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시작은 이 라이프 맵핑이다. 대학 시절 한 수업에서 나의 미래 모습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때 나는 대학만 들어가면 큰 고비는 넘은 거라고, 앞으로의 사건 사고는 드라마 씬이 넘어가듯 컷컷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뭐 내적 성숙도 필요하니까 적당히 버틸 고비 몇 개쯤 필요하다는 생각 아니 '상상'도 했다.
나의 라이프 맵핑을 형상화한다면, '상상'이 왼팔과 왼발을 아래로, 오른팔과 오른발을 위로 향한 채 엎드려 누워 있는 모습일 것이다. 한마디로 나자빠져 있다. 당시에 너무나 당연하게 적어 내려 간 나의 모습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물로켓보다 맥없이 지금의 시간으로 고꾸라졌다. 핑곗거리는 있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허무맹랑, 순화하면 추상적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알아챘지만 부끄러워서 이 라이프 맵핑을 꺼내볼 엄두도 내지 않았다. 라이프 맵핑의 존재를 떠올릴 때마다 '뭐라도 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자책만 하다가 일단 지르고 본 게 <주머니 탐구생활>이다. 결과적으로는 책이라는 걸 냈고, 사실적으로는 변한 게 없다.
이후로도 어디 뒀는지 모른 채 지냈다. 그런데 예기치도 의도치도 반갑지도 않게 일기장 사이에 책갈피마냥 껴 있었다. 역시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는 게 아니었다.
라이프 맵핑에 대해 설명하면, 뜻 그대로 인생 지도다.
"5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질문에 아래 일곱 가지 항목으로 답한다.
세계 world - 어디에 있는지
타인 other - 누구와 있는지
시간 time - 구체적인 시간은 언제인지, 또 그 모습에 이르기까지 매해 무엇을 했을지
능력 power - 그 모습이 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자신 self - 나의 기분과 상태는 어떨지
의도 intention - 왜 그것이 되었는지(되고 싶은지)
의미 meaning -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요즘 들어 '수치사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오늘 또 수치사 한다.
2009년의 나는 2014년엔 독일에서 종합예술 퍼포먼스를 할 거라고 적었다. 이유가 '내가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는데, 쉽게 말해 관종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최근에도 나는 내적 관종임을 인정했다.
일기장이 불편한 이유도, 이 라이프 맵핑이 불편한 이유도 같다. 지금의 나와 많이 다른데, 아직도 변하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어서일 테다. 불편한 라이프 맵핑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고,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