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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Dec 06. 2018

'착하다'와 '착하게 굴어라'

주머니탐구생활#03. 주먹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꾹 쥔다.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여?" 이런 말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캐릭터상 하지 못한다.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몇 초간 주먹을 쥐었다 마는 수밖에. 나는 어릴 적부터 착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어떤 상황에도 잘 웃고, 도움을 주며, 내 몫을 나눠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게 호의적이다. 내가 착한 일을 하면 "역시" 하며 웃어 넘긴다.     


나와 가까운 사람도 웃어 넘길 수 있을까?

남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소홀했다. 중학교 때 부쩍 가까워진 친구가 있다. A와 나는 반은 달랐지만 관심사도, 개그 코드도 잘 맞았다. 내 말을 잘 이해해주는 만큼 함께 있으면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루는 A가 방과 후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당시 나는 같은 반 B와 하교를 했다. 하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이 복잡했다. ‘B에게 같이 못 간다고 얘기해야 할까?’, ‘그럼 B는 혼자 집에 가야 하나?’, ‘이번 일로 B가 나와 같이 놀지 않으면?’. 더구나 A와 B의 집은 반대 방향이었다. 결국 나와 A와 B는 같이 교문을 나섰다. 보도블록이 좁아서 셋이 나란히 걸을 수도 없었다.     


나는 B와 걸음을 맞추며 뒤따라오는 A를 살폈다. 그렇게 B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A와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나는 ‘친하니까 이해해주겠지’ 하고 넘겨짚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B에게 미움을 받지 않았다. B가 점심을 따로 먹자고 하지도, 다른 친구들에게 내 험담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B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당장의 어려움은 면했지만, A에게는 두고두고 이기적인 캐릭터로 남아 있다.     



착하다고 쓰고 ‘이기적이다’라고 읽는다. 

어떤 상황에도 잘 웃고, 도움을 주고, 내 몫을 나눠준다지만 사실은 내가 당장 편해지려고 하는 일이다. 어떤 웃음은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이고, 어떤 도움은 그 사람이 내 상사이기 때문이며, 내 몫을 나눠주는 건 입씨름하느라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불편해진다.

내가 편해지려고 한 일들 때문에 사람들의 말을 곱씹으며 불쾌해하고, 뒤늦게 내 일을 시작하고,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만큼 갖지 못한다. 어떤 상사는 "수고해"라는 말도 없이 돌아간다. 어떤 친구는 "먼저 가볼게" 하며 뒷정리를 맡긴다. 또 어떤 사람은 "저는 안돼요"라며 마치 나는 되는 사람처럼 여긴다. 어느 순간 나의 친절은 사람들에게 '당연한 일', 스스로에게는 '자알 하는 짓'이 돼버렸다. "고맙다"는 말이 "그렇게 안 봤는데" 하는 말로 바뀌는 것도 시간 문제다. 이때 배신감을 느껴야 하는 건 나의 몫일까 아니면 자신의 편의대로 나를 재단한 사람들의 몫일까. 내가 편해지기 위해 한 일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 때

이제 와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과연 나는 편해졌을까?


이따금 착하다는 말이 ‘착하게 굴어라’라는 말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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