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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Jul 02. 2024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리고 회복해야지

슬픔을 곱씹는 건 좋은 일일까


눈물버튼

쌍둥이를 20주 2일에 하늘나라에 보내주고 2주가 지난 지금도, 이따금 가슴속에서 뜨끈한 기운이 올라오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왜 나는 울까. 울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계속 울보 모드로 있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하고 거울을 보며 담담한 표정을 연습한다.


남편과 야구 중계를 보며, '나이스! 안타!' 하거나, 좋아하는 문구류를 잔뜩 늘어놓고 방구석 문방구 놀이를 하면서 하루하루 일상을 행복으로 채우 노력했다. 그러다가도 지인들의 안부 문자나 전화를 받으면 또 다중이마냥 마음 속 '슬픔이'가 고개를 내민다.


외국인 회사 동료가 보내온 카톡을 읽고 또 한참 울었다

 '당신, 그동안 힘들었지.

  내 말이 어떤 위로가 되겠니.

  너무 마음 아프다.'


라는 말을 들으면 또 쉽게 무너져 내렸다.


급실에 도착해 딱딱한 병실 침대에 처음 누웠던 날,

처음으로 척추마취라는 것을 하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신기해하면서도 수술이라는 것 앞에 두려움에 떨며 울던 날,

태반 찌꺼기를 빼내는 마지막 날, 처음으로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이를 달달 떨었을 때 간호사들이 이불을 덮어주고 산소마스크를 껴줬던 순간,

아기들을 분만한 당일 저녁, 엄마랑 통화하며 소리 내며 오열한 날,

유골함에 손을 얹고 울며 기도하던 날.


내 인생에 처음으로 겪은 촘촘하고 강도 높은 아픔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이 한 장면 한 장면 와르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설움의 눈물이 났다. '맞아, 나, 인생의 큰 파도 한번 넘었었지. 나 힘들었던 사람이었지.' 하면서 자동으로 눈물이 났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울보라고 했지만 눈물샘을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소리 내며 엉엉 울다가도 한숨 한 번 크게 내쉬고 나면 또 눈물이 쏙 들어갔눈물의 주기가 조금씩 느슨해져 갔다.



한의원


분만 1주일 후, 한의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 보았을 때 나는 왜 내 눈물버튼이 버튼식에서 터치식으로 바뀌었는지, 왜 이리 쉽게 눈물 버튼이 눌렸는지 알 수 있었다.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이라는 검사 결과가 내가 울보가 된 이유를 말해 주었다. 초조함과 긴장을 나타내는 '교감신경'의 수치가 무기력함과 느슨함을 나타내는 '부교감신경'의 수치보다 훨씬 높았다. 또 스트레스 지수는 매우 나쁨이었는데 한의사 선생님 말로는 두세 달에 한번 꼴로 나 같은 환자를 만난다고 했다. 명치 아래쪽을 꾹 눌렀을 때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위에 스트레스성 염증이 있을 거란 소견이었다. 명치 위에 돌덩이가 올라간 것 같아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답답함을 해소하려 했는데 내가 아픈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 노트

삶을 원상복귀 시키기 위해 '회복 노트'라는 것을 만들었다. 회사로부터 한 달간의 사산 휴가를 받았고, 퇴원 후 집에 와서 이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줄어드는 몸무게와 얼마나 울었는지 마음 상태도 쓰고, 비운 물건들도 목록으로 적었고, 어디에 내 보일 수 없는 감정일기도 썼다.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나를 돕는 방법이었다. 집 밖으로 많이 나가진 않았지만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행복을 만년필로 적는 행위는 '마음 디톡스'가 되어주었다.


내 이메일 주소의 앞 5글자는 'smile'이다. 웃음이 많은 것이 내 성격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는데, 이번 일을 겪고 웃음이 많이 사라졌다. 이전의 밝은 나로 돌아가기 위해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자꾸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품을 잔뜩 내어 샤워를 하고 달달한 스테비아 토마토를 한 알 한 알 깨물어 먹으면서 내 마음속에 주저앉은 '기쁨이'에게 손 내밀어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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