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고집은 괴물을 만든다.
사람이 변치 않는 가치관을 갖는다는 것은 성숙된 경지요, 무엇이든지 목표를 이루려면 남다른 집중력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고집을 구태여 탓할 일은 아닙니다. 또한 고집은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요, 추진력일 수 있어서 긍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집이 센 사람들은 자신이 고집이 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고집을 슬그머니 집념, 소신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집념, 소신이라는 것이 잘못되었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면 여기서부터 고집의 폐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정보에는 어둡고, 두뇌활동은 둔해지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여 자신에 집착하여 고집은 더 세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를 옹고집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소신, 집념과는 전혀 다른 괴물이 됩니다. 옛날 선비들의 절개, 충절을 일컬어 오상고절(傲霜孤)이라고 했는데 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서리 앞에서도 당당한 국화의 기상을 선비의 절개, 충절로 상징한 것입니다. 선비의 절개, 충절이란 그 가치적 기준이 자신에 있지 않고, 사회와 국가에 있었기에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옛날의 선비들은 수신과 지혜를 쌓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회에 합당한 소신으로 승화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많은 노인들은 수양은 부족한 채 권위만 내세우고, 개인의 향락에만 열중하여 불통의 老執-노인의 고집-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의 노인들이 수양이 부족한 이유는 노년을 단순히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에 실컷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심에 사회의 어른으로서 해야 될 본분이나 의무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한 노인이 여생에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만 위한 것이라면 떳떳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노인도 사회의 일원인 이상 사회에 해야 할 본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어른을 자처하는 노인들이 어른의 본분을 망각한 채 젊은이에게 무거운 부담을 주면서 이기적인 향락에 빠져있는 행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병폐는 옛날 선비들이 견지했던 선비정신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선비들은 투철한 선비정신을 갖고 노년에 이를수록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와 젊은이들로부터 오래 살수록 존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예의 노인이 수범을 보인 옛날과 달리 다수의 노인이 쾌락에 매몰된 오늘날의 세태가 노년의 처지를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젊어 고생했으니 늙어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정당한 요구요, 당연한 대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노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의 이기주의적 향락 추구는 노인의 특권이 아니라 사회의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이대로의 추세라면 앞으로 50년 후에는 노인이 인구의 절반에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노인은 존중은커녕 사회를 위험하게 하는 골칫거리요, 천덕꾸러기를 면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절반이 노인을 자처하면서 놀고, 먹고, 즐길 생각만 한다면 그 사회가 성할 리 없습니다. 이제는 노인의 권위와 경로를 당연시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한 노년을 위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본분을 잊지 않는 각성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노년의 권위를 세우고, 장애물을 면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나이가 들면 눈과 귀가 어두워지게 마련인데 이는 단순히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줄어들어 그만큼 견문이 짧아지고 좁아진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시력과 청력만 걱정할 뿐, 정작 견문과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감각이 둔해지면 필연적으로 사고력, 판단력도 막히게 됩니다. 더구나 노인은 자신의 제한된 경험에만 의지하고 권위를 내세워 젊은이들을 과소평가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막무가내 버티는 노인들은 아무리 실증을 갖고 말해도 소통이 안 되는 옹고집, 쇠고집입니다. 늘 보이스피싱, 가짜 약장수, 가짜 뉴스에 잘도 속으면서도 늘 젊은이들을 탓하고, 말세라고 혀를 차기에 바쁩니다. 이러한 고집불통은 곧 독선, 독단에 흐르게 마련입니다. 독선하는 이들의 특징은 나만 옳고, 남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당당하고, 품격 있는 노년을 위해서라면 먼저 남을 존중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좁아진 견문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젊은이와 남을 존중하다 보면 고집과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나만 옳다는 고집을 버리는 일입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집념과 의지가 이제는 오히려 나를 얽어매고 옥죄는 집착과 탐욕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노인 스스로는 소신이요, 지혜라고 생각하지만 젊은이들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고집불통이라고 단정합니다. 고집과 탐욕은 노년을 추하게 만드는 원흉입니다. 그것은 인간관계를 깨고, 대화를 단절시키고, 융통성을 말리고, 불화를 일으키고, 사람을 고지식하고, 옹졸하게 합니다. 고집은 고립을 부르고, 고립은 노인을 불통의 괴물로 만듭니다. 눈과 귀가 어두운 노인들이 모여서 세상 일을 다 아는 듯이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어보면 답답함을 넘어서 불쌍할 정도입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견문은 좁아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가득 차서 옹고집을 부려대니 젊은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노인이 고집만 버릴 수 있다면 훨씬 젊게 살 수 있고, 젊은이와 대화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고집을 노인의 소신이나 권위로 내세운다면 죽을 때까지 괴물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점잖고 품위 있는 노인이 있어야 할 경로당이나 카톡방에 가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고 다툽니다. 고집을 무슨 늙은이의 특권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늙었다는 표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고집을 부리지만 그것은 내가 늙어 도로 애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충돌이 있을 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잘못이 있고,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일입니다. 노인에게 너무 가혹한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노령화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병장수가 아니라 노년으로 해야 할 본분이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패를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노집(老執)으로 망쳐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