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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Aug 04. 2020

타의로 열정의 문을 닫다

여섯 번째 이야기

나는 아르바이트에 이어 결혼 후에도 먹고살기 위해 병원코디네이터, 화장품 방문판매, 백화점 판매원, 실크 검단원, 사무경리, 보험&카드 영업, 학습지 교사,.. 등 별 가지 직업에 온 열정을 쏟아부어보았다. 사무경리는 내 성격과 도저히 맞질 않았고, 학습지 교사는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고학년과 학부모 관리에는 무리가 없었는데 유아회원 관리가 힘들어 스트레스가 많았다. 이 두 가지 일 빼곤 모두가 재미있고 적성에 맞는 직업이었다. 특히 병원 관련 일과 화장품 방문판매는 꽤 잘했었다. 병원코디네이터는 아이를 낳기 전에 일을 했었는데 너무 심한 입덧과 유산기가 있어 일을 병행할 수 없었고, 그다음 직업이 화장품 방문판매원이었다.


제주도에서 도망치듯 나온 뒤 지후와 나는 엄마 집(울진)으로 갔다. 집이 아닌 낯선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곳에서 뒤죽박죽 엉퀴고 설킨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무작정 저 멀리 떠나고 싶기도 했으나 갈만한 곳도 여비도 마땅찮았다. 때마침 엄마가 울진 진하해변 근처로 이사를  있었고 아쉬운 대로 엄마 집으로 지후를 엎고 짐을 싸들고 향했다.


사람이 생각이 너무 많아 복잡할 대로 복잡해지면 생각 없이 멍해진다. 마치 연필의 흑심으로 황칠을 해나가다 보면 하나의 검은 점이 되어버리거나 종이가 뚫어져 나가 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나의 생각들도 아주 복잡하게 뭉쳐서 없는 듯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는 우울하고 단조로워졌다. 나에게서 더 이상 생산적인 활동을 기대하기란 어려워졌다. 그저 곰처럼 잠을 자거나 뭐에 홀린 듯 애니팡에 빠져 순위를 올리는  둘 중 하나에 그쳤다.


2012년 말, 당시 엄마는 그렇게 굿을 하고 난리를 쳤음에도 스물다섯 나이에 멍하니 비실비실거리는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뭐라도 해서 자립해 일어서길 바랬다. 난 우유부단한 성격에 자립심과 결단력이 없는 편이라 매일 같은 엄마의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에 내 귀는 푸라락 날아가버렸다. 엄마의 조언대로 지후가 아직 어리니 병원 일 같은 몸이 메이는 일은 할 수가 없고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화장품 방문판매 일을 시작해보기로 한 것이다. 마침 친구 엄마가 아모레에 연봉 1억이 넘는 수석지부장으로 계셔서 친구 엄마의 도움을 받아 이듬해 봄부터 일을 시작했고 나는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비누 하나도 포푸리 포장을 하여 꼬리 택을 달아 손글씨로 메모를 하는 등 남보다 정성을 두배로 들이는 전략을 썼더니 소개 영업이 의외로 잘 됐다.


화장품 방문판매는 일종의 영업직이라 기동력이 있으면 좋은데 나는 차가 없는 뚜벅이 영업을 했다. 말이 좋아 뚜벅이 영업이지 워낙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웬만하면 제품 전달은 택배로 거의 다 해결해버렸다. 그래도 가끔씩은 직접 가져다줘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땐 날 잡아 움직이다 보니 양손 가득 제품으로 짐이 많았다. 하루는 진주 외곽지역으로 버스를 타고 나가게 되었는데, 고객이 양손에 들린 내 짐을 보더니 제품을 전달받고 들어가는 걸음에 돌아와서는 쥐어진 내 주먹 틈 사이로 만 원짜리 한 장을 끼워 넣으며 "아야~ 짐도 무거운데 택시 타고 가라" 하고는 다시 되돌아가셨다. 나는 손에 만원을 쥔 채 택시 타는 척을 하다 택시비가 아까워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이 돈으로 뭐하지?' 이런 생각이 스치면서 지후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싶단 마음이 생겼다. 눈에 문구점이 띄기만을 기다리다 버스에서 내렸다. 내려서 보니 작은 문구점이었다. 장난감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기라 괜히 버스비만 날린 거 아닌가 걱정하며 들어섰는데 주인의 환영 인사가 너무나 힘차다. 마치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다행히 저쪽 구석 한편에 장난감 코너가 작게 꾸려져 있었다. 나는 지후에게 멋진 장난감 자동차를 사주고 싶은데 만원으로는 언감생심이었다. 그저 내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장난감을 고르는 내 손길 위로 쭈뼛함이 서려 들었다.


무슨 고집이었을까. 그냥 낚시놀이 이런 걸 사서 같이 놀아줘도 되었을 텐데 그냥 그땐 자동차여야 했었는지 자동차만 보였다. 한 대에 7,000원. 손바닥보다 작은 미니 자동차들이 몇 종류 있었다. 경찰차 모양을 골라 계산한 후 품에 안고 나왔다. 조그마한 자동차 하나를 안에 안고 있으니 문득 만 원짜리 종이 한 장이 주는 감사함과 가혹 하디 가혹한 잔인함에 어찌나 만감이 교차하며 요동치던지 도저히 감정을 수습할 길이 없더랬다. 나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버스를 타는 것도 포기한 채 한 시간 남짓을 흐느끼며 집까지 걸어갔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빨리 돈을 벌어 이 구질구질한 삶을 벗어나고 싶었으므로. 마냥 돈만 좇진 않았다. 열정이 있었기에 일에 정성과 마음을 다했다. 덕분에 지인과 고객을 통한 소개 영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항상 실적 걱정도 없었고, 1년 뒤 팀장도 되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화장품 영업은 판매액의 30%가 아닌 수금액의 30%가 마진으로 떨어진다. 거기에 여러 수당이 붙어 내 월 소득이 발생되는 것인데 이런 남편이 자고 일어나면 돈이 들어와 있는 수금 통장에 손을 몇 차례 대면서 돈 회전이 구멍나버렸다. 지저스~


사무실에 없던 미수금이 발생했다! 이럴 때 내 철칙은 빨리 발을 빼야 한다. 안그럼 영업일은 빚의 늪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열정과 커리어로 3년간 일군 업을 한 순간에 정리하고 백화점에서 일하며 사무실 미수를 조금씩 갚아나갔다. 타의에 의해 신나게 정성 쏟아 열심히 일하던 내 업에서 손을 떼야만 할 때 그만큼 커리어에 있어 억울함을 느낄 일도 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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