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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자 김선생 Sep 21. 2023

전세는 내 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경제적 자유를 찾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여러분은 현재 무주택자인가요 유주택자인가요? 이번에 다룰 내용은 어떤 이에게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조금 불편한 내용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립니다.


  몇 년 전, 지인의 집들이에 초대받아 놀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지인이 결혼하면서 얻게 된 신혼집이었는데, 위치상 도시 중심가이면서 고층에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도 좋은 멋진 아파트였습니다. 손님으로 방문한 사람들은 최신 인테리어와 예쁜 홈 스타일링의 집을 보고 감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바빴죠. 그중 모두가 입을 모아 했던 말은 나도 이런 집에 살고 싶다부럽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축하의 의미, 쾌적한 주거 환경에 대한 동경을 담은 상대방을 위한 덕담이었을 겁니다. 필자도 그 마음에 충분히 동의하며 주인공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집들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편으로는 손님들이 했던 그 말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은 자가가 아닌 전셋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빌려서 살고 있는 집을 부러워한다는 말이 새삼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전세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주거 임차 방식입니다. 임차인은 2년간 집주인에게 큰 액수의 보증금을 맡기고 계약 기간 동안 실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됩니다. 마치 내 집처럼 말이죠. 전세를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임대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은 원금 그대로 돌아오잖아.”

매달 내야 하는 월세는 꼭 버리는 돈처럼 느껴져.”

월세보다는 전세가 낫지.”     


만약 전세보증금 대출을 받았다면 저축한다는 생각으로 대출금을 갚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주거 문제도 해결하고 지출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 같기도 하겠지만, 이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주택 시장에는 임대인(집주인)과 임차인이라는 두 종류의 주체가 존재합니다. 전세 수요는 임차인이 월세가 아깝다고 생각하거나 집을 매수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하였을 때 발생하고, 전세 공급은 임대인이 주택을 사면서 얻은 대출 이자가 비싸게 느껴지거나 소유는 하고 있지만 당장 실거주할 계획이 없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이들은 서로 ‘주거비용에 대한 부담’과 ‘주택 구매비용에 대한 부담’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계약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전세는 주거에 대한 대가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빌려주는 일종의 무이자 대출인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차인 A가 매매가 3.5억의 집에 전세보증금 2.5억을 주고 살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집주인은 1억으로 집을 소유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A가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집주인을 위해 무이자로 2억 5천을 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시간이 지나 집값이 5억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집주인에게는 1.5억이라는 시세차익이 생기게 되지만 A에게는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집주인보다 2.5배나 많은 돈을 냈는데도 말입니다. 집값이 올랐다고 A에게 고맙다며 사례금을 지급하는 집주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역으로 집주인은 계약 종료 시점이 되면 A에게 이런 말을 할 겁니다.


죄송하지만 전세 시세가 많이 올라서요

보증금을 더 올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연출될 때쯤, A는 ‘집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집주인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집주인은 주택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 것에 대한 이득을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A는 원금을 보장받으며 주거 문제를 해결한 것이니 아무런 리스크가 없었습니다. 집값이 떨어졌다고 보증금을 깎아서 돌려받을 것이 아니라면 집주인을 원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차이입니다.                                                  


[주택가격 변화에 따른 임차인과 임대인의 보유 자금 변화]


  전세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임차한 집이 꼭 내 것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세입자는 주거 안정성을 획득하였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내 집 마련을 위한 노력을 미루거나 외면해버리고 맙니다. 세입자가 임대인의 집에 살 수 있는 권리는 보증금에 대한 이자에 상응하는 대가일 뿐입니다. 매매가의 약 60~80%에 달하는 큰 액수의 보증금은 세입자가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었던 기회비용을 포기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입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와야 하는 전셋집은 내 집이 아닙니다. 임차인과 임대인이 계약을 통해 어떤 이득을 얻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리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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