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원만한 노년.

달을 닮은 노인

by 김성수

달을 닮은 노인이라면 좋겠습니다.

옛사람들은 밤에 보름달을 보면서 圓滿원만이라는 말을 생각해 냈습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둥근달을 보고서 그것처럼 살 것을 다짐했을 법합니다. 그것은 그믐달에서 시작하여 초승달, 반달을 거치면서 마침내 보름달의 원만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원은 모든 형태 중에서 가장 완벽합니다.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고, 모진 곳도 없습니다.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가장 완벽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필생의 목표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젊어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 늙어서라도 원만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만큼 원만은 다다르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방향이나 목표를 정해놓고 추구하다 보면 어느새 원만에서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깨어진 돌덩이도 오랜 풍상을 겪으면서 몽돌이 되듯이 사람도 경험과 시련을 겪으면 원만에 가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숙한 노년이라고 했습니다.


보름달에서 또 하나 배워야 할 것은 원만의 보름달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달은 만월을 이루고서는 주저 없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갑니다. 가득 찬 것은 곧 덜어진다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죠. 노년도 원만에서 머무르려 하지 말고 달과 같이 미련 없이 사라질 줄 알아야 합니다. 원만에서 머무르려 한들 그럴 수 없다는 자연의 이치까지 깨닫는 것은 노년이 아니면 이를 수 없는 경지입니다. 손뼉 칠 때 떠나라고 하듯이 보름달일 때 떠날 수 있다면 아름답고 품격 있는 노년이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에 내세가 있다면 가장 좋은 모습으로 죽어야 현세의 호황이 저 세상에서 이어질 것이 아닐까? 늙고, 병들고, 외롭고, 쫓겨나서 초라하게 쪽박 들고 내세에 간다면 그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내세가 시작될 것 아닐까? 우리는 내세의 이런 험한 모습을 현세에서 이미 눈이 시리도록 목격하고 삽니다. 백 년 장수 노익장을 바라지만 그러다가 때를 놓쳐서 죽기도 전에 현세에서 일찌감치 참상과 치욕을 당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滿(만)이란 가득채우라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라는 뜻일 겁니다. 있어야 할 곳, 없어야 할 곳,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또한 노년의 원만한 경지일 것입니다.


中庸중용이나, 耳順이순은 공자도 다다르기 어려웠다 하였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過猶不及과유불급도 지켜내기 어려운 원만의 경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원만이 이렇게 어렵고 특별하다면 또한 원만이 아닐 것입니다. 평범한 노인으로서는 그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가치관과 사고와 행동이 곧 원만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도 어렵다면 그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면 지나치게 원만하다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노년의 원만과 상식은 그 안에 있을 것 같습니다. 혹은 이러한 태도를 흐리멍덩하다고 하겠지만 노년에 이르러 추상같은 기개를 내세우거나 딸깍발이 까칠한 기질을 발휘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명확하게 시비를 가리는 것은 좋지만 이제는 그런 일은 젊은이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비를 분명히 가려봐야 어차피 그때의 사정일 뿐, 지금은 또 다른 시비가 벌어지고, 다음에는 또 다른 규정이 내려질 것입니다. 매사에 각박하게 시비를 가리고, 이해를 따진다면 그럴수록 신세는 고달파지는 것이니 그런 일에 노년까지 던지고 싶지 않습니다. 노인이 되거든 매사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부로 단정 짓지 말고, 미루어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직도 젊은이를 능가할 수 있다는 긍지를 내세우거나 사회에서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자신하는 노인은 당당하지만 번거롭고, 위험해 보입니다. 소수의 노인은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활약을 해도 좋겠지만 본인에게는 편안한 노년이 아닐뿐더러 사회에서는 장애물이 되기 십상입니다. 더구나 평범한 노인들은 그런 부자연스러운 일은 그만두는 것이 그나마 원만한 노년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옳기야 하겠지만 그러려면 삶이 고달프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일선에서 물러난 노인은 여유 있게 자신을 돌아보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집념, 치열, 전진, 성공, 성취, 제패, 불굴의 의지- 이런 것들은 노년에 어울리는 단어들이 아닙니다. 젊었을 때의 그런 것들은 오늘의 노년이 있게 한 원동력이었지만 이제는 노년을 옥죄는 족쇄 같은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을 원만으로 녹여내야 편안한 노년이 될 것입니다. 치열한 열정이야 나이가 들면 저절로 식어지지만 집착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져서 문제입니다. ‘만물은 유전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소신도, 원칙도, 진리도 고집할 일이 아닙니다. 노년에는 고집이 집착이 되었고, 이제는 그러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입니다. 좋기로는 지금까지 나와 상대를 구분해 왔던 벽을 낮추고, 응어리로 맺힌 것을 풀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경지이지만 우선 내가 잘한 일은 잊고, 잘못한 일을 잊지 않는다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노년의 원만은 노년에 빠지기 쉬운 무기력증이나 허무주의, 염세주의마저 극복한 결과입니다.


삶의 정리단계에 들어선 노년에 극단적인 사고나 행동은 피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 불변의 가치는 별로 없는 것인데 한 때의 가치관을 고집하면 극단적인 행동이 나오기 쉽습니다. 지나친 것은 잘라서 모자란 것에 보태야 할 때에, 좋다고 더하려 하거나 나쁘다고 해서 파내려고 한다면 원만에서 더욱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집착과 고집은 원만의 최대의 적입니다. 지나친 것도 모자란 것도 다 좋지 않다는 말은 노인에게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행복, 쾌락, 부귀, 명예가 좋기는 하지만 지나치면 재앙을 재촉하기 마련입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禍와 福은 번갈아 갈마드는 것이니 좋을 때는 나쁠 때를 준비하고, 나쁠 때는 좋을 때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나쁜 일은 견뎌내고, 좋은 것도 다 누리려 하지 말고, 적당하게 절제하고 나눌 줄 아는 것이 노인의 지혜일 것입니다. 인생 말년에 ‘원 없이’ ‘실컷’ ‘끝내주게’ ‘화끈하게’ ‘멋지게’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원만은 물론 ‘적당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박한 짓입니다. 부귀, 명예, 환락 속에서 죽으면 오히려 인생에 미련과 여한이 더 클 것입니다. 꿀맛 같은 인생을 즐기다가 당뇨병에 걸리느니 숭늉 같은 인생을 담담하게 맛보는 것이 노년에 어울립니다. 적당한 절제와 아쉬움 속에서 自足하면서 원만의 미덕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노년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keyword
이전 08화8. 떳떳한 노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