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의 철
노년도 내 마음대로고 아니라 내 의지여야 한다.
칠순을 등산에 비유한다면 정상에서 내리막길에 들어선 시기가 아닐까 한다. 정상에서 마냥 인생의 절정을 누리고 싶겠지만 내려오지 않을 수는 없다. 하산하는 발걸음은 가벼워야 한다. 정상에 미련이 많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겁다면 등산의 묘미를 모르는 사람이다. 올려다보면 고개가 아프고, 오르다 보면 다리가 아프지만 내려다보면 다리도 편하고, 마음도 느긋해진다. 하늘은 그럴 수 없지만 산 아래 세상이야 작은 손바닥으로도 덮어버릴 수 있으니 인생이란 보잘 것 없음을 알 수 있다. 정상 정복의 기쁨이나 칠순의 안목을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칠순 노인의 특권 중의 하나는 여유 있게 지난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환갑 정도의 나이로는 산에 오르기 바빠 인생을 성찰할 여유마저 없으니 칠순에 이른 것은 여간한 다행이 아니다. 친구들을 보면 얼추 열에 셋 정도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가고 없으니 생존율이 70% 안에는 들어서 칠순인가 싶기도 하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등짐을 비울 수 있어서 좋다. 이제 배낭에 잔뜩 챙겨두었던 물건이 필요 없게 된 것이 많다. 전에 챙겨두었던 목표, 경쟁, 책임, 지위, 명예, 재산 – 이런 짐들을 덜어 낼 수 있어서 좋다. 그런 것들을 버리면 배낭은 가벼워진다. 이제는 해야 하고, 지켜야 할 일보다 안 해도 되는 일이 많다. 이제는 짐에서 벗어나서 여유롭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혹은 적당한 긴장과 목표가 있어야 사는 맛과 활력이 생긴다고도 하지만 어차피 살아있는 한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니 칠순이 되걸랑 여유를 갖고 자유를 즐길 일이다.
사회의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제는 자유를 즐길 일만 남았다. 그런데 자유란 흔히 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 좋을 대로, 나 편할 대로 사는 것인가? 그러나 인생이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부부간에도 불가능한 ‘내 맘대로’가 사회에서 용납될 리 없다. 자식을 위해서 희생을 했으니 이제는 자식이 나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리는 없겠지만 옳은 생각도 아닐 것 같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이 도리라면 자식을 사랑하는 것 또한 부모의 도리일 것이다. 효도나 사랑이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처자식도 그러니 남에게야 ‘내 맘대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회의 어른이 된 노인들의 자유 또한 그 원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이다. 자유는 본래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내 의지요, 내 자율’이었다.
그렇다고 심신이 쇠약해진 칠순 노인네가 자식과 사회를 위해서 새삼스럽게 분투, 노력, 매진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면 부담이 큰 인생이다. 내리막길이 오르막길과 다르지 않다면 인생이 너무 고달프다. 노인의 자유란 치열한 생존경쟁,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난 자유일 것이다. 이제는 사회의 미래를 젊은이에게 맡길 수 있어야 자유일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적게 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이다. 내 존재가치가 젊은이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은 오히려 내 자유는 늘어난 것이 아닐까?
만약에 내세가 있다면 인생은 시험기간에 불과하다. 시험시간이 길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고달픈 인생이라면 짧을수록 좋을 것이다. 칠순을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면 나머지 인생은 여유 넘치는 덤이다. 더구나 심신이 병들고 쇠약해졌다면 사는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 건강하고,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산다면 사회에 폐를 끼치는 인생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일망정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내 의지대로’ 살고 싶다. ‘마음’과 ‘의지’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건 ‘내 마음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다’는 공자나 돼야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십여 년만 잘 살면 내세가 보장된다면 칠순이야말로 딱 좋은 나이가 아닐까? 성경에 포도밭 주인은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나 저녁부터 일한 사람이나 품삯이 똑같았다. 한 시간만 일하면 하루 품삯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칠순이 그 아니 좋은 때인가?
칠순을 맞은 여생에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자유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한 무위도식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여생을 치열하게 살면 고달플 것이고, 쾌락을 쫓아다닌다면 천덕꾸러기 노인네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라도 ‘내 맘대로’가 아닌 나잇값에 해당하는 ‘마땅한 자유’를 누려야 할 때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칠순의 철(哲)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