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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해도 되는 사람
퇴사할 때 동료들에게 뿌리고 온 퇴사 절차 안내서
by
아코더
Oct 1. 2020
작년 6월,
전에 다니던 대기업에서 퇴사를 하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직서'라는 것을 제출해 보았다.
퇴사,
이직할 수밖에 없었다. 왜?
7년 하고도 절반의 회사 생활을 하였음에도 아직 겪어보지 않은 것들이 많은 내 나이 31세.
기혼여성인 내가 퇴사를 하고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한다는 것은 크나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사수로 있던 구 남친 (이자 현 남편)과 사내연애 후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남편이 이직을 할 수도 있었고, 굳이 기혼여성인 나보다는 남자가 움직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하였지만, 여러 가지 상황적인 이유로 내가 현 회사에 사브작사브작 몰래몰래 지원하여 입사하게 되었다.
기혼여성의 이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 이어 나가보도록 하고, 본 글에서는 퇴사 절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친정'이었던 첫 직장을 떠나며
첫 직장은 '친정'이라고 한다. 나 또한 미운 정 고운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퇴사 절차 메일을 쓰면서도 괜스레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큰 회사인데 내가 이렇게 <퇴직 절차 메일>을 팀 동료들에게 찌끄리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뭐 어쨌든, 작년 5월의
마지막 날,
퇴사를 하며 팀 동료들에게 보낸 <퇴사 절차에 관한 메일, Dobby is Free>를 발췌하여
최초 공개할게요.
From:
Sent: Friday, May 31, 2019 1:03 PM
To:...
Subject: Dobby is free
생각보다 간단한 절차입니다.
당분간 발생하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퇴직 절차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공유합니다.
1. 사직서를
팀장
에게 가져간다.
2.
팀장
과
면담
을 한다.
3.
기획팀 팀장
과
면담
을 한다. (나의 경우, 기획팀 중간관리자와 한번, 기획팀장과 한번 면담함)
4.
팀장
면담
후 사직서를 받아서 스캔한다.
5. 회사 포탈에 퇴직 신청 전자결재를 올린다. (물품 반납 확인서 1부, 사직서 1부 스캔본 첨부)
6. 회사 포탈에서 노트북, 모니터 PC반납 확인서를 전자결재로 올린다
7. 사원증은 16층 지원팀에 전달한다.
8. 노트북과 모니터는 15층 IT기획팀에 전달한다.
9. 3~4일 후 5. 의 전자결재 승인이 난다.
10. Dobby is free.
모든
행동 절차
를 나누다 보니 10단계가 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튼튼한 두 다리
와 어떤 회유책과 상처 주려는 말에도 견딜만한
맷집
이다.
대개의 경우, 퇴사자들과의 면담에서
'돈'과
관련하여 회유를 한다.
나 역시도 비슷한 회유의 말을 들었는데, 그러한 질문을 듣자마자
"생각해 둔 것이 있으나,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다."
라고 마치 외운 문장을 말하듯이 로봇처럼 둘러댔다. 그런데 저 말의 속 뜻은,
'뭐가 있긴 한데 말해 주고 싶지 않은데?'
를 정중하게 대답하려고 한 것이다.
다소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적당히 한번 찔러주면서 예의 있게 대답하는 것이 포인트다.
물론 스위스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레퍼런스 체크 때문에 전 직장 기획팀으로 이직 사실이 전달되긴 하였지만...
아참, 대개의 경우 퇴사를 할 때 기획팀이나 인사팀을 통해
레퍼런스
체크라는 것을 정말 하더라. (그 회사에 정말 그런 사람 있느냐고. 하자(?) 있는 거 있냐고. 하는 정도의 체크가 아닐까 싶다.)
말로만 들었던 레퍼런스 체크, 이직이 처음인 나에게 돌아가는 모든 상황들은 신기하기만 했다.
이러한 일련의 퇴사 절차라는 것이 녹록지 않았으나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로봇입니다.
를 속으로 되뇌며, 최종 결재권자인 본부장 면담을 진행했고, 15분 정도 회유와 비꼬기 사이를 오가는 토크가 이어지다가 결국 나의 퇴사는 무려 4일 만에 빛의 속도로 확정되었다.
퇴사 확정이 난 날, 스위스 취리히행 비행기에 올랐고 열흘간의 힐링 휴식 후 귀국했다.
위의 메일의 초반부에도 '당분간 발생하지 말아야겠지만...'이라고 언급하였듯이, 퇴사라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며, 요즘 들어 '퇴사'라는 말이 유행인 것처럼 번져가 다소 안타까운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렇지
만 이직이든 어떠한 새 출발이든, 퇴사라는 '끝' 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 이 있는 것이니,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겪을 일이겠다.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젊은이들에게...
오늘도
정신승리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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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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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공간에서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기술사. 퇴근 하면 집현전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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