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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Dec 12. 2018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주머니탐구생활#04. 속옷

주머니에 속옷을 숨겨둔 적 있다.

건조대에 널린 속옷 중 깨끗한 걸 가져다가 몰래 내 외투 주머니에 숨겼다. 중학교 수학여행 전날이었다.


우리는 같은 속옷을 입었다.

나는 언니가 세 명 있다. 많게는 아홉 살 차이가 난다. 언니들과 공유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속옷이다. 한집에 살 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같은 속옷을 입었다. 우리는 생리 주기와 사이즈가 다 다르다. 또 한 사람당 일주일에 한두 번씩만 입어도, 속옷은 일주일 내내 세탁기에 처박힌다. 나는 조금이라도 깨끗해 보이는 속옷을 보면 서랍 깊숙이 넣었다. 다음날이면 감쪽같이 사라졌지만. 반대로 누군가 숨겨놓은 속옷을 내가 찾은 적도 많다.


속옷이 조이는 게 ‘속옷의 문제’가 아닌 ‘내 몸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속옷이 꼭 조이는 게 살이 쪄서 그런 것인 줄만 알았다. 며칠을 굶어도 똑같았다. 왜 나는 덩치가 클까 하고 생각했다. 원망했던 것 같다. 다른 애들처럼 스포츠브라를 입겠다고 욕심부린 것도 아닌데. 우리 집의 문제, 아니 우리 집에 사는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레이스가 과하게 달렸거나 튀는 색깔의 속옷을 입을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같은 반 남자애가 내 티셔츠를 빤히 쳐다봤다. 창피해서 그만 울었다. 그 뒤로 브래지어가 비칠까봐 구부정하게 다녔다. 목욕탕에 가면 바지와 팬티를 동시에 내렸다.


그렇게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속옷을 입고 사춘기를 났다.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20대 후반이 됐다. 그만큼 ‘내 것’이 아닌 속옷을 함부로 입는 데에도 면역이 생겼다. 언니들 중 몇은 결혼해서 집을 나갔고, 시발비용으로 속옷 몇 벌쯤은 살 수 있다. 언제든지 변화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지만 선뜻 ‘내 것’을 갖지 못한다.


다른 한 번은 속옷 가게에 들어갔다가 “속옷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하는 직원 말에 다시 나왔다. “잘 모른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사이즈를 모른다고 말하는 게, 어떻게 보면 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잘 모른다는 무책임한 말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굳이 변화를 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또는 위안을 했던 것 같다. 옷에 내 몸을 맞추는 일, 옷보다 나 자신에게 문제점이 있다는 말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만다.


어쩐지 작더라.

나는 ‘한 번 입어본 것들’ 그러니까 ‘굳이 물어보고 입어보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산다. 그래서 미련해지나보다. 입고 나면 꼭 종아리에 자국이 남는 바지를 지금도 입고 있다든지, 조금만 걸어도 물집이 생기는 신발을 내일 또 신을 계획이라든지 하는.


거의 매일 함께하지만, 거의 매일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을 서랍에 넣는다.

누군가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어보면 나는 서랍 속 옷들을 죄다 끄집어내야 한다. 그리고 사이즈표를 하나하나 살피다가 이내 입을 다물어버릴지 모른다. 차라리 이렇게 질문해주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가장 깊숙이
숨겨 놓는 옷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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