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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철 Apr 22. 2019

도쿄에서 인도를 느끼다,
츠키지 혼간지

도쿄, 2018년 11월

다섯번째 이야기

도쿄도 추오구 츠키지





바다 가운데 땅을 쌓다, 츠키지 혼간지


 10시까지 출근하는 사람들일까, 외근을 나온 사람들일까. 꽤 많은 수의 회사원들이 카미야쵸 역에서 나오고 있었다. 여행자는 생활인의 물결을 거슬러 한산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카미야쵸에서 도쿄메트로 히비야선을 타고 10분. 중요문화재 ‘츠키지 혼간지(築地本願寺)’로 향하는 길이었다.


 절이 절이지 별다를 것이 있겠는가, 츠키지 시장 초밥의 애피타이저쯤으로 생각하고 잡은 일정이었다. 때문에 지도상의 위치 외에는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찾아갔던 것인데, 출구를 나서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와지붕의 선을 상상하던 여행자의 눈앞에 난데없이 나타난 것은 인도풍의 사원이었다.







 좌우로 펼친 날개의 장엄함과 지붕 곡선의 유려함, 대리석 조각의 섬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사찰, 츠키지 혼간지. 본디 혼간지는 1617년 아사쿠사에 교토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별원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1657년, 에도시대를 통틀어 가장 최악의 화재였다는 ‘메이레키의 대화재(明暦の大火)’로 아사쿠사의 혼간지는 완전히 불타버렸다. 막부는 구획정리를 이유로 그 자리에 혼간지를 재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대신 바다 한가운데를 혼간지 측에 내려주었다.(?!) 이에 지역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바다를 간척하고 혼간지를 재건하였다. 이때 ‘바다 가운데, 땅을 쌓았다’하여 오늘날 이곳의 지명이 ‘츠키지(쌓을 축築 + 땅 지地)’가 된 것이다.



네덜란드인 선교사 아놀두스 몬타누스(Arnoldus Montanus)의 저서, 『동인도회사 일본사절 기행』(1669)에 실린 메이레키의 대화재. 메이레키 3년에 일어났다하여 메이레키의 대화재로 불리는 이 화재로 에도성을 포함하여 에도시가지의 태반이 소실되었으며, 기록에 따라 다르나 사망자가 3만에서 1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진출처 : Wikipedia)


 처음의 츠키지 혼간지는 당연히 목조에 기와지붕을 올린 전통적인 일본 사찰이었다. 그 높은 용마루는 에도항에 들어가는 배의 표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브룩클린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면 에도에는 츠키지 혼간지가 있었던 셈이다.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명소 에도 백경 츠키지 몬제키(名所江戸百景 築地門跡)》, 1858.
에도 앞바다에서 바라보는 츠키지 혼간지의 거대한 지붕 (사진출처 : Wikipedia)



'건축'이라는 단어를 만든 건축가, 이토 츄타


 그러나 츠키지 혼간지 또한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의 화재로 전소되었다. 지금의 혼간지는 1934년에 건축가 이토 츄타(伊東忠太)의 설계에 따라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것이다.


 이토 츄타는 서양건축학을 기초로 일본 전통건축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건축가로, ‘Architecture’를 오늘날 우리가 늘 쓰는 ‘건축(建築)’이라는 단어로 처음 번역한 것도 이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 전통건축을 연구한 만큼 헤이안신궁, 메이지신궁, 야스쿠니 신사 등 근대에 지어진 신사 설계에 다수 참여했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한 남산의 조선신궁도 이토 츄타의 작품이었다.



만년의 이토 츄타(1954)  
(사진출처 : Wikipedia)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츠키지 혼간지는 전반적인 구성은 서양건축 양식을 따르되,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사원과 불탑에서 얻은 모티프로 외관을 디자인하였다. 반면 본당 내부는 교토의 니시혼간지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일본 정토진종의 형식을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다양한 요소들이 어울리며 이토 츄타만의 새로운 미학을 연출하고 있으니, 츠키지 혼간지는 서양의 기술과 일본의 정신 사이의 어떤 변증법적 지점에 도달하고자 하였던 이토 츄타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본당 지붕의 정면은 보리수 잎을 형상화했다. 그 안에 연꽃이 새겨져있다.


본당을 지키는 사자상. 우측 아타고 신사의 사자상과 달리 인도풍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본당 정문을 장식한 황금빛 법륜. 문을 닫아놓으면 꽤 멋있을 것 같다. 사진으로는 문틈으로 살짝 밖에 안보이지만 안쪽 문 상단에는 성당에서나 볼 법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있다.



황금빛 본당. 본당 내부는 외관과 달리 일본 전통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의자를 늘어놓고 입식으로 이용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도 있었다. 공포장식 또한 화려해서 오래 들여다보았다. 조만간 한국의 궁궐이나 사찰에도 들러서 공포장식을 한번 유심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츠키지 혼간지는 유명인사들의 장례식이 많이 열리기로도 유명하다. 1층에 마련된 X JAPAN의 멤버 히데의 추모공간. 히데의 장례식 또한 이곳 혼간지에서 5만이 넘는 추모객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알아야 즐긴다―모르면 눈치작전


 뜻밖에 볼거리가 많았던 혼간지 구경을 마치고 츠키지 시장으로 향했다. 좁은 시장골목마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찬 츠키지 시장은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배가 고픈 데다가 사람에 치이는 것이 싫은 지라, 맛있는 식당을 찾겠다는 생각은 진작 포기했다. 대신에 향한 곳은 시내에 꽤 많은 점포를 갖고 있다는 체인점 ‘스시잔마이’의 회전초밥 점포였다. (廻るすしざんまい 築地店)





 일본어를 좀 할 줄 안다고는 하지만, 생선이름 같은 고유명사는 사전을 찾지 않으면 모르는 까닭에 회전초밥집을 골랐다. 귀찮다는 이유 때문에 체인 회전초밥집을 골랐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듯하다. 몇 년 사이에 입이 비싸진 것일까. 영 성에 차지 않았다. 특히 선도가 떨어지는지 흐물흐물한 우니에서 크게 실망. 낚시포인트를 물색하듯 그럴듯한 가게를 좀 더 찾아볼 것을 그랬다. 맛이 그저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바로 일어났어야 했는데, 또 왜 그렇게 많이 먹어댄 것인지.


 그래도 옆자리 일본인 아가씨의 주문을 따라했던 것 중에, 제철이라는 방어(부리ブリ)는 일품이었다. 초밥도 생선을 좀 알아야 즐길 수 있나 보다.




시장 골목의 작은 사찰. 낡아가는 비색이 마음에 들었다.



나홀로 여행자의 맞은편 자리



츠키지 시장의 바깥은 생활인들의 공간. 츠키지 시장과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정면 2층이 호시노 커피 츠키지점.



 시장을 나서면서 호시노 커피(星乃珈琲)에 들러 잠깐 쉬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도무지 놀러 온 것인지 일을 하러 온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인간이다. 커피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일부러 쉬어주지 않으면 저녁에 후회하기 마련이다. 짝과 같이 다닐 때는 짝을 위해서라도 쉬었다가 일어서곤 했는데. 커피를 시켜놓고 짝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다음에는 꼭 함께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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