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40

여름에 붙여서

by 김성수

夏日卽事 하일즉사

李奎報 이규보


輕衫小簟臥風欞◎ 모시적삼에 대자리 누워 바람을 쐬니

夢斷啼鶯三兩聲◎ 몇 마리 꾀꼬리 소리가 낮잠을 깨운다.

密葉翳花春後在 짙은 녹음 속에 꽃이 숨어있고,

薄雲漏日雨中明◎ 구름 사이 빗속으로 햇빛이 밝아온다.


輕경衫삼小소簟담臥와風풍欞령

輕衫은 가볍고 얇은 여름옷, 모시적삼. 고려의 모시옷은 중국인들도 좋아할 정도로 명품이었다고 합니다. 小簟 작은 대 자리, 방석. 글자대로 옮기면 '대자리에'라고 해야 하지만 앞에 '모시적삼에'에 '에'가 있어 중복되니 뒤에 '에'는 생략하는 것이 우리시로 좋을 것입니다. 臥 눕다. 風欞 바람이 잘 들어오는 창문, 처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다 옮기면 군더더기가 끼므로 '창문'은 생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바람은 창문으로 들어오기 마련이고, 그보다는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 시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더 여유있는 전원한정이 그려질수 있을 것입니다.


夢몽斷단啼제鶯앵三삼兩양聲성

夢斷 끊기다. 꿈이 끊기다는 잠을 깨다. 새 소리에 잠이 끊기다는 '새가 잠을 깨우다.’ 啼 새 소리. 鶯 꾀꼬리. 三兩聲 몇 마디 새 소리. 그러나 우리 시로눈 '몇 마디 새소리'보다는 '몇 마리 새 소리'가 더 정겨울 것입니다. 새 한 마리가 우는 '몇 마디'보다는 '몇 마리 새'가 더 낭만적이 아닐까요? 짐작컨대 이 잠은 한가한 낮잠일 것 같습니다. 고단한 여름잠보다는 한가한 낮잠이 더 시인의 정서에 가까울 것입니다.


密밀葉엽翳예花화春춘後후在재

密葉 빽빽한 잎사귀. 녹음. 翳花 가려진, 녹음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꽃. 春後在 春은 녹음의 상징어. 녹음 뒤에 가려진 꽃. '봄의 뒤'는 초여름일 것입니다. 빽빽한 잎은 초여름의 신록이요, 꽃은 신록에 가려져 있는 정원의 모습일 것입니다. 모시적삼을 입고 대자리에서 낮잠을 자고, 녹음은 우거지고 꽃이 그 속에 숨어있는 것으로 보아서 초여름의 한가한 정원 모습일 것입니다.


薄박雲운漏루日일雨우中중明명

薄雲 엷은 구름. 漏 새다. 물이 떨어지다. 새다. 漏日 햇빛이 구름 사이로 보인다. 雨中明 빗속에서 햇빛이 밝아온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직역하면 시가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漏日과 雨中의 어순을 바꾸어 옮기면 ‘비 내리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밝아온다’로 자연스러워집니다. 이것이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규보가 이렇게 글자배열을 바꾼 이유는 漢詩의 평측(平仄)률이 맞추기 위해서 어순을 살짝 바꾼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3구와 4구는 한시의 평측률을 지키고, 대우(對偶)까지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번역할 때에는 원시의 어순을 본래대로 배열해야 번역시도 시다워지고, 원시처럼 대구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한문과 우리의 어법과 어순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번역할 때에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번역된 대구는 통사의 배열이 서로 같아야 합니다. “짙은 녹음 속에 꽃이 숨어있고, 엷은 구름 빗줄기 사이로 햇빛이 밝아온다.” 이렇게 옮겨야 통사의 배열이 짝을 이루어 원시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시에서는 이런 문자 배열의 파행을 하는 일이 있으므로 번역을 하는 데 있어 유의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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