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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Jul 30. 2020

미친 싸움닭으로의 빙의

세 번째 이야기

대학교 졸업 후 나는 바로 그해 2010년 5월 9일에 봄의 신부가 되었다. 신랑 측 우인보다 신부 측 우인이 더 많은 결혼식이었으며, 눈물 글썽이는 부모를 앞에 두고 좋아서 웃음 짓는 신부가 어쩌면 방정맞아 보이던 결혼식이었다. 남편은 긴장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난 무대체질이라 그런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나 빼고 다 긴장한 듯했다. 아빠도 나의 면사포를 밟아 나를 뒤로 "악!"하고 비명횡사하게 할 뻔했으니 말이다. 모든 신부가 눈물을 글썽이양가 부모 인사 시간에 좋아서 히죽거렸다. 맛이 가도 제대로 맛이 갔지 싶다.


남편이 총각 때 살던 작은 빌라에 우선 신혼집을 차렸다. 남편 집에 처음 갔을 때, 현관문을 열면 대리석 바닥에 골프채와 낚싯대가 세워져 있고 양주장과 소파 옆으로 놓인 큰 화분들이 이쁘게 꾸며져 있었다. 거기에 최신 가전제품까지 혼자서 사는 집 치고는 너무 잘해놓고 살고 있어서 입이 벌어졌었다. 거기다 신발장과 옷장 안에는 깔 맞춰 줄지어진 옷과 신발이 각을 잡고 서있었다. 정말 깔끔 그 자체였다. 그때만 해도 집이 괜찮았는데, 지금 현재는 완전히 썩었다. 부실 공사된 건물이라 하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이사가 나의 첫 번째 꿈인데 과연 언제 이뤄질지 모르겠다.


우리가 결혼할 때 즈음 학생들도 불법 토토를 한다고 뉴스에 나올 만큼 불법 스포츠 토토가 한창 성행했었다. 보통 불법 토토의 경우 단속을 대비해 해외에 서버를 연다고 한다. 나는 경남 진주에 거주하는데, 그때 진주 사람 한 명이 국내 서버를 잠시 열었단다. 그리고 남편의 지인이 그 사람 서버를 통해 토토를 했단다. 영업계 수익구조가 그렇듯 직접 판매도 좋지만, 판매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소위 새끼를 쳐야 한다. 불법 토토도 마찬가지다. 소개를 하면 그에 대한 인센티브와 함께 소개한 이가 잃는 돈에 대한 일정 금액도 먹는다고 하니 눈에 불을 켜고 끌어들일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남편은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불법 토토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 것이었다.


먹물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쉽게 검어진다는 근묵자흑 [近墨者黑]과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그대로 남편이 보여주었다. 당시 음료 유통사업을 했던 남편은 경제력도 있었고 내가 유산 후 다시 임신을 하자 피우던 담배와 술도 단번에 끊었던 사람이었기에, 그저 해봤자 남자들 담뱃값이나 많아야 술값 정도를 쓰겠거니 하고 두고 보았다. 나중에 이것이 나에게 화근이 되어 돌아올 줄도 모르고 말이다.


임신 6개월 즈음되니 남편은 중독자처럼 토토에 빠져들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TV, 컴퓨터, 핸드폰은 물론 남편의 모든 신경과 감각은 스포츠로 향했다. 아마 이때 가진 돈을 거의 다 잃었지 싶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지갑이 접히지 않을 만큼 빵빵히 현금을 넣고 다니며 베짱이처럼 많아야 하루에 4시간 일하던 남편은 매일 하는 사우나로 광대에서 반질반질하게 은은한 복숭아 빛이 났었다. 그랬던 남편 얼굴이 어느 날 보니 턱수염이 삐죽삐죽 솟아 나와 씻어도 완전히 냄새나게 생긴, 말 그대로 몰골이 완전히 썩은 인간상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일확천금을 향한 남편의 탐욕은 모든 돈을 잃은 뒤에야 끝났다. 이. 때. 가. 지. 는.


아이가 태어나니 살림살이는 더욱 힘겨워졌다. 시댁이 하동 이라 쌀농사를 지어 다행히 쌀은 팔아 올 수 있었지만, 반찬거리는 하나도 없어 늘 냉장고는 휑하니 텅텅 비어있었다. 흔하디 흔한 계란은 무슨, 냉장고에 있는 거라곤 전기가 돌 때 감도는 냉기와 촌에서 가져온 김치뿐이었다. 집에서 쓸 화장지조차 없었고, 전기와 가스도 들락날락, 유선염으로 젖 한번 물리지 못한 아기는 빈 분유통 앞에서 배고파 울기에 바빴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내 친구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화장지며 부식 거리, 아기 분유와 기저귀, 옷 등을 종종 사다 넣어 주고 가곤 했다. 또 기죽지 말고 힘내라며 좋고 예쁜 옷 한 벌 입어라며 백화점 상품권과 마트 상품권도 잊지 않고 선물해주었다. 나는 그걸 아꼈다 나한테 안 쓰고 남편 기죽지 말라며 백화점에서 남편 신발을 사다가 선물해 주었다. 내가 미친× 이다. 그런데 남편 친구들은 그 와중에 남편이 빌려 간 돈을 갚아라며 연락을 해왔다. 내 기억에 금액이 크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대단한 우정에 화나서 눈이 돌았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내 정신이 정상적이길 포기한 순간이. 미친 싸움닭이 되어 파르르 날뛰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가고 아기와 나 단둘이 있는 낮시간엔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그렇게 많았다. 캐피털 직원이든 카드사 직원이든 돈과 관련해서 찾아오는 사람은 누가 되었든 무섭지가 않았다. 올 테면 와봐라! 싸울 테면 싸우자! 식이였다. 그때 내 나이라고 해봤자 고작 스물다섯 살. 나는 이미 반쯤 돌아서 미친 싸움닭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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