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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Jul 03. 2020

[첫사랑]들꽃의 수줍은 고백

첫사랑 그 남자 이야기 첫 번째-고백

# 첫사랑 그 남자 이야기  번째-고백 편


2박 3일간의 서울 일정.

서울로 발걸음 향할 일이 없는 나로서는 서울길에 마음이 동할 줄 알았는데 애먼 기찻길 위에서 설레고 말았다.


전날 밤을 꼬박 지새우고 아침 일찍부터 길을 재촉하여 떠났으니 열차에서 잠을 청하거나 차창 밖 풍경에 젖어 복잡한 머릿속이나 훔쳤어야 했는데  놈의 핸드폰이 문제였다.


늘 내 것이라 말하지 않아도 내 것처럼 조용하던 핸드폰이 아침부터 카톡들과 각종 알림으요란법석을 떠는 바람에 나름 신이 나서 핸드폰에 빠져들고 있을 때쯤 KTX 차내 방송 시그널 음악인 california vibes - steve varakatt 위로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동대구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동대구? 맞아, 동대구!'

동대구란 단어에 내 의지 따위와는 상관없이 이미 내 심장은 촐싹거리고 있었다.


브라운대학교의 레이철 헤르츠(Rachel Herz) 교수가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후각(냄새)을 통한 기억. 즉, 프루투스 효과가 시·청각을 통한 기억보다 오래가고 그 날의 감정 또는 감성 전달에 더 우세하지만, 정확한 기억. 즉, 예컨대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가' 등을 떠올리는 데는 시·청각 기억이 후각을 통한 기억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방정맞은 심장 박동 소리를 따라가니 그 언저리엔 내 첫사랑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 기차 타고 동대구역을 오간 적이 몇 번 있어'

010-8300-5143 쓸데없는 기억력은 왜 핸드폰 번호를 소환하는지.  괜찮다. 번호 바꿨더라. 



스무 살 여름 방학, 나는 함양 용추 자연휴양림으로 인턴쉽나갔다. (별명) 행주, 노구, 진성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임학과 동기 4명과 휴양림 관계자 연으로 알바 왔던 대구한의대생 ROTC 오빠까지 이렇게 5명은 2006년 그해 여름 휴양림을 수호하는 독수리 오 남매가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며 나는 처음으로 스쿠터 타는 법을 배웠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산길에서 타는 스쿠터의 맛은 제법 쏠쏠했다. 나지막이 깔린 구름을 가로지르는 맛이란 청량한 사이다를 맑은 막걸리 잔에 섞은 맛이랄까? 그 맛에 취해 정말 하늘 위로 슈퍼맨이 되어 날아가버린 적도 있지만 말이다. 하하하. 다쳐서 아팠지만, 뭐 괜찮았.


우리는 계곡에 노는 아이들과 누가 더 피라미를 많이 잡나 내기를 걸기도 하고 호루라기 삑삑 불며 "거기서는 취사 안돼요! 나오세요!" 소리치고는 어느 틈에 아줌마, 아저씨 무리에 여 소주 한잔에 고기 한입씩 날름 받아먹으며 애교쟁이들이 되어 이 집 저 집 예비 사위, 며느리로 찍혀가 섞여 놀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TV도 인터넷도 안 되는 산속 생활이 지겨워질 때 즈음 내 책상 위에는 매일 아침이면 들풀에 엮어진 들꽃 다발이 요구르트병에 꽂힌 채 놓여 있었다. 누가, 왜 가져다 놓는 건지  없었다.


성수기가 되자 나의 애마(스쿠터)는 내 차지가 될 틈 없이 바빴다. 지뢰 찾기와 솔리테어도 할 만큼 했더니 정신없이 바쁘던 낮과는 달리 산속의 밤은 어찌나 길고 또 . 사무실에서 멍하니 밤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는 나를 지켜보던 ROTC 오빠가 나를 포터 옆자리에 태워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별구경을 시켜주었다.


휴양림 콘도와 방갈로, 그 속에서 바비큐 파티하는 사람들의 환희와 캠핑하는 이들의 낭만 사이에서 바라보는 별빛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정말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운 산속에서 볼 수 있는 밝고 영롱한 별빛과 그 별빛의 반짝임에 맞춰 지지직 거리는 잡음 너머 들려오는 라디오 DJ의 나긋나긋한 소리는 분위기 아주 멜랑꼴리 하면서도 한여름밤이지만 좀 서늘하고 둘이 있기엔 깜깜한 밤이라 무서운..? ROTC 오빠는 포터와 함께하는 멜랑꼴리 별 관측에 나를 두 번 더 초대했는데.. 아마 고백하려고 그랬나 보다.


며칠 뒤, 동기 중 한 녀석이 방음 안 되는 직원 숙소 방 벽을 두드리며 나를 마구 놀리듯 말하길,

"(쿵쿵)야?!야!! 김보혜!! 자나?! 충성이 행님이 니 좋아한대!! 사귀어라!! 야?!야!!푸핡핡(쿵쿵)"

'저 새끼가 돌았나 -_-.. 뭐라 쳐 씨부리노 지금'

머쓰마 쉐키들 장난 놀음에 휘둘리기 싫어서 대꾸도 안 했더니 문자 폭탄질을 해대며 놀리기 시작했다. 얇은 가벽 너머 '아~ 행님', '인마', '마', '얌마'들 끼리 난리부르스가 가관이었다.


인턴쉽이 끝나고 집에 가기 일주일 전, ROTC 오빠는 예상대로 나에게 고백을 했고 난 거절했다. 그리고 집에 가기 하루 전 오빠는 얘기 좀 하자며 정자에 나를 데리고 올라가 한번 더 고백을 했고, 그땐 이미 휴양림 식구들 모두에게 소문이 난 뒤라 모두가 내 대답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Yes"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들꽃으로 처음 마음을 표현했던  남자는 나에게 노란 제비꽃처럼 다가와 하얀 제비꽃처럼 사랑해줌으로써 나로 하여금 비로소 보라 제비꽃을 알게 하였다.

#. 제비꽃 꽃말
노란 제비꽃 : 수줍은 사랑
하얀 제비꽃 : 순진 무구한 사랑
보라 제비꽃 : 사랑


°첫사랑°

수줍게 사랑했기에,

순진 무구한 사랑 나눌 수 있었다.

생애 두 번 다시는 나누지 못할 그런 사랑을...




@첫사랑 그 남자 이야기 첫 번째-고백

@첫사랑 그 남자 이야기 두 번째-사랑

@첫사랑 그 남자 이야기 세 번째-이별


별일 없다면 남은 첫사랑 이야기도 연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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