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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한복

卒은 버리고 車를 지키자.

by 김성수


최근 중국과의 국민감정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양국은 이미 정치적, 경제적으로 근접한 가운데에서 문화적인 면에서는 국민 간의 갈등이 우려스럽다. 다른 면은 잘 모르겠지만 문화적으로는 민간외교라는 차원에서 우리도 차분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중국인들의 막무가내 우월의식도 문제이지만 우리들의 감정적인 반응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는 괜찮고, 중국에 대해서는 자존심만 내세운다면 좀 이상하다.

지금 우리가 서구의 문화에 매몰되어 가는 걸 보면 중국 사대주의에 절어있던 우리 문화가 중국 것이었다는 주장은 억지만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중국인들의 문화우월주의에 대하여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한다면 현명한 처사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가당찮은 역사왜곡이나 일방적인 문화우월주의가 옳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과도한 자존심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 감상적인 애국심보다는 다시는 그런 부끄러운 역사와 문화를 남기지 않겠다는 이성적인 각오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중국인들의 문화우월주의는 황당하지만 일부분에서는 나름대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문화 상위국이어서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것은 꼭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우리의 문자 역사가 짧다보니 일찍이 漢字를 상용(常用)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우리의 언어생활에 중국문화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문자가 그렇다 보니 우리의 역사, 사상, 문화, 지명, 세시풍속도 역시 중국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에서 저들의 주장을 전면 부정하려 든다면 우리도 역시 억지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억지에 분개하기보다는 우리의 후세들은 저들의 우월의식에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요즈음 우리는 김치가 중국 것이라는 저들의 억지에 흥분하고 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김치는 누가 뭐래도 우리 것이다. 그러나 김치라는 말이 沈菜(침채-배추를 물에 담그다.)라는 한자어가 어원이고 보면, 그것은 중국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묵은지, 싱건지, 짠지의 ‘지’도 漬(지-물에 적시다)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한복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신라 때부터 우리의 관복, 궁중 옷은 중국 唐衣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그 궁중 옷이 지금 한복의 바탕이 되었다면 중국인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억지는 아닌 셈이다. 우리가 즐겨 쓰는 일력(日曆), 24절후도 중국 것이라면 우리의 전통 세시풍속을 우리 고유의 풍속이라고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의 地名도 중국과 같은 이름이 많은데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짐작이 간다.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저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근래 중국 정부에서는 조선족의 문화라는 구실로 우리의 혼이 담긴 아리랑을 비롯한 우리 고유문화를 중국 문화라고 우겨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작태에 대해서 흥분하고 있지만 지금 조선족이 중국에 살고 있으니 중국 국민이 된 조선족 문화를 중국문화라고 하는 주장에 분개만 할 일이 아닐 것 같다. 당연히 조선족 문화는 우리 문화이지만 저들이 힘으로 속지주의(屬地主義)를 내세워 자기들 것이라고 한들 우리가 어찌할 것인가? 힘이 약한 우리로서는 이에 흥분으로 맞서기보다는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 같다.

사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저들이 태극기를 들고나서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징인 태극기도 알고보면 중국의 태극도(太極圖)를 옮겨놓은 것이니 만약 그들이 문제 삼는다면 참 난감한 일이 될 것이다. 이것도 당연한 '문화의 흐름'이라고 태연할 수 있을까?

중국의 우월주의, 패권주의에 일시적인 흥분이나 감정풀이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김치, 한복 같은 문제는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으로 해서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손상을 입는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것이다. 그것들을 중국의 문화라고 인정한다 해서 부끄러운 역사나 사대주의로 치부한다면 옹졸한 역사의식이 아닐까? 문화의 선진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외래문화의 수용과 재창조도 역시 정당한 역사이다.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문화가 우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외래문화를 적극 모방하고, 수용한 것이 일본을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문화적 下位에 있었으면서 사사건건 자존심을 내세워 중국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콤플렉스적 행동일 수 있다.

중국인들은 특유의 중화사상과 공산당 우민정치에 길들여져 있어 분별력이 부족하다. 철부지 네티즌이나 관제언론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터무니없는 문화우월주의에 일일이 감정적으로 맞선다면 우리도 그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우리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민주시민 의식수준이다. 바둑에는 사석(捨石)작전이 있고, 장기에는 졸(卒)을 버리고 차(車)를 지키는 전략이 있는 법이다. 사실 김치나 한복은 卒이고, 저들의 동북공정이나 일대일로(一帶一路)는 車와 같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저들이 꿈꾸는 '중국몽'이다. 중국몽이란 청나라의 원수를 갚고, 징기스칸의 패권을 재현하는 것이다. 원나라가 세계역사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를 생각하면 문화적 후진국인 중국의 동북공정, 일대일로는 실로 무서운 일이다. 일의 경중(輕重)과 大小를 알아 그들의 억지를 오히려 반성의 기회를 삼는 원숙한 국민의식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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