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을 하려면 노염을 버려야 한다.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져서 조그만 화도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을 노염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노여움’이겠지만 노인의 노여움은 늦여름 더위같이 맹렬하다 하여 한자로 표현하여 노염(老炎)이라고 했습니다. 老人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오히려 화를 내기 쉬운데 이것을 怒(노)라고 했습니다. 남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恕(서)’자를 풀이하면 ‘사람다운 如의 心’이지만 제 고집만 피우고 남에게 화를 부리는 ‘怒노’자는 ‘천박한 奴(노예)의 心’이니 漢字의 묘미가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노인다운 노인이 되려면 노련(老鍊)함으로 분노(怒)를 삭이고 용서해 주어야(恕) 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인들은 용서 대신 마치 그럴 권리나 특권이 있다는 듯이 걸핏하면 노염부리기를 좋아합니다. 젊은이들은 이렇게 노인답지 못한 괴팍한 성질을 무서워하기보다는 경멸합니다. 그래서 늙으면 도로 애가 된다고 어이없어합니다. 젊은이한테 어린애 취급당하면서도 큰소리 쳐가며 어른 노릇하려고 한다면 부끄러운 노인이 아닐까?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 노인을 어떻게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아직은 노인공경의 미풍양속의 전통이 남아있어 다행입니다만 그것도 거추장스러워져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라져가는 경노효친 사상을 탄식하기 전에 그런 딱한 노인이 되지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급한 일일 것입니다.
노염은 일종의 조급증입니다. 견문과 사고가 좁다 보니 널리 생각하지 못하여 조급증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마음이 조급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서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만 옳다고 고집하니 수양이 부족한 탓입니다.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다 보니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이 쌓여 한꺼번에 노염으로 폭발하기 십상입니다. 노염의 폭발은 기운이 좋은 노인일수록 거세기 마련이고, 기운이 떨어진 노인이 노염의 강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쌓여 중병이 됩니다. 노인의 노염은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자신에게는 더 큰 치명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어른의 나잇값을 생각해야 합니다. 百忍은 살인도 면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인내야말로 노년의 미덕입니다. 忍자의 뜻은 ‘칼날 같은 마음’입니다. 조급증을 참지 못한다면 심장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忍자입니다. 중국에는 ‘얼굴에 침을 뱉거든 닦지 말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라’-唾面自乾(타면자건)-는 말이 있습니다. 나에게 아무리 모욕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분이 풀릴 때까지 참고 견뎌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노인이 되어가지고 잠깐의 충동을 참지 못하고 조급증을 자주 드러낸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쩌면 老執(노집), 노염은 老化컴플렉스에서 나온 반작용일지도 모릅니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지난날 사회공헌에 대한 보상도 없이 무시당하거나 배반당했다고 생각하니 매사에 심사가 순조로울 리가 없습니다. 아직도 젊은이를 능가하는 능력과 경륜이 넘치는데 불통꼰대라니? 사회에서 열심히 노력한 노인들이 불만이 큰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주 서운하고, 노깝고, 삐치고, 외롭고- 그래서 투정부리고 속좁은 짓을 하게 되고- 그래서 그것이 노염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들은 젊은이들에게 귀띔해 줄 말이지 노인 스스로가 정당화, 합리화 할 일은 아닙니다. 젊은이들의 푸대접이 서운하겠지만 의연하게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老化를 수용한다면 아무리 젊은 애들이 철이 없기로서니 노인에게 그렇게 서운하게 할까요? 알고 보면 다 자식 같은 어린애들이잖아요?
잘 생각해보면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관용을 베풀기보다는 그들의 이해를 받아야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낡은 것은 고쳐야 할 일이 더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노년들은 대체로 시대에 뒤쳐진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통을 내세우기 쉽지만 거기에는 버려야 할 인습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역사의 진행을 생각하면 젊었을 때에 형성된 가치관이나 교육이 지금보다 우월하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현대사는 민족의식보다는 편향적인 이념만이 강조되었고, 이념보다는 탐욕적인 정권논리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의 현대사 교육은 분단주의, 자본주의, 사대주의에 의하여 왜곡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 왜곡의 주역이 지금의 노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불만보다는 빚이 있다는 부담감을 가져야 옳을 것입니다. 이른바 노소의 불통은 자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노인들은 젊은이에게 호통을 치기보다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철 모르는 젊은 것들'이라고 혀를 찰 때에 그들은 '불통꼰대'라고 머리를 흔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조급증을 참지 못하고 터져나오는 것이 막말, 폭언, 잔소리입니다. 매사에 참을 줄 알게 되면 신중한 언행을 할 수 있습니다. 신중한 언행은 노인의 품격을 높이고, 노인을 보호하는 갑옷입니다. 나잇값이란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서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하는 말은 실천할 수 없고, 가볍게 하는 말은 신뢰를 받지 못합니다. 함부로 하는 행동은 위험하고, 가볍게 하는 행동은 미덥지 못한 법입니다. 말을 했다면 실행을 해야 할 것이고, 실행을 했다면 결과가 있어야 할 것이고, 결과가 없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는 아직 미숙하여 언행이 서투를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함부로 언행을 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수양이 부족해 가지고 노염이나 부린다면 어떻게 젊은이에게 어른 행세를 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노염을 가벼이 드러내는 지경은 면했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품은 노염까지 벗어버리기는 정말 어려운 경지입니다. 나이가 들면 속이 넓어지기보다는 좁아지기 십상입니다. 보고 듣는 것이 좁고, 총기도 기력도 떨어지고, 스스로 상실감과 열등감이 들다 보니 마음을 열기 어렵고, 매사에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늘 서운하고, 불만스럽고, 소외감이 들고, 쉽게 무기력해지기 쉽습니다. 인격이 부족하여 속에 품은 노염을 삭이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의 손해일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을 너그러이 관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수양이 부족한 노인으로서는 ‘나이가 들어 내가 부족하니 상대방이 저러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내탓이오’라고 생각한다면 노염은 내 마음 속에서도 자연히 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