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에게 휴가란

눈치 보며 내 휴가 제대로 못 쓰는 마음

by 아코더

짬밥을 먹을수록 연차가 쌓일수록 시원하게 휴가 내기가 어렵다. 건설회사에서 프로젝트는 공사 수주를 따내기 위한 입찰 프로젝트와 수주 후 설계와 시공단계를 거치는 수행 프로젝트로 나뉜다. 프로젝트가 요이땅! 하고 시작된 순간 프로젝트에 배정된 팀원들은 한 배를 탄다.


사원급들은 그 배 안에서 파도로 들어온 물을 배 밖으로 퍼 나르고 대리급들은 여기저기 분주하게 배 안을 돌아다니거나 척척 월척을 낚는다. 시니어급들은 물고기가 얼마나 잡혔는지 점검하고 굶지는 않을지 계산기를 두드리며 진척률을 따진다. 배에서 내리기 까지, 그러니까 프로젝트가 끝나기까지 최소 1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2인자 급인 시니어들이 중심을 잘 잡아야 풍파를 견뎌낼 수 있다.


배를 타고 가다가 멀미가 난 사원은 서핑보드를 들고 난데없이 바다로 뛰어든다. 배를 떠나 저 멀리 하루 이틀 혹은 일주일 이상 동안 휴식을 다녀온다. 그런 모습을 아련히 바라보는 선임들은 흔들리는 배 안에서 울렁임을 참으며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린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팀원들의 모습을 배에서 순항하는 선원들에 비유했는데, 실제로도 선임들은 휴가에 입맛을 다신다. 법적으로 만근 1년을 하면 15개의 휴가가 주어지고, 연차가 쌓일수록 휴가일수도 쌓이니 선임들이 가장 휴가일수가 많다. 사원 대리들이 휴가를 갈 때 "그래 갈 수 있을 때 가라!"라고 쿨하게 말하지만 정작 자기가 휴가를 내야 할 때는 팀장뿐 아니라 동료들의 눈치를 본다.


건설사의 고객은 석유화학 혹은 정유 회사이다. 고객사인 발주처를 상대로 미팅이 잡히는 날이면 다른 팀원은 몰라도 과장급은 연차를 쓰기가 어렵다. 발주처와 미팅을 하는데 미팅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 과장급에서 연차를 내는 건 풍파 앞에서 서핑보드를 타고 뛰어내리는 것과 다름없다.


월급의 액수만큼 책임감이 보태진다. 달력에 개인 행사보다 회사 일을 더 진하게 써야 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시소의 양쪽 중 가족보다 발주처가 앉은 쪽으로 무게가 쏠린다.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기에 바다를 모두 건넌 후 그제야 숨을 고른다.


아니, 내 휴가 내가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쏘냐. 라고 급발진도 해 보고 에라이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아몰랑 해보지만 마음 한 구석이 어쩐지 무겁다.


선임에게 휴가란 때로는 이런 것이다.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 숨을 참았다가 나오는 잠수부처럼 해저로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가 어푸 하면서 얻어내는 산소 같은 것. 머릿속에 산소가 빠져서 핑 돌더라도 기어코 정신력으로 참아내었다가 모든 잠수부들이 임무를 완수하고 떠났을 때 가장 나중에서야 물 밖으로 호흡하는 것.


"꼭 그렇게 까지 회사에 가야만 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밥값 했다 라고 알아차리는 일. 어깨에 짊어진 무게만큼 정직하게 배를 이끄는 일. 어느덧 반대편 선착장으로 배가 도착했을 때 그제야 조용히 개인생활을 정비하는 것이 내 옷에 맞다라고 무겁게 여기며 걸어 나간다.




이 글이 고참을 미화하는 글이 되지 않기를, 지극히 순도 높은 글이어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현실에서 고참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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