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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Oct 22. 2023

엄마와의 마지막 인사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부산에 내려갔던 그 새벽에 엄마는 이미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떠난 뒤였어요.



엄마가 숨을 거두기 일주일 전, 제가 엄마를 간호했던 겨우 며칠이 우리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어요. 2020년 6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일 때였던 터라, 느닷없이 병원 방침이 바뀌어 코로나 발생지인 서울・경기 지역에서 온 사람은 병원에 출입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하고 하루를 꼬박 기다려 음성인걸 확인해야 한다는데 당시에는 오히려 선별검사소에 갔다가 감염이 된다는 둥 흉흉한 말이 많았지요. 주수를 꽉 채운 임신 막달이었던지라 온 가족이 검사를 못하게 말렸어요. 그러니 전날 "엄마, 잘 쉬어. 내일 또 올게"하고 나갔는데 그게 우리가 마지막으로 얼굴 보고 인사한 거예요.



병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망연자실 선 제게, 엄마 아빠가 전화로 "집 가서 짐을 챙겨 서울 올라가. 몸조리 잘하고 건강하게 아이를 낳아"라 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엄습했어요. 전화를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슬픈 예감이 느껴졌습니다. 어제까진 아이 낳고 엄마를 다시 볼 거라 믿었는데, 오늘은 그 희망이 불씨 꺼지듯 사그라들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친정집으로 돌아가는 가는 겨우 20분 사이에 저는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심장이 불에 타들어가는 것 같고 그 연기에 질식할 것처럼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어요.



친정집에 도착해 서울로 가지고 갈 짐을 싸 놓고는 식탁에 앉았습니다. 정신을 부여잡고 엄마에게 편지를 썼어요. 아빠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면서요. 그러나 끝내 그 편지는 전하지 못했다고 해요.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내일 생신인데 큰 딸이 생신상도 한 번 제대로 차려주지를 못했네. 이번 생신에는 엄마가 갖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해서 선물도 안 샀어.

대신에 엄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예쁜 아기, 건강하게 잘 낳아서 선물처럼 안겨 줄게. 코로나 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못 했지만, 나 아이 잘 낳고 내 몫을 잘하고 올게.

마음이 무겁지만 강하게 먹으려고 해. 엄마도 그러니까 마음 강하게 먹어.

아빠도 너무 사랑하고 고마워. 어떻게 아빠가 엄마의 남편이, 그리고 우리의 아빠가 되어 주었는지 하늘에 늘 감사해. 수인이도 누구보다 엄마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정성, 너무나 고마워. 네가 엄마 곁에 있어서 든든하다.

병원 못 들어가더라도 하루라도 더 있다 갈까 이런저런 고민이 됐지만, 엄마 아빠가 내게 바라는 게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지금 떠나.

나도 최선을 다 할게. 사랑해.

2020년 6월 20일  
엄마 생신 전날, 수현








화장터에 화로 온도를 알리는 적색 숫자가 점점 올라갔습니다.  500도, 600도, 700도... 그리고 900도를 넘어. 엄마를 담은 관이 하얀 재로 변해갔어요.


활활 타는 그 불빛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제 엄마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던 암이 다 타 버리는구나. 이제 엄마의 뼈와 살을 파고들던 그 지긋지긋한 암은 더이상 없는 거구나. 엄마, 고통 없는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우리는 암 투병하며 힘든 순간에도 서로 깊이 사랑하며 삶을 살아 나갔어요. 마지막까지 엄마는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엄마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아빠가 엄마 곁을 끝까지 지켜주었고, 저와 동생, 제 남편이 엄마를 온 진심을 다해 챙겼으니까요. 우리는 엄마가 있어, 엄마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 참으로 행복했어요.



엄마를 떠나보내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다 느껴져 사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긴 시간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를 깊이 그리다 보면 사는 의미가 수면 위로 선명히 떠올라요.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 서로가 서로의 곁에 존재하며 고된 인생길에 용기가 되어 주는 것이요.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누구나 다 이별을 합니다. 누구는 먼저 가고 누구는 나중 가기에 그게 너무나 마음이 아프지요. 평생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며 같이 살아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니까요. 그러나 엄마와 딸로든, 아내와 남편이든, 언니와 동생이든 서로 깊은 인연이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하늘이 우리에게 서로 가족으로 살아갈 인연을, 함께 누릴 시간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건 큰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거예요. 엄마를 먼저 보내고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이지요. 엄마가 좋은 곳에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는 이곳에서 할 일을 다 마치고 가면 됩니다. 다시 만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에 그립고 슬프지마는, 그 슬픔에 매몰되지는 않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맘껏 사랑하고,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하고, 엄마가 제게 준 이 귀한 삶을 다 누리며 살아갈 겁니다. 엄마를 다시 만날 때, 엄마에게 '이 아름다운 삶을 내게 주어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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