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혜 Jul 30. 2020

내 사주를 탓하지마

다섯 번째 이야기

미친 싸움닭이 되어 싸우는 것도 지쳐갈 때 즈음 살이 십여 킬로 빠지면서 온전히 정신줄을 놓았다. 이유 없이 온몸이 아팠다. 이러다 죽을 것만 같아 친정엄마에게 손을 벌려 종합검진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몸에 전혀 이상이 없다. 진통제도 듣지 않았고 계속된 불면의 밤은 나를 괴롭혔다. 애써 괴로운 마음을 술로 달랬다 양주 진열장에 있던 양주는 한 병씩 비어져 나갔다. 독한 술로 나를 채워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뚜렷한 정신이 싫었다.


보다 못한 엄마는 간단한 짐만 챙긴 뒤 나와 아이를 집에서 끌고 나왔다. 그렇게 힘들면 남편과 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못가 나는 뺨을 맞고 짐 싸서 집을 나갔듯 또다시 지후를 엎고 바리바리 짐을 싸진 채 그 지옥 굴 속으로 내 발로 다시 기어들어갔다. 그냥 남편이 죽이고 싶도록 미운데 그만큼 또 좋아서였다. 엄마손에 끌려나갔다 집에 기어 들어가길 두 번을 반복했다. 답답했던 엄마는 그사이 용한 점집을 찾았나 보더랬다. 내가 신병이란 소리를 들었단다.


신병이라니! 위중한 병에 걸려도 사람 심리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더 큰 병원을 찾게 돼있다. 엄마도 그랬다. 내가 정말 신병인 건지 용하다는 점집은 전국구로 찾아다녔다. 열에 아홉은 시기의 차이일 뿐 귀신을 탄다거나 내가 신의 제자가 될 몸이라고 했다. 사주팔자 여덟 글자 중 여섯 글자를 무당 글자로 타고난 데다 귀문관살까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하라는 굿은 다 했다.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굿을 했겠지만 난 가끔 헛웃음도 나왔고 여기서 조금만 더 미치면 하루 종일 실성한 듯 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나위는 점점 거세져가고 그에 맞춰 무녀의 칼이 내 가슴을 타고 내렸다. 그때 굿판 징소리에 흥이 올랐는지 딩가딩가 엉덩이 춤을 추는 두 살 배기 아들내미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시나위 리듬 위에 올라선 내 감정이 터질 듯 울려댔다.

*시나위: 무당굿 할 때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반주


또 어느 스님은 날 가르쳐 제자로 삼겠다며 두 살 배기 아이와 나를 제주도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이와 내가 묵을 방에는 거미줄과 죽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방을 대충 치우고 나니 저녁을 먹으란다. 밥상 위에 덜렁 놓은 배추김치와 흰쌀밥. 아직은 이유식을 먹어야 될 아이이기에 김치는 매워 흰밥을 맹물에 꾹꾹 말아 아이 입에 떠 넣어주고 나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니 어찌나 참담한지 소리 없는 통곡만이 계속 나올 뿐이었다.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나가야겠단 생각에 기지를 발취했다. 포대기에 엎고 있던 아이 허벅지를 꼬집어 계속 울려댔다. 그리고 스님을 찾았다.

“스님, 저는 공부에 매진하고 싶은데 아이가 이렇게 자꾸 울어대니 집중할 수가 없네요.

내일 날 밝은 대로 뭍에 나가 아이를 어디에든 맡기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옷가지도 다 버린 채 도망치듯 이튿날이 되어서야 나와 아이는 몸만 제주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점이란 게 그렇다. 타로도 배워봤지만 믿고자 하면 끊임없이 그 방향대로 나아가게 된다. 어차피 인간의 육신이든 정신이든 수만 가지인 듯 보이나 묶어보면 열 가지로 나뉘고 또 묶으면 아홉이요, 여덟이요,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셋은 둘이요, 둘은 곧 하나다. 하나의 세상은 둘인 음양의 조화로 굴러가고 그 안에 삼위가 있으며 사상이 존재하고, 오행이 있고, 육신과 칠정, 팔괘구궁, 십 완성이 이루어진다. 이 말인 즉 순리대로 흘러간다는 거다. 무당이라고 영적일 순 없다. 자연히 순리대로 흐를 거 어떠한 존재나 점괘에 나를 맡기지 마라. 또한 자신을 믿어야지 자기를 믿어서는 안 된다. 쉽게 말해, 자기는 내 생각이고 자신은 자아의 생각이나 정신쯤이라 말하면 이해하기 쉬우려나.


이날 이 엄마는 역학을 배웠다. 그리고 나에게 귀문관살이 있다고 말했. 그래서인지 여전히 나의 예지력을 믿는 눈치다. 나는 이 사건 이후 웬만한 종교를 섭렵하면서 철학과 도를 익혔다. 사실 어떻게 보면 사주팔자 여덟 글자 자체가 모두 귀신 글자다. 그러니 사주팔자 여덟 글자 중 여섯 글자가 무당(귀신)글자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깊이 설명하긴 난해하니까 패스하고! 난 그 어떤 종교도 그 어떤 존재도 안 믿는다. 그러니  사주를 탓하지는 마!

이전 05화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