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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캐'도 못 찾았는데 '부캐'가 웬말인가요

2000년대생이 온다

by 아코더



나는 첫번째로 태어난 90년대생 보다 5개월 먼저 태어난 89년생이다. 80년대생이라고 나이 든 척 힘주기도 애매하고 90년대생이라고 젊은이 인 척 끼기도 멋쩍은 위치랄. 그러면서도 서른셋 됐다고 삼십대 중반이라고 하기엔 약국봉투 나이는 만 31세인 그런 나이.


아무튼, 한국나이 서른셋이다.


애매한 80년대 출생 여성이 바라보는 90,00,10년대생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피아노 치는 2001년 뱀띠 동생

재수생인 사촌동생은 피아노과 입시를 위해 지정곡 몇 곡을 외우며 하루 종일 연습한다. 주름 없는 하얀 손끝이 뜯어지고 난리였다. 공대 출신 여성인 나는 그저 샤랄라하게 긴 머리 휘날리는 피아노과 여대생이 될 동생이 부러웠는데 동상이몽이었을까. 대학 졸업하면 뭐 해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이야기를 듣노라니 마음이 얼얼했다. 예체능은 들어가는 비용도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승전 '9급 공무원 시험'을 외치는 니 씁쓸했다. 이 좋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90년대생은 어디로 가야하죠

같은 사무실에서 알바하는 90년대생 2명과 티타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20대 여성들과 수다라니, 나로서는 즐거웠다. 한 친구는 공대를 졸업하고 유튜브 편집하는 일을 업으로 할까 생각 중이란다.

또 다른 친구도 공학을 전공했는데 공기업 준비를 위해 토익공부와 사회복지사 자격증 준비를 한단다.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4학년으로 접어드는 겨울방학 때 기숙사 도서관에서 살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불안과 친구 하며 수많은 공책과 펜을 썼던 날들이었다.

20대 중후반인 그녀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으며 혹여 꼰대 같은 문장을 입 밖으로 낼까 스스로 입단속하며 듣기만 했다.


2021년 1월 13일 JTBC 뉴스룸 중에서

뉴스를 보면서 충격의 연속이다.

2020년 취업자 22만명 감소라니요.


이과생의 테크트리는 치킨집 사장이요. 문과생의 테크트리는 유튜버란다. 퇴직금 위로금을 받고 퇴사하려는 사람들, 덕질을 좇아 부캐를 찾으려는 열풍이 한창이지만 막상 사회에 이제 막 발 디뎌야 할 20대 초반은 본캐도 없다.


드라마 허쉬의 초반부에서 인턴이 투신자살한다. 편집국장은 식사 중에 출신 대학을 운운하며 '지잡대 출신 그 인턴'의 이름만 정규직 전환 명단에서 도려내라고 아랫사람(황정민 분)에게 한다.

옆 테이블에 앉아 식사중이던 그 인턴은 그 말을 듣는다. 이 후 그녀의 마음속에 쌓인 복잡한 감정이 자라나 커다란 괴물이 되어 그녀를 등 떠 밀게 되고 못다 핀 꽃 한송이가 창 밖으로 떨어진다.


취업준비생들은 단군 이래 어느때 보다 고스펙이라는데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정규직 전환'이란 말은 또 왜 이렇게 갑질처럼 들릴까.






귀하디 귀한 신입사원들

2호선 복작대는 교대역에서 수많은 인파에 휩싸이다 자연스레 옆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신입이 안 들어와. 몇 년째 신입이 할 일을 내가 해.'


속으로 크게 공감했다. 다른 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도대체 왜 때문에. 직장인들은 퇴사를 열망하고 부캐를 키우려 하고 회사는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사회초년생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걸까. 난감한 현실이다.



삶의 무게를 한 없이 지고 누가 대신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가끔 한다. 게임 속 캐릭터가 나 대신 세상을 살고 나는 스마트폰에서 조종만 하면 캐릭터가 나 대신 살아지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상상.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 '젊은이들의 먹고 살 고민' 다 늙은 사람처럼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간다. 내가 암만 고민해 봐야 해결도 안 날 이 고민을...



눈이 오고 태풍이 불어도 따뜻한 봄이 오면 꽃은 또 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38학번이 될 조카의 미래를 응원하며

뽀로로를 사랑하는 2019년생 조카

나보다 30살 어린, 돌을 갓 지난 조카 2019년생 하린이가 케잌에 꽂힌 촛불을 바라보며 해맑은 미소를 띤다.


30년 전, 비디오테이프를 통해만 영상을 볼 수 있었고 영상을 녹화하기 위해서는 카메라보다 비싼 캠코더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라는 채널을 통해 전 세계 어디에서도 같은 영상을 볼 수 있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촬영도 할 수 있다. 3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발하고 재미난 일들이다.


하린이가 20,30대가 될 때는 지금은 상상도 못 했던 더 나은, 더 재미난 세대가 되기를 고모로서 진심으로 바란다.


그때 우리,

코로나로 마스크 쓰며 살던 이 시기를 잘 견뎠다고 웃으며 넘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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