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빠도 아날로그 필사노트를 고집 하는 이유

책을 더 사랑하게 되는 필사노트

by 아코더


좋은 문장을 필사하다 보면 작가가 품은 그리움의 숨결이 나의 뼛속까지 스며들어 혼연일체가 된다. P 111 책 쓰기는 애쓰기다.


80대 할머니가 된 반 세기 후 쯤의 일을 상상해본다. 50년 전 내가 읽었던 그 소설을 손주가 읽고 필사하는 모습을 본다. 50년도 넘게 캐캐묵은 필사노트를 보여주며 이와 같이 말한다면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할머니도 그 책 읽었어. 너가 필사한 그 문장이 여기에도 있단다.” 라고 말이다.




필사를 하다 보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고 문장을 꾹꾹 눌러 담아 필사노트를 채우고 싶은 욕심이 난다. 한 달에 10권 이상 읽을 때 보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필사하고 읽으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흘러 책 속 그 문장을 언제든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책을 읽기란 쉽지 않다. 한 권의 소설을 읽더라도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처음 만나 두근대는 마음을 묘사한 한 문장, 현생과는 다른 판타지한 세계를 묘사한 문장을 읽고 넘기지 않고 다시 돌아와 필사해 둔다면, 소설은 그 이상의 값어치를 더하게 된다. 실전으로 들어가 나의 필사 루틴을 소개한다.




평일, 지하철 독서 후 25분 필사노트 쓰기

잠들기 전 가방에 챙기는 3가지 ‘지하철 독서 아이템’이 있다. 읽을 책, 인덱스지 그리고 책갈피다. 잠을 푹 자고 다음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로 당산철교를 건너며 책을 꺼낸다.


10정거장쯤 지날 때까지 책을 읽는데 평일 중 독서에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다.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야금야금 책을 읽으며 심장이나 뇌를 때리는 문장에 머물러 인덱스지를 붙인다. 나만의 인덱스 붙이기 룰은 ‘목적’에 따라 ‘방향’을 달리 붙이는 것이다.


노트에 필사 할 문장은 해당 문장 책 옆구리를 쭉 따라가 가로로 인덱스지를 붙인다. 생각을 확장해 콘텐츠로 활용할 만하다 싶은 문장은 책 윗구리(?)를 쭉 따라가 세로로 붙여 구분한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면 책을 읽으며 집중력이 떨어진 후이므로 책과 잠시 이별한다. 하루 숙성 후 다시 읽으면 다시 봐도 마음을 울려 글자가 더 선명히 보이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하루 만에 정이 떨어진 문장도 있다.


매일 기록하는 일기장에 책에 좋았던 문장을 옮겨 적기도 해봤지만 필사노트용 노트를 한 권 마련해서 모아두는 편이 간편해서 좋았다. 200자 원고지에 독후감상문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시작하면 힘들다. 필사노트의 목적은 환기된 시선에서 수집한 문장을 만났을 때 책과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작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작가의 이야기 중 특별히 공감한 문장을 녹음하듯 노트에 수집한다. 필사를 하기 위해 인덱스 붙인 부분을 다시 읽으면 자연스레 ‘발췌독’이 된다. (발췌독이란 책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읽는 독서법이다.) 책 옆구리에 붙은 인덱스지를 따라 발췌독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문장을 비로소 필사한다.


책을 읽고 바로 덮으면 무릎을 탁 치고 깨달았던 것도 어느새 희미해져 버린다. 감동을 되살리려면 책을 다시 펼쳐 해당 부분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인간의 몸속 어딘가에 임시저장 폴더가 있어 저장이 된다면 좋겠지만 저장해 두지 않은 감동 문장은 완전 삭제되어 다시 끄집어 내야 한다. 한번에 찾으면 좋겠지만 200페이지가 넘는 활자의 바다에서 마음에 들었던 표현을 단번에 낚아 채는 운은 별로 없었다. 필사노트를 쓰기 전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책을 푸덕거리며 감명 깊었던 부분을 찾아 지도 없이 헤매야 했다.



주말, 자주 가는 카페 세팅하기


주말 오전이면 책, 필사 노트 그리고 필통을 들고 고소한 커피맛이 일품인 집 근처 동네 카페에 간다. 눈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밖에서 들어오는 태양빛과 형광등의 조명이 조화롭게 내리쬐는 자리, 귀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스피커와 먼 구석 자리가 명당이다.


사람이 몰리는 점심시간 이후를 피해 오전 11시쯤 내가 정한 명당 자리를 차지한다.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자리에 와서 각 잡고 책을 읽는데, 평일보다 에너지가 충분한 주말에는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내키는 문장을 바로 필사 한다.



필사노트를 쓸 때 나만의 팁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록을 결합한 방법이다. 스마트폰으로 좋은 문장을 찍은 다음 그 사진을 출력해서 필사노트에 붙인다. 이 때 풀테이프로 붙이면 풀로 붙일 때처럼 뒷면이 울지 않게 붙일 수 있어 늘 떨어지지 않게 쟁인다.


문장 뿐 아니라 도해로 설명되어 있거나 책 속 활자 분위기 자체를 그대로 기억하고 싶을 때 주로 쓰는 방법이다. 노트에 사진을 붙여 더욱 입체적인 하이브리드 기록을 완성한다.


뿐만 아니라 종이를 구겨서 질감을 표현하는 것도 아날로그 기록만이 줄 수 있는 효과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기록의 뿌듯함을 배로 느끼고 필사노트에 대한 사랑이 피어남을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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