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품격品格의 노년.

품격은 위엄이 아니라 소통에서 이루어진다.

by 김성수
品품은 여러 사람이 모인, 즉 사회의 모습을 나타낸 글자이고, 格격은 그 사회에 들어맞는 수준과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에서 정한 객관적인 요구 수준이 品格품격이라는 것입니다. 품격은 평범한 人之常情인지상정을 넘어선, 어느 정도 원숙하고, 인위적이고, 사회규범적 수준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젊은이의 품격’이란 말은 하지 않으니 品格품격은 노년에나 어울리는 말이고, 그것은 노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품격과 비슷해 보이는 것이 위엄과 교만이란 것입니다. 그 차이를 간단히 말해 보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했을 때 품격이라 하고, 가까이 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위엄이라고 하고, 상대조차 하고 싶지 않다면 교만이 아닐까 합니다. 젊은이 입장에서 억지로 상대하거나 꺼림칙해서는 가까이하고 싶은 노인이 아닐 것입니다. 노인의 품격이란 두렵거나 거북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의지하고 싶고, 존경하고 싶을 만한 인격입니다. 그러니 젊은이를 탓하기 전에 먼저 그럴 만한 품격을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廉恥염치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품격의 요건입니다. 廉염은 자신을 잘 살펴서 깨끗이 하는 것이고, 恥치는 욕됨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입니다. 젊을 때야 적극적인 분투,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만 나이가 들면 삶을 조용히 정리할 수 있는 염치를 닦는 데 힘쓸 일입니다.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맑다면 매사에 거칠 것이나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노년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고, 이러한 떳떳함이 노년의 품격입니다. 노인에게 품격이 서지 않는 이유는 인생의 역정에서 떳떳하지 못한 과오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염치는커녕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도덕불감증 환자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힘 있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노년이 되어서까지 염치를 모른다면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품격이 서겠습니까?

노년의 품격을 챙기다가 잘못하면 권위와 교만이 되기 십상입니다. 품격과 권위와 교만은 얼핏 닮은 데가 있어 보이지만 위엄과 교만은 친화력과 소통력이 없다는 점에서 품격과 같지 않습니다. 노인의 품격은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시급한 노년의 자구책입니다. 희소가치가 없어지고, 품격마저 떨어지고, 사회의 걸림돌이 되어버린 노년들은 절박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선 품격을 갖추려면 젊은이들의 수범이 되어 존경과 존중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노년들이 모범을 보인다면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의 존중, 존경이 따라올 것입니다. 수범이 어렵다면 그들에게 애정을 갖고, 그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저 위엄이나 교만으로는 젊은이들의 존중, 존경은커녕 경멸과 푸대접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시리도록 절감하고 있습니다. 노년들은 젊은이들이 불만스러워하고, 아쉬워하고, 허탈해하고, 좌절하는 아픔에 공감하고, 애정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아량과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未生의 아픔이 어찌 우리들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지식, 정보에서는 어쩔 수 없더라도 아량과 품격에서 나오는 경험과 지혜로 젊은이들의 고통과 정신적인 공허를 달래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야 본분만 하면 된다지만 노인은 거기에 나잇값까지 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짐승이야 이빨로 나잇값을 한다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면 오히려 이빨이 빠져나가니 나잇값 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잇몸으로 이빨을 대신한다고도 하지만 세상사가 단팥죽처럼 물렁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물리적으로는 임플란트로 이빨을 대신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나잇값은 잇몸이 아니라 인품, 인격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는 추상(秋霜) 같은 위엄과 권위는 노인의 허연 백발과 수염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추상같던 백발은 염색되었고, 수염은 말끔히 면도질되었으니 옛날의 노인의 위엄과 권위는 다시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염색을 지우고 수염을 다시 길러서 해결될 리도 없고, 더구나 노인의 품격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아무리 노년이 품격을 갖추더라도 젊은이와 소통이 안 된다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젊은이와 소통하려면 품격만 내세우지 말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와 지적인 수준과 애정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노년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젊은이에 미치지 못하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학력도 짧고, 첨단 매체에도 어둡고, 보고 듣는 것도 어두우니 어떻게 그들과 원활히 소통할 것인가? 그러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지, 이미 허물어진 위엄과 자존심만 내세울 일이 아닌 것입니다. 걸핏하면 젊은이를 꾸짖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겸허한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오히려 노년의 품격을 유지하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어차피 이 시대는 그들의 시대이니 그들을 기꺼이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는 아량과 도량이 노년의 품격일 것입니다. 그렇지도 못하면서 권위만을 내세우고 무병장수만을 탐한다면 염치없고 천박한 노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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