본 그림이 기억난다. 

한 리포터가 야구 선수에게 “이번 시즌에서 우승한 소감이 어떻냐”고 질문하자, 야구 선수는 이렇게 답했다. “기쁜 것 같아요.”     


이 그림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 서술하시오.     

이 질문의 답은 이렇다. ‘~같다’는 추측하거나 짐작하는 말이므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다. 다시 말해, 나의 기분을 왜 내가 짐작하냐는 것이다. 당시 나는 야구 선수의 말에 밑줄을 긋고 이렇게 적었다. ‘이겨서 아주 기뻐요.’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내 기분이나 입장을 표현할 때 “~것 같다”고 말한다.

저도 좋은 것 같아요. 괜찮은 것 같아요. 몸이 조금 안 좋은 것 같아요. 주로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을 때 또는 예의를 차려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한다. 그보다는 당장 난감한 상황을 넘기려고 사용할 때가 많다. 회의를 마치려고,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고, 눈치껏 병원에 가려고.  


이렇게 말하다 보면 나중에는 뭐가 좋고 괜찮다는 건지, 진짜 몸이 조금만 안 좋은 건지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런 것 같은’ 나의 말과 입장은 습관이 됐다. 내가 내 상태를 짐작하기 시작할 때, 작아지는 기분이랄까.


내가 기쁘거나 슬플 때 그 감정을 그대로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내가 기쁘거나 슬프다는 걸 알아챌 수 있을까. ‘괜찮아요’라는 막연한 말처럼 ‘좋은 것 같아요’라는 말 뒤로 숨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지.

   

‘이겨서 아주 기뻐요’라는 말이 정답인 걸 알지만 나는 ‘기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말에 연신 끄덕이다,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기 위해 끄적인다.     

매년 돌아오는 신년 계획에 한 줄 추가한다.


나를 함부로 짐작하지 않기.
작가의 이전글 9년 사귄 애인과 헤어졌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