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를 20주 2일에 하늘나라에 보내주고 2주가 지난 지금도, 이따금 가슴속에서 뜨끈한 기운이 올라오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왜 나는 울까. 울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계속 울보 모드로 있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하고 거울을 보며담담한 표정을 연습한다.
남편과 야구 중계를 보며, '나이스! 안타!' 하거나, 좋아하는 문구류를 잔뜩 늘어놓고 방구석 문방구 놀이를 하면서 하루하루 일상을행복으로채우려 노력했다. 그러다가도 지인들의 안부 문자나 전화를 받으면 또 다중이마냥 마음 속 '슬픔이'가 고개를 쑥 내민다.
외국인 회사 동료가 보내온 카톡을 읽고 또 한참 울었다
'당신, 그동안 힘들었지.
내 말이 어떤 위로가 되겠니.
너무 마음 아프다.'
라는 말을 들으면 또 쉽게 무너져 내렸다.
응급실에 도착해 딱딱한 병실 침대에 처음 누웠던 날,
처음으로 척추마취라는 것을 하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신기해하면서도 수술이라는 것 앞에 두려움에 떨며 울던 날,
태반 찌꺼기를 빼내는 마지막 날, 처음으로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이를 달달 떨었을 때 간호사들이 이불을 덮어주고 산소마스크를 껴줬던 순간,
아기들을 분만한 당일 저녁, 엄마랑 통화하며 소리 내며 오열한 날,
유골함에 손을 얹고 울며 기도하던 날.
내 인생에 처음으로 겪은 촘촘하고 강도 높은 아픔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이한 장면 한 장면 와르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설움의 눈물이 났다. '맞아, 나, 인생의 큰 파도 한번 넘었었지. 나 힘들었던 사람이었지.' 하면서 자동으로 눈물이 났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울보라고 했지만 눈물샘을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소리 내며 엉엉 울다가도 한숨 한 번 크게 내쉬고 나면 또 눈물이 쏙 들어갔고 눈물의 주기가 조금씩 느슨해져 갔다.
한의원
분만 1주일 후, 한의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 보았을 때 나는 왜 내 눈물버튼이 버튼식에서 터치식으로 바뀌었는지, 왜 이리 쉽게 눈물 버튼이 눌렸는지 알 수 있었다.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이라는 검사 결과가 내가 울보가 된 이유를 말해 주었다. 초조함과 긴장을 나타내는 '교감신경'의 수치가 무기력함과 느슨함을 나타내는 '부교감신경'의 수치보다 훨씬 높았다. 또 스트레스 지수는 매우 나쁨이었는데 한의사 선생님 말로는 두세 달에 한번 꼴로 나 같은 환자를 만난다고 했다. 명치 아래쪽을 꾹 눌렀을 때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위에 스트레스성 염증이 있을 거란 소견이었다. 명치 위에 돌덩이가 올라간 것 같아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답답함을 해소하려 했는데 내가 아픈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 노트
삶을 원상복귀 시키기 위해 '회복 노트'라는 것을 만들었다. 회사로부터 한 달간의 사산 휴가를 받았고, 퇴원 후 집에 와서 이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줄어드는 몸무게와 얼마나 울었는지 마음 상태도 쓰고, 비운 물건들도 목록으로 적었고, 어디에 내 보일 수 없는 감정일기도 썼다.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나를 돕는 방법이었다.집 밖으로 많이 나가진 않았지만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행복을 만년필로 적는 행위는 '마음 디톡스'가 되어주었다.
내 이메일 주소의 앞 5글자는 'smile'이다. 웃음이 많은 것이 내 성격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는데, 이번 일을 겪고 웃음이 많이 사라졌다. 이전의밝은 나로 돌아가기 위해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자꾸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거품을 잔뜩 내어 샤워를 하고 달달한 스테비아 토마토를 한 알 한 알 깨물어 먹으면서 내 마음속에 주저앉은 '기쁨이'에게 손 내밀어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