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 중 하나는 마스킹테이프 박스이다. 가로 10센치, 세로 8센치, 길이 10센치 쯤의 공간으로 마스킹테이프만을 담아둔 공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간이었다. 마스킹테이프는 '마스킹', 즉, 물감이나 페인트를 칠할 때 불필요한 부분을 가리기 위해 붙여두는 테이프로 원래는 보조역할을 하던 테이프 인데 꾸미기 소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의 마테(마스킹테이프를 줄여서 '마테') 군단은 처음에는 셋이었다가 점점 덩치를 키워갔고 이제 작은 박스2개로는 다 담을 수 없게 되었다. 초기 멤버 셋은 바로 무인양품에서 사 온 녀석들이었다. 베이지, 브라운, 그레이 삼총사. 딱 봐도 무난함 그 자체인 색 조합으로 구성된 마테 세트는 무인양품스럽게 참 실용적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디자인이긴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무난템'인 무인양품 마테는 마스킹테이프계의 오랜 스테디셀러로 마테 세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기 좋다.
마테 구매처 (온라인과 오프라인 쇼핑)
이 후로 대전 선화동에 있는 프렐류드 라는 문구소품샵에 가서 마테 2개를 들여왔다. 이번에는 '패턴'이 있는 마테를 골랐는데 그 중 하나는 컴포지션 패턴으로 검정색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색상 없이 하양과 검정으로만 이루어진 이 마테는 검정색 펜으로 쓰고 무심한듯 툭 붙이면 하얀 페이지를 좀 더 감각적으로 꾸밀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핑크색과 검정색 버젼의 컴포지션 패턴으로 단순히 핑크색이 예뻐서 사게 되었다. 사랑에 이유가 없듯이 마테가 쌓여가는 데에도 이유는 없다. 내 취향이고 내 기호 이며 그 자체로 라이프스타일에 스며든다.
다이어리 꾸미는 이른바 '다꾸 영상'을 즐겨 본다. 귀염뽀짝 한 스타일 보다는 덜 꾸미더라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그런 느낌의 다꾸 채널 영상을 보다가 'WONMOV, 원뭅' 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온라인으로만 판매되는 브랜드인데 월요일과 목요일에만 배송이 되어서 주문 후에 오매불망 택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3시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택배사 문자를 받고 회사에서 어찌나 엉덩이가 들썩거리던지. 예상했던 대로 취향저격인 감각적인 디자인이었고, 특히 클립 무늬는 스크랩 다꾸를 할 때 많이 쓰이기 때문에 지갑을 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서울일러스트페어에서 '글렌' 이라는 브랜드에서도 클립 모양의 마테를 판매 하길래 박람회 행사 가격으로 모셔 오기도 했다. 이렇게 마테 식구가 하나둘씩 늘어가고 나의 마테 사랑은 깊어져 갔다.
'마테띵', 작고 소중한 나눔
독서와 기록을 좋아하는 나는 특히 책 유튜브 채널 '도톰한 하루'를 좋아한다. 따뜻한 색감의 영상과 조곤조곤한 이야기가 담긴 영상인데 여기서 또 알게된 마테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프라인 매장에서 발견하지 않는다면 마테를 알게되는 계기가 모두 유튜브구나.) 바로 알라딘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 모양 마테다. 폭 2.5 센치로 꽤 두꺼운 편인 이 마테는 총 길이가 10 미터이다. 직업병이 도져서 이 하나의 마테를 가지고 평생 동안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 계산해 본다. 우선 1년 52주 동안 1주에 1권씩 책을 읽고 5센치 길이로 잘라 매번 독서노트에 붙인다고 가정해 본다. (독서노트를 책을 읽고 매번 쓰지 않고, 주당 1권을 읽지도 못하므로 넉넉한 가정이다.) 결국 총 길이 10 m 인 이 마테를 앞으로 50년은 너끈히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5 cm /1권 X 52권 / 1년X 50 년= 13000cm = 13 m
10미터 짜리 마테를 다 쓰는데 평생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다 보니 '마테띵' 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안 쓰는 플라스틱 카드에 마스킹테이프를 빙빙 감아 붙여서 나눠 주는 것을 '마테띵' 이라고 한다. 당근마켓에서 종종 '마테띵' 을 검색하면 판매자들이 보통 20대 친구들이다. 서른 중반에 '마테띵'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하고 부끄러워 하기도 하지만 '마테띵'만한 작고 소중한 나눔이 또 있으랴.
내 취향을 찾아서
마스킹테이프 매니아라면 꼭 가봐야 할 곳을 한 군데 소개한다. 마포구 합정동에 '롤드페인트, Rolledpaint' 라는 곳인데 마스킹테이프와 마스킹테이프 관련 물품을 파는 마테 전문 소품이 생겼길래 오후반차를 내고 가보았다. 마스킹테이프는 그저 다이어리 꾸밀 때 쓰곤 했는데 그 밖에도 용도가 너무나 다양했고 '예술' 의 한 영역이기 까지 했다. 롤드페인트에 들어서면 마테를 테스트 해 볼 수 있도록 가로 3센치 x 세로 10 센치 길이의 하얀 태그 종이를 준다. 드넓은 마테의 세계를 헤엄치며 이 마테 저 마테 샘플을 떼어다가 종이에 붙이다보면 내 취향을 찾을 수 있다. 1.5센치미터 정도의 검지 손가락 너비만한 마스킹테이프부터 폭넓은 넓직한 마스킹테이프 까지 크기도 디자인도 종류가 다양했다. 'mt(maskingtape)' 라는 일본 문구 브랜드의 갖가지 패턴과 색감의 마테들이 입점되어 있고 롤드페인트 에서도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마테도 볼 수 있다. 롤드페인트에서 자체 제작하는 마테 중에서 나는 연한 갈색 하트무늬가 세로로 이어지는 마테를 골라 들여왔다. 몰스킨 노트에 필사노트를 쓸 때 책의 별점을 매기기 위한 용도로 쓰는 중인데 사이즈가 딱 알맞다.
책상 위 마테탑을 바라보며 마테 구매 역사를 돌아보니 단 하나의 마테도 버릴 수 없이 소중하다. 밴드로 치면 저음을 담당하며 곡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베이스 기타처럼 다꾸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주는 없어서는 안될 문구가 바로 마스킹테이프이다. 그러다 보니 미니멀리스트인 문구덕후 지만 마테를 향한 물욕은 도저히 컨트롤하기가 어렵다. 마테 하나 당 가격이 5천원 내외 이다보니 음료 한 잔 먹은 셈 치고 구매하기 쉽다. 와글와글 모인 이 마테들을 책상위에 다 펼쳐놓을 수는 없으니 몇개는 책상위에 올려 놓고 몇개는 서랍속에 넣어둔다. 하지만 책상위에 놓인 마테만 쓰다보면 다른 마테들을 잊고 살 수 있으므로 주기적으로 서랍 속 마테를 들여다보고 교체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한다. 작은 잡초부터 큰풀까지 관리해야 하는 정원사처럼 책상 위를 관리하는 집순이는 책상 위에서 작은 문구에서 큰 책까지 정돈하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