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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혜 Aug 09. 2020

2012 정신과 치료의 시작

일곱 번째 이야기

제주도에서 나오고 내가 자립하길 원했던 엄마의 뜻에 따라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이전부터 힘든 현실 앞에 나는 우울함을 계속 호소했고 이를 지켜보던 아가씨(남편 여동생)가 하루는 전화가 와서는 나에게 정신과에 내원해볼 것을 권했다.


정신치료기관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심사 평가 후 부여하는 등급이 있다. 5개 등급 중 숫자가 작을수록 시설도 좋고 정신과 치료를 잘한다고 보면 되는데, 해당 기관이 몇 등급에 속하는지는 심평원 사이트에서 조회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경남지역은 등급이 우수한 정신의료기관이 거의 없다. 내가 거주한 진주 지역은 대학병원이 그나마 등급이 좋다. 처음엔 이런 것을 몰라 집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급 정신과를 찾았다.


접수를 하고 간호사와 몇 마디 질의응답을 나눈 후 간호사가 주는 설문 검사지에 천천히 볼펜으로 표시해 나갔다. 그리고는 의사를 만났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려는데 나오는 눈물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잠시 진정한 뒤 얘기하고 울다 얘기하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더니 약 처방과 주사 처방이 나왔다. 링거를 맞으니 사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그동안 못 잤던 잠도 잘 왔다.


집에 와서 원내처방받은 약을 검색해보았다. 우울증, 수면장애, 알콜의존, 공황장애에 대한 약이 처방되어 있었다. 그리고 급할 때 먹으라고 준 신경 안정제와 신경 발작을 가라앉히는 약이 더 있었다. 그와 더불어 힘들면 언제든 와서 링거를 맞고 가라고 하셨다. 그만큼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을 보이는 상태라고 하셨다.


나는 밖에서 일하면서 고객 앞에서 웃으려 있는 힘을 다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을 할 땐 활력이 돌았으나 집으로 돌아갈 때면 병든 병아리 마냥 비실거렸다. 제일 겁났던 건 예고 없이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하늘이 핑그르르 돌면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릴 때였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으억'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119를 부르려다 차라리 계속 이러느니 죽기를 기다렸다.


수면제를 용량을 늘려 먹어도 잠이 들지가 않자, 나는 수면제를 먹지 않았다. 5일을 1분도 잠을 자지 않으니 빨간불에 길을 건너는 일이 벌어졌다. 차들은 나를 향해 무수한 경적을 울려댔는데 그 소리조차 종이에 방울방울 떨어져 번진 내 눈물 자국처럼 울려 퍼져 희미하게 들려왔다.


본전 생각에 남편은 계속해서 토토에서 손을 떼지 못했고 급기야 내가 잠이 든 틈에 몰래 수금 통장에 까지 손을 댔다. 안 그래도 구질구질한 현실에 시궁창 같은 삶을 겨우 버티며 살고 있는데 하루를 겨우시 살아내고 눈을 감았다 뜨면 또 살아내야 할 새로운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래서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다.


지금은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그때는 사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죽는 것이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삑삐삑삐 소리가 들려 천천히 눈을 떴는데 산소 호흡기가 보인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온 가족이 둘러 모여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 '아.. 실패했구나.. 제발 날 좀 죽게 내버려 두지 대체 왜 살려놨어'였다. 원망의 눈물이 흘렀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이런저런 검사를 진행하더니 당장 정신과 입원 치료를 권했으나 거부했다.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겠다 하고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내가 다니던 병원은 병원급 정신과였지만 심평원 등급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시설이나 치료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쇠창살로 만들어진 문과 두꺼운 철창문이 이중으로 굳게 철컹! 닫히면서 나는 병동 속으로 분리됐다. 그곳은 냉랭하고 음습한 공기가 가득했다. 병동 보호사의 눈빛은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보호사는 마치 그곳에 있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냉정하고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럴만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고 있는 여자부터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를 쭉 응시하는 남자까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나는 아플 뿐이었지 아무리 내가 미쳐도 이들과 한 무리에 섞여 있을 만큼 미쳐있어 보이진 않았다.


식은땀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갔어? 나 두고 갔어? 집에 갔어?” 보호사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나를 붙들어 잡아 행동을 저지했다. 때마침 닫히는 문틈으로 병동 안을 살짝 본 엄마도 열악한 시설에 발걸음이 안 떨어지던 찰나에 철문 넘어 내 목소리가 들려오더랬다. “엄마 나 안 미쳤어! 이렇게 안 미쳤어! 나 여기 못 있어! 여기서 데리고 나가 제발!”소리치며 서럽게 울어댔다. 그때 엄마의 요구로 철문이 열렸고 나는 말그대로 무서운 정신병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설 나쁜 일부 치료기관에 관한 이야기며, 몇 년 전 이 병원은 폐업하였다. 입원을 고민하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입원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후 대학병원에서 두 차례 입원 생활은 하루하루 재미있었다. 정신과 치료를 함에 있어 입원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외부와 차단된 환경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고, 외래에서 행해지는 짧은 상담 시간에 비해 긴 상담과 함께, 이제껏 진료받아왔던 모든 내용을 주치의나 담당의와 함께 하나씩 되짚으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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