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살아 있을 때 목소리를 녹음해 둔 파일들이 있어요.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도 차마 그 파일들은 열지 못했습니다.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쉬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열어 볼 마음이 생겼지만 차일피일 미루었어요. 어떤 날은 날씨가 흐려서 기분이 안 나고, 어떤 날은 집이 어수선하다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요. 여전히 용기가 안 났던가 보아요.
지난주는 가을 하늘이 어찌나 맑고 푸르던지요. '엄마 목소리를 듣기 좋은 날이다'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경기도 설악면 산골짜기 마을로 무작정 행선지를 정하고 집을 나섰어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산등성이 사이로 차를 몰아 가는데 꼭 소풍 가는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경쾌한 기분이라면 엄마 목소리를 들어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어요.
마을 어귀는 금빛으로 물든 느티나무가 반기고 있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늘어져 터널을 이루었어요. 오후의 햇살이 나뭇잎에 산란돼 반짝이며 차창에 와닿았습니다. 산들산들 가을바람이 불고 가녀린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흔들렸어요. 실개천을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소리도 들려왔어요. 긴장이 점차 설렘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가을빛으로 물든 산이 굽이 굽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배기에 차를 세웠습니다. 음악을 한 곡 듣고 바람을 한 번 쐬고, 이제 엄마 목소리가 담긴 녹음 파일을 켜기로 합니다. 에세이를 쓸 때 배경음악으로 자주 듣는 ‘The Whole Nine Yards(냉정와 열정사이 OST)’가 산골짜기에 잔잔하게 퍼져 나갑니다. 3분 58초가 흐르고. 음악이 끝이 납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내 쉬어요. 녹음파일이 담긴 폴더를 열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파일 하나를 누릅니다.
"... 엄마는 아빠랑 너희가 있어서 마음은 행복했어."
2019년 7월 17일 오전 9:41 시한부 선고 후
너무나도 듣고 싶던 엄마 목소리가 산 중에 메아리처럼 울립니다. 하늘이 넓게 내려다 보이는 곳에 오면,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 오면, 감정도 무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그리운 마음이 밀려와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어제도 들은 것만 같은 이 생생한 목소리가 벌써 삼 년도 더 된 것이라니.
녹음 날짜를 보니 엄마 수명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어요. 울고불고 분노하고 부인하다 마침내 끝이 온다는 것을 받아들이던 순간이었습니다. 엄마는 다가올 마지막을 앞두고 아빠와 함께 모든 것을 정리한 후의 감정을 제게 풀어놓고 있었어요.
엄마는 '돌아보니 잘 살았다'라고 말했어요. 아빠를 만나 딸 둘 낳아 키우면서 행복했다고요. 둘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지만 알뜰살뜰 저축하고 살림해서 집도 사고 열심히 살았다고 합니다. 이만하면 엄마 떠나고 아빠가 혼자 남더라도 다른데 신세 안 지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는 되겠다며 안심하네요. 엄마가 밝고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다 정리해 놓고 나니까 아빠가 그러더라.
'당신 덕분이다'라고.
아빠가 고생했다고 인정해 주니까 기분이 나아지더라."
그 음성을 들으니 지난 삼 년간 묵히던 감정이 바람을 타고 아스라이 흩어지는 것 같았어요. 엄마가 스스로 잘 살다 갔다고 생각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엄마를 떠나보내면서 안타까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구태여 슬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대화는 그때 그 시절에 멈추어 있습니다. 때때로 엄마와 얘기 나누고픈 순간들이 있지만 이제는 할 수가 없지요. 엄마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만 현재진행형이길 바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만족해요.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 속에 담긴 뜻과 마음은 제 평생 가슴에 남아 힘이 될 테니까요. 오래도록 우리의 이야기를 되새기고 생각할 겁니다.
파일을 자주 열어 듣지는 못할 것 같아요. 지금도 사진조차 수시로 열어 보지는 못하거든요.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 엄마가 아주 많이 그리울 땐 이곳에 와서 먼 하늘을 보며 엄마 생각을 맘껏 하려고 해요. 용기가 나면 지금처럼 엄마 목소리도 듣고요. 하늘 어딘가에서,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엄마를 떠올리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