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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Dec 20. 2018

가벼운 송년회

주머니탐구생활#05. 맥주

맥주 네 캔을 사서 주머니에 넣는다.

송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산다.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고, 또 혼술을 하며 이날 어떤 기분이었는지 곱씹고 싶어서다. 매년 여는 송년회지만 올해 송년회를 하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크게 새롭지 않은 사실 하나, 만나는 사람만 만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평소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과 송년회 약속을 잡았다. 대개 이런 사람들과 만날 때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보느냐’를 더 고민하게 된다. 그동안 연락이 뜸했다는 건 달리 말해, 나와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접점이 적다는 걸 의미한다. 상대방이 모든 걸 정해주면 편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착한 사람’ 아니 ‘호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추려서 다시 연락을 돌리다 보면, 적어도 이삼일은 신경이 쓰인다.     


결국 그 사람을 위해 소수정예 그룹을 만들고, 송년회 당일에도 그 사람의 구미에 당기는 이야깃거리를 풀어놓게 된다. 여러 번 겪다 보니 차라리 마음 편한 쪽을 택하기로 했다.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말 대신 ‘잘 지내’라는 인사를, ‘조심히 들어가’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주머니 깊숙이 휴대전화를 밀어 넣는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 하나, ‘예전의 나’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나의 송년회 멤버들은 고등학교 동창과 대학교 동창 두 개 그룹이 있다. 무모하고, 엉뚱하고, 또 자기 멋에 잔뜩 취했던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여서 옛날 이야기를 질겅질겅 씹어 먹는다. ‘그때 걔가 그랬는데’. 이런 말 한마디가 나오면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다.


동창들과의 만남이 추억 갉아먹기가 될 수 있다고들 한다. 옛 향수에 취해 현재의 자신을 돌보지 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중 과거 백만장자였다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향수는 치사량이 될 수 없다. 웃어넘길 수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입버릇처럼 ‘그립다’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그립다고 해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이제 잘 알고, 마냥 그리워하기엔 눈앞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결국엔 ‘나 자신’이라는 걸 잘 안다. 나는 예전과 지금이라는 어떤 시간에 서 있기보다 그냥 나다운 사람이 되는 중이다.     


그렇게 믿는다.

내게서 멀어진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았다고 믿는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또 만나게 된다고도 믿는다. 다시 만나게 됐을 때 먼저 손을 건넬 자신도 있다고 믿는다. 추억은 앞으로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도 믿는다. 학창 시절에 지녔던 엉뚱함을 잘 세공해서 실현시킬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믿는다. 송년회를 할 때마다 이런 믿음이 강해진다. 씁쓸한 것도 잠시, 조금 더 가벼워졌다고 생각한다.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를 마시며 ‘수고했어, 기특해’ 하고 격려해준다. 한 해, 두 해 송년회를 거듭하며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외향만큼 생각도 달라진다. 한 살, 두 살 먹었다고 해서 꼭 단단해진다는 법은 없다. 초연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줘도 좋겠다.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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