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2020년 6월 말에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임신 39주 차, 출산 예정일을 겨우 며칠 앞두었을 때였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상복을 입었습니다. 빈소에 의자를 하나 놓고 아빠, 동생, 남편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던 시기였지만 엄마 가는 길에 들러 주신 조문객들에 얼굴을 맞대고 한 분 한 분 인사를 드렸어요. 사람들은 제게 "엄마가 손자 눈에 밟혀 어찌 갔을까. 보고 가시지"라며 안타까운 위로를 건넸습니다.
제 마음이야 오죽했겠나요. 엄마가 손자를 안아보고 가셨으면 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제가 절실했지요. 하기로 했던 자연분만 대신 제왕절개 수술로 예정일을 당겨서라도 엄마에게 아이를 안겨 드리고 싶었어요. 현대 의학의 힘으로 못 할 일도 아니니 수십 번, 수백 번 고민했지요. 그렇지만 엄마는 '순리대로 하자'고 했습니다. 오고 가는 것은 사람이 정하는 일이 아니니, 하늘이 이끄는 대로 두자고요.
그렇게 엄마는 아이를 보지 못하고 먼저 갔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뱃속의 아이에게 얼마나 부탁을 했던지 모릅니다. 엄마를 고이 보내드릴 수 있도록 삼일만 기다려 달라고요. 임신 막달은 아이가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였으니까요. 저는 장례식에서 산통이 오면 곧바로 출산하러 갈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도, 아이가 삼일은 지나고 나와 주기를 하늘에 빌고 또 빌었습니다. 활달하던 아이도 평소보다 얌전한 것이, 제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같았습니다.
장례를 치른 지 열흘 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엄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손자였습니다.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나서야 아이는 잠잠한 날을 골라 세상에 왔습니다. 갈 사람이 가야 올 사람이 온다는 듯, 엄마를 먼저 보내고 나니 제 때와 자리를 찾아왔어요. 감사한 일이지요. 그 덕분에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온 정성을 다해 제 인생에서 가장 크고 슬픈 안녕을 고할 수 있었으니까요. 엄마가 말했던 우리의 순리는,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그 계절엔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저는 창가에 놓인 작은 탁자에 앉아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내가 우는 것인지 비가 오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요. 엄마 잃은 슬픔이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슬픔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이 복받쳤어요. 엄마를 떠나보내는 동안 이 조그만 생명체가 뱃속에서 저를 기다려 주었다니요. 저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배냇저고리에 싸인 작은 아기 몸에 손가락을 대면 '도닥 도닥' 뛰는 심장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저를 위로하는 것처럼요. 작고 통통한 손과 발을 쥐고 있자면 엄마가 제 배에 손을 대고 태동을 느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를 끌어안고 '나는 너에게 나는 평생 고맙고 애틋한 마음을 안고 살겠구나' 생각했어요.
이 아이는 엄마가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희망이었어요. 엄마는 고통을 잊기 위해 모르핀에 의지하는 와중에도 며칠이라도 더 살고 싶다 했습니다.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요. 이겨내리라고 굳세게 마음을 먹었어요. 마지막 수술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지만, 그 수술을 하려고 결단했던 것도 "하루라도 더 살아 수현이 아이 낳는 것까지 볼 수 있다면"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이 아이는 엄마에게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엄마가 어디선가 저와 아기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엄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아이니까요. 다른 친정엄마들처럼 곁에서 챙겨주지는 못해도 멀리서 우리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엄마'라는 이름을 물려 받아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 딸을 응원하면서요. 엄마는 마지막 눈 감는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제 생각을 했겠지요. 그러나 걱정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잘 해낼 거라 믿었을 겁니다.
저는 이 귀한 아이를 잘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의 엄마가 되는 축복을 누리고 있어요. 엄마가 생전에 저와 아이를 두고 기도해 준 덕분이겠지요. 슬픔을 헤쳐내느라 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던 숱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겪어내야 했던 격한 감정의 파도를 이 아이도 같이 넘어왔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에 함께 해 준 것에, 그리고 무탈하게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에 저는 일평생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기 백일에 엄마에게 쓴 편지
(2020년 10월 14일)
엄마, 우리 애기 벌써 백일이야.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 엄마가 하늘에서 사랑으로 지켜주고 있나봐.
우리 애기 반달 같은 눈웃음이 예쁘다. 살이 포동포동 오른 허벅지도 무척 귀여워. 접종열 앓은 적 한 번 없이 건강하고 우유도 왈칵왈칵 잘 먹어. 이제 아빠 엄마 알아볼 줄도 알고 다른 사람 품이 다른 것도 알아. '잘 커주어 고맙다'는 말, 엄마 아빠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키워보니 이보다 고마운 것이 없네.
이런 나를 엄마가 참 대견해할 텐데.
겨울에 엄마가 키위 사와라, 딸기 사와라 했던 생각이 나네. 흔쾌히 다녀올걸 귀찮아했던 게 후회가 돼. 엄마가 힘에 부쳐서 나가지는 못하고 뱃속에 든 울 애기랑 나 생각해서 시킨걸 뻔히 알았으면서 왜 그랬을까. 엄마가 먹으라던 음식들도 복스럽게 더 잘 먹을걸.
그래도 엄마, 애기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 엄마가 걱정하는 마음 반, 믿는 마음 반이었어도 이런 나를 보면 엄마가 괜히 걱정했다 싶을 거야. 우리 딸 '역시 잘하네' 했을걸.
우리 애기, 으스러지게 안아주고 싶도록 예뻐져 가고 있어. 낳은 직후엔 엄마가 나 낳고 놀랐댔듯이 새빨간 신생아였는데 요즘은 하얗고 보드랍기 그지없어. 표정도 처음엔 세상만사 초월한 것처럼 할애비 같더니만 지금은 아주 깜찍하게 재롱을 잘 부려. 백일 되니 너무 예뻐서 이전엔 예뻐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이렇게 나도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 가고 있어.
엄마, 나 사랑 많이 주면서 잘 키울게.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사랑이 흘러넘쳐 다른 이들까지 서로 사랑하게 하는 아이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