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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r 08. 2021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2

눈밭에 쓴 이름

       雪中訪友人不遇 설중방우인불우   눈길에 벗을 찾다.        

                                      이규보李奎報(1168-1241)     

  

雪色白於紙         눈밭이 종이보다 하얘서                 

擧鞭書姓字◎     채찍으로 내 이름을 써 놓았지.        

 莫敎風掃地        모쪼록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여 

 好待主人至◎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렴.        

                                    <우리시로 읽는 漢詩>     


  이 시에는 자연에 대한 화자의 행동과 그에 대한 자신의 소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에서 일어난 일도 아주 짧고 단순합니다. 친구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마침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밭에 자신의 이름을 써놓고 가면서 바람이 불어 그 이름자가 지워지지 않기만을 바란다는 담담한 우정과 친자연적인 물아일체의 감회를 순박하고, 재치있게 표현했습니다. 그러한 자연합일적인 주제의식을 이 천진스럽고 동화 같은 시인의 목소리로 노래한 솜씨가 놀랍습니다. 친구가 올 때까지 내 이름을 남겨놓는 것은 오직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있다는 시의(詩意)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규보는 우리 한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인입니다.       

  이제 그 번역 과정을 설명하겠습니다. 


  雪설色색白백於어紙지.  

  雪色을 ‘눈빛’이라고 하기보다는 ‘눈밭’이라고 하는 것이 거기에 이름을 쓰기 좋을 것입니다. 白은 ‘하양’이 아니라 ‘하얗다’라는 형용사이고, 거기에 이름을 쓰는 이유를 밝혀야 하므로 ‘하얘서’라고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於는 비교의 조사이므로 ‘-보다’로 옮깁니다. ‘종이보다 하얗다’는 말은 글씨쓰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뜻입니다. - 눈밭이 종이보다 하얘서 -     


  擧거鞭편書서姓성字자.  

  擧鞭은 채찍을 들어, 書는 ‘쓰다’라는 동사, 姓字는 자신의 이름입니다. '자신'이란 말은 없지만 이름을 쓰는 사람은 방문자가 틀림없으니 ‘내’라고 밝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채찍으로 눈밭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는 말은 말을 타고 벗을 찾아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의도입니다. 시인의 깊은 우정은 물론 친자연적이고, 천진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채찍으로 내 이름을 써놓았지.-


  莫막敎교風풍掃소地지. 

  莫은 금지의 뜻이므로 敎와 같이 ‘-못하게 하여’라고 풀이합니다. 敎는 ‘시키다’. 掃地를 ‘땅을 쓸다’라고 하면 시인의 의도가 아니므로 ‘바람이 불어 글자가 지워지는’것으로 풀이해야 합니다. 애써 써 놓은 자기 이름자가 바람에 지워지지 않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일 뿐입니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소망을 간절히 표현하려면 ‘모쪼록’이라는 시어가 필요합니다. 이럴 때 다음 행의 好라는 시어를 ‘모쪼록’이라고 옮겨 번역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好호待대主주人인至지. 

  好는 ‘좋다’라고 하면 말이 아니고, ‘잘’이라고 해도 이상하니 ‘모쪼록’으로 의역해서 앞으로  올려붙였습니다. 시의 번역에서 원문을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원시를 오히려 손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두 언어의 문법체계가 다르고, 의미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시어나 문장 부사어는 경우에 따라서는 詩行을 넘나들 수 있어야 原詩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살려낼 수 있습니다. 시의(詩意)상 3행과 4행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가 용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시의 어순과는 달리 待는 ‘기다리다’라는 서술어로 하고, 그 어미도 당부 기원의 뜻이 드러나는 종결어미가 명령형으로 맺어져야 주제가 선명해질 것입니다. 작자가 자연과 긴밀히 소통하는 자연친화, 자연몰입의 경지와 그 표현 의도를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려 다오’보다는 ‘기다려 주렴’이라고 하면 자연합일(自然合一)의 경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여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렴.’이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와 비슷한 발상의 고사가 있습니다. 중국의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휘지(王徽之) 역시 풍류 넘치는 문사였는데 어느 겨울, 눈이 천지를 덮어 절경을 이루었습니다. 마침 강 위 마을에 사는 친구가 보고 싶어 배를 저어 올라갔다고 합니다. 애써 그 문 앞에 다다랐을 때에 그는 주저 없이 다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까닭을 물으니 ‘내 본래 흥이 나서 왔다가, 이제 그 흥이 다했으니 돌아가야지 하필 친구를 만나랴?-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 何必見戴’라고 했다고 합니다. 친구보다는 자연에 취해 사는 경지를 잘 보여준 일화입니다. 그 탈속적인 자연한정은 뛰어나지만 인정은 야박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 작품은 자연한정을 통한 交友의 정까지 노리고 있어 자연과 교우 둘을 다 거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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