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로 꼬불거리는 곱슬머리를 피러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에 들어서자 만난 디자이너는 다름 아닌 중년의 남자였다. 화장을 예쁘게 하고 네일아트도 화려하게 한 여성 디자이너가 있을 거라 예상한 나로서는 중년의 남성분을 마주하자 낯선 마음에 백스텝으로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예약을 하고 왔으니 앉아 보기로 했다.
딱 봐도 아빠 또래의 남자 디자이너였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왜 직접 이 고된 매직 스트레이트 작업을 하시는 걸까, 궁금해서 은근하게 말문을 열었다.
"여기 미용실 되게 오래되었나 봐요."
"이 자리에서만 16년 했어요."
요즘 시니어 헤어디자이너들은 실무를 하지 않고 샵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을 많이 하던데 이 중년 남성의 디자이너 분은 아니었다. 자기는 소위 말해 '미용장이' 라면서 관리자보다 실무자로 남고픈 마음이라고 했다. 아래쪽은 컬이 충분히 살아 있으니 곱슬인 부분만 피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청 멜빵바지의 앞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내 들었다.
머리를 꼼꼼하게 피는 정성스러운 손길부터 머리를 대하는 눈빛 하나하나까지 감동이었다. 요령이 생기다 보면 짬밥과 정성은 반비례할 거라는 나의 예상을 뒤집었다.
올해 11년 차를 맞이하며 관리자와 전문가의 길 사이에서 혼자 많이 고민해보았다. 주위 선배들이나 동료들과도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뒷짐 지고 관리하는 관리자가 될 것이냐 사서 고생하며 실무를 계속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본인의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하게 될 텐데,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즘 버젼 나로서의 답은 '전문가'를 향한다. 철갑옷을 입은 스나이퍼 같은 전문가가 되고 싶다. 철갑옷을 입으려면 그만큼 맷집이 두터워야 하고, 스나이퍼가 되려면 정확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스나이퍼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에 말을 타고 전장에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리더보다 존재감이 덜 한데 나는 왜 그런 답을 했을까?
취업준비생 중 한 명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언제가 가장 보람 있으세요?"
설계업무에서 난감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기술적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그 문제를 해결해 냈을 때 나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전문가로서 빛을 내는 순간이 쌓일수록 직업적 주인 의식은 높아진다.
깊이뿐 아니라 넓이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12 색깔의 팔레트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데, 점점 팔레트의 물감을 24색, 36색으로 갖추듯이 경험을 늘여야 한다. 그려낸 그림, 즉 레퍼런스가 많아 적소에 써야 할 색깔을 정확히 알고 채색하는 경험 많은 화가처럼 나만의 팔레트를 넓혀나가고 싶다.
우리는 직업인으로 사는가 직장인으로 사는가.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만들기 위해 나 스스로 애써 다듬어가고자 한다면 월급에 목매는 직장인으로 살다가 뒷방 늙은이가 되기보다는, 후배들에게 커피 한잔이라도 기분 좋게 사면서 인정받는 직업인이 되지 않을까. 직장인보다 직업인, 관리자보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부족한 부분을 단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