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손칼국수

7.15

by Benjamin Coffee

“아무도 이제 노래를 부르지 않”(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게 됐지만


월급쟁이가 돼 두둑해진 주머니를 앞세우며 '혜화동 로오터리'를 찾았다.


대학 시절 혜화동 칼국수의 대명사는 ‘혜화칼국수’였다. 가정집의 외관에 뜻밖에 효율적인 공간 구조에 널찍한 곳. 호기롭게 문어숙회나 수육을 먹으러 갔다가 가격을 보고는 칼국수 하나 먹곤 돌아서기 일쑤였다.


언젠가 돈을 정기적으로 벌게 된다면 꼭 ‘돈쭐’내러 오겠다는 다짐을 숱하게 했었는데.


이번에는 비록 혜화칼국수, 가 아닌 명륜손칼국수를 찾았지만 배불리 수육과 문어를 시키겠다는 다짐은 같았다.


사전에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점심에 딱 2시간 문을 연다.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충분히 낮술을 즐길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11시 20분에 도착한 가게에는 두 테이블 정도가 이미 차 있었다. 이때 깨달았어야 했다. ‘2시간 오픈’은 사실 거짓이었다는 걸.


수육과 문어가 반반 나오는 ‘소’짜리 메뉴를 시켰다. 2만5000원인데 아주 훌륭하다. 수육 하면 애성회관의 ‘맛있지만 너무 비싼’ 기억이 떠오르는데, 이곳의 수육은 가성비가 ‘갑’이다. 뭐랄까 아주 고급스러운, 정갈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투박하면서도 풍미가 있달까. 칼국수도 하나씩 시키긴 했는데, 이건 뭐 곁다리고.


날도 더우니 역시 소맥인데, 아뿔싸 맥주가 시원하질 않다. 곧바로 소주로 주종 변경. 소주병은 늘어나고, 안주도 떨어져 가니 수육을 작은 거 하나 더 시킨다. 낮에 이렇게 많이 먹는 손님은 희귀한 것인지, 농담 삼아 던진 "서비스"에도 주인은 선뜻 작은 접시에 문어 숙회를 내놓는다.


오후 1시 반이 되면서 슬슬 눈치를 본다. 절대 나가라는 말은 안 하지만, 가게 점원들은 조약돌에 눌어붙어 시든 벚꽃처럼 축 늘어져 있다.


옆 테이블에 남아있는 손님들과는 어떤 유대감마저 생긴다.


우리만 남은 게 아니니까, 라는 생각으로 버텨본다. 저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위안을 얻었겠지. 이것도 눈치게임이라면 눈치게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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