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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Dec 21. 2020

201221

텀블러


오늘의 비움, 굿즈 텀블러 

무심결에 쌓아두는 물건이 있다. 첫 가입자 혜택 990원짜리 내복, 마트 계산대 앞에 놓인 사탕,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서 몇 천원 더 보태면 살 수 있는 굿즈. 오늘 비울 물건은 참, 귀엽지만 내게는 쓸모없는 굿즈다.


우리 집 옷장 마지막 선반에는 불투명 파우치가 하나 있다. 겉만 봐서는 어떤 게 담겨 있는지 모른다. 옷장을 여닫을 때 '그런 게 있다'는 존재만 확인하고, 언젠가 '아 거기에 그게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할 때 열어본다. 오늘은 이 파우치를 열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책꽂이 한 칸을 비워서 그 자리에 파우치 속 물건들을 꺼내놓았다. 


파우치에는 자석, 엽서, 성냥, 수첩, 그리고 온갖 입장권과 영수증 등 여행 가서 산 물건이 있었다. 여기에 텀블러도 있었다. 텀블러는 여행 가서 산 물건이 아닌데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사놓고 안 꺼내보는 물건'이다. 차이점도 있었다. 텀블러는 내게 어떠한 추억도 없다는 점.


올해 봄이던가, 온라인에서 책 두세 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결제하려고 보니 몇 천 원 더 보태면 이 텀블러를 살 수 있었다. 안 사면 손해일 것 같았다. 심지어 빨간머리 앤이 그려져 있다니 너무 귀엽지 않은가. 손잡이도 있어서 갖고 다니기에 요긴해 보였다.


~보였다. 

우리 집에는 텀블러가 열 개는 족히 있다. 어디서 기념품으로 받아왔거나 선물로 받았다. 텀블러를 발견하면 '이게 있었지, 다음에  써야겠다'하고 생각하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이 텀블러 또한 첫 개봉 시에만 "우와!" 하며 받아 들었을 뿐, 이후로는 파우치에 담겼다. 이제 나보다 잘 쓸만한 사람을 찾아 보내준다.


내게 필요한 물건과 필요 없는 물건을 구분하는 게 중요한 일이 되었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날, 비우고 싶은 것과 비워야 좋을 것도 함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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