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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Dec 16. 2021

'다정함'이라는 키워드

아까 많이 놀랐지

밀려드는 파도에 발 디딜 곳이 없어 동동거리다 우리 모두 물에 훅 빠지기로 했다. 위드 코로나의 선언이었다. 일일 코로나 확진자가 7천 명을 돌파하다 보니 우리는 그 물결에 휩쓸려 그 안에서 동동 뜨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 블루를 넘어 코로나 피로에 이르렀다.


나에게는 없을 일일 줄 알았는데 나도 코로나 검사를 게 되었다. 내일이면 집 근처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 근무하고 있는 TFT 사무실에는 각 설계팀마다 나누어서 배치가 되어 있다. 공정팀인 우리 방은 608호, 우리 옆방에 토목공학이나 기계공학을 전공한 아저씨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이 609호다. 609호에서 일하는 직원 중 한 명이 코로나에 확진되었고, 밀접 접촉자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동선이 겹쳐서 인지 회사에서는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내일은 재택근무로 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고 와야 한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콧구멍으로 들어가서 뇌까지 쑤신다는 코로나 검사가 무섭다고 카톡을 보냈다. 엄마는 담백하게 다정한 위로를 해 주었다. 간단하다고. 순간일 뿐이라는 말로 코로나 검사 따위가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카카오톡 메시지 만으로도 엄마가 주는 사랑의 온기가 느껴졌고 나는 두려움이라는 눈꺼풀을 조금 벗겨 낼 수 있었다.



지난 주말  돌이 갓 지난 조카가 동화책 한 권을 옹알옹알 읊었다. 내용은 이렇다. 베베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 베베의 아빠는 넘어진 베베를 안아준다. 베베의 엄마는 말한다.

"아까 많이 놀랐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 순간의 감정을 반드시 글로 쓰겠노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난 지 27개월 된 생명에게 알려주동화 속 '다정함' 이란 이런 것이구나. 우리는 사람이라서  '언어'를 듣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지능을 가졌다. 엄마 아빠가 주는 다정한 태도를 동화로 읽고 되뇌이는 27개월 아이를 보고 또 한 번 '사람'으로 태어나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이가 없지만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꼭 다정하게 키우고 싶다. (아주 어려운 일일 테지만.) 우리는 따뜻한 포옹이나 다정한 말로 온기를 나눌 수 있고 그 틈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존재이니까.



코로나라는 환경 속에서 지치면서 우리는 쓰다듬어주는 '다정함'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요즘 에세이 신간들의 프롤로그에서는 '다정'이라는 키워드로 독자들을 붙들어 세운다. 다정함은 치즈케잌과 꼭 닮았다. 한 입 먹어보고 다시 생각나 찾게 되는 맛처럼, 처음에는 느끼했지만 들을수록 익숙해지는 '다정함'이라는 단어가 치즈케잌과 꼭 닮았다.

미움받을 용기를 시작으로 내내 나오던 '용기'라는 키워드처럼 다정함 이라는 키워드도 언젠가는 시들해지겠지만, 지쳐버린 이 상황에서 그 '다정함' 이 커피 속 설탕 한 티스푼만큼씩 우리 삶에 필요하다.


우리 자신에게 한 번 이야기해 주자.


"아까 많이 놀랐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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