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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r 12. 2021

독한 세상

毒자의 아이러니

 언어가 다 그렇지만 특히 漢字는 한 글자가 매우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다의어(多意語)이다.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언어의 기능은 좋겠지만 그만큼 익히기 어렵다. 한자공부가 어려운 이유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대개 비슷하거나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어서 좋은 점도 있다. 그런데 어떤 글자는 전혀 엉뚱하거나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毒(독)자가 그렇다. 毒은 사람을 해치는 물질이다. 그러나 독을 잘 활용하면 병을 고치는 약이 될 수도 있다. 독뿐 아리라 세상에는 이처럼 양면성을 갖는 일이 많지만 毒자는 특이한 아이러니까지 가지고 있다.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글자에 그 의미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엄마인 母자가 왜 사람을 해치는 毒자에 들어가 있는지 의문이다. 독과 어머니는 전혀 상반된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원래 母자가 아니라 毋자  -금지, 無-  였고, 위 부분의 글자도 生자였다고 한다.  ‘生 + 毋’, 이를 글자대로 풀이하면 毒은 ‘생물을 살지 못하게 하는 독초(毒草)’였다. 그렇다면 毒자의 아래 부분은 母가 아니라 毋로 써야 맞을 것이다.   

  요즈음 유난히 아동학대 사건이 많다. 남의 애들은 물론 심지어 친자식까지 학대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패륜사건이 자주 들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악독한 부모들이고, 그래서 새삼 毒자에 들어있는 母자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맹자가 사람의 성선설을 주장한 근거란 ‘남의 아기라도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다. 갈 길을 멈추고 애기를 구해주는 것은 무슨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본래 선량하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런 미담이 성선설의 근거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지금은 어린애를 구해 주기는커녕 어린이를 유괴하고, 학대하고, 죽이는 일이 다반사이다. 옛날의 개구리 소년, 조두순 사건, 정인이 살해 등이 맹자의 성선설을 철저히 비웃는 시대이다. 입양아나 데려온 자식, 조카를 학대도 모자라 살해까지 서슴지 않는 세상이다. 하기야 옛날에도 계모, 양부가 친자식이 아니라고 학대하는 이야기는 흔히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친자식을 학대하고, 성폭행하고, 살해한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끔찍한 일이다.  

  아무리 인륜이 무너진 사회라 해도 이런 참상이 이어진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성악설이 맞다 해도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부모는 母가 아니라 자식을 해치는 毋가 틀림없다. 그 중에는 자신의 아이가 친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악독한 부모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성윤리가 무너진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근래 성개방 풍조에 따라 순결, 정조관념이 약해지니 부부간에 피차 혼전순결은 묻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결혼 후에도 혼외정사로 이어지고 있다. 세상에는 ‘내연관계’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고 있다. 인간의 무절제와 향락의 추구는 스스로 불신의 나락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탄산음료, 설탕과 필로폰이 독이 되듯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의 독이다. 이러한 성윤리 문란의 사회풍조 속에서 아기를 직접 낳아 보지 못한 애비가 자식의 혈통을 의심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성형술의 유행은 이러한 의심을 더욱 부추긴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볼 정도라면 친자식에 대한 불신, 학대, 살해가 벌어지는 현상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부모들은 스스로 지은 죄가 있고,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다. 

  아동을 학대하고 죽이는 악독한 인간들을 흉악범으로만 질타할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타락을 반성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아동학대는 뒤에 필연적으로 또 다른 아동학대로 이어질 것이고, 그리고 노인학대로 이어질 것이다. 인륜도덕이 무너지는데 가정윤리라고 해서 지켜질 리 없다. 신세대들은 노인들이 내뱉기 좋아하는 말세라는 탄식을 시대를 모르는 꼰대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윤리도덕이 무너지면 결국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어머니 母가 毋로 바뀌어 毒草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설문해자>라는 책을 보면 毒자의 밑 부분은 원래 母가 맞다. 그리고 본래 그 뜻은 독초와는 전혀 다른 篤(독), 厚(후) - 즉 두터움과 신뢰였다. 毒자는 원래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 품 속이었다. 그랬던 글자가 독초로 변해버린 것은 인간의 도덕, 윤리가 타락되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죄악과 패륜이 넘치는 시대에 이미 毒이 되어버린 글자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毒자의 본래 의미를 생각하고 성찰해야 인류에게 희망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물질의 풍요와 향락으로는 인류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참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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