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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Jul 18. 2024

나를 돌보는 30일

사산증명서를 받고 한 달이 지나고


마음 건강
눈물


 아기들을 분만한 날 저녁, 마음을 다잡고 엄마와 통화했는데 결국 오열하고 말았다. 35년 동안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엄마도 유산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 이번 일이 없었다면 몰랐을 엄마의 빛바랜 슬픔. 엄마는 아기들은 다 천국에 갔고 엄마한테는 딸인 내가 더 중요하다고 울며 말했다.

아기들이 천국에 간 지 한 달이 되었지만 때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밤에 나곤 했다. 남편이 통증은 밤에 나타난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분만하던 전 날 밤 12시,  내 몸은 내 마음과 다르게 변화가 일어났다. 새벽 내내 물과 피를 쏟았고 그다음 날 아침 두 천사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밤이면 왜 우는지 알 수 없는 눈물, 머릿속으로 갑자기 우는 이유를 찾으려 생각을 이어나가면 그 이유를 깨닫고는 더 슬퍼졌다. 마루타가 된 것처럼 팔뚝과 발목 여기저기에 주삿바늘을 꼽고 누워 있던 입원 기간 동안 느꼈던 설움, 두려움 그리고 떠나보낸 슬픔과 상실감이 한데 엉킨 응어리였다. 그러면 또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우는 소리는 엄마의 울음소리와 비슷해서 수화기 너머로 들었던 엄마 우는 소리 같아 또 더 슬펐다.  


하루 종일 퍼붓는 장맛비가 계속되다가도 곧 장마 기간이 지나가듯, 눈물이 나는 주기도, 눈물 나는 시간의 길이도 점차 짧아졌다. 소나기가 내리듯 뿌엥 하고 우는 날은 계속 이어졌지만 시간이 약이라 하지 않았던가. 회사에 복귀해서도 눈물 그렁그렁 할 순 없으니 한 달간의 사산 휴가 동안 나는 마인드셋을 다시 하려 노력했다.


몸 건강


산책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튼튼해지겠지. 우선 망가진 몸을 고쳐야 했다. 병실생활을 2주간 하며 운동량이 현저히 줄어들었기에 주치의 선생님은 이제는 몸을 많이 움직이라고 했다.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기도 해서 산책을 나섰는데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젖이 돌지 않도록 가슴을 꽁꽁 싸매고 있었던 2주간은 특히 심했다. 걷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첫 외출로 집 앞 다이소를 갔다. 아이 손을 잡고 걷는 엄마를 보고는 또 눈물이 터져서 급히 집으로 돌아왔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집에 와서 남편을 보고 아프다며 광광 울어댔다. 그때 생각하면, 내가 불쌍해서 또 눈물이 난다. 그래도 지금은 외출이 예전보다는 편해졌고 그 힘든 시기 또한 내가 통과해야 했던 시기였다.


보약


 산후보약을 먹은 지도 보름이 지났다. 분만을 하고 1주일이 지나고 나서 산후보약을 2첩 지었다. 여기서 '첩'의 단위는 1일 3회분, 15일 치 분량이었다. 첫 번째 1첩은 일반약으로, 두 번째 1첩은 녹용이 들어간 한약으로 지었다. 쓴 아메리카노 맛에 적응하듯, 쓴 듯 단듯한 한약맛에 적응해 갈 즈음, 녹용이 들어간 한약이 배달되었다. 밤 10시에 배달된 한약은 따뜻했고 받자마자 한 포를 뜯어 마셨다. 녹용이 들어간 한약은 일반약 보다 거의 2배 가격인데 몸도 두 배 좋아질까 하는 요상한 의심을 하며 꿀꺽꿀꺽 한 포를 털어 마셨다. 미국은 산후보약을 지어먹지 않을 텐데 우리나라 산모들은 미국 산모들하고 몸이 다른 걸까?


나를 위한 선물




여행

 

 태교여행으로 도쿄행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해 놨었다. 여행 하루 전 날 양수가 터지면서 모든 여행 계획을 취소해야 했다. 여행 하루 전날 취소였지만 질병으로 인한 상황이라 수수료가 들지 않았고 항공사와 호텔은 빠르게 취소 처리를 해주었다. 그 심난했던 상황을 지나온 나를 위해, 다시 도쿄행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했다. 홀로 떠난 3박 4일의 도쿄여행이었기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돌아다녔다. 평소에 7천보도 걷기 힘들었는데 15000보씩 걷기도 하며 마음껏 여행했다. 여행 도중, 늦게 내 소식을 알게 된 지인의 연락을 받고는 신호등을 기다리며 또 엉엉 울기도 했다. 여전히 눈물이 한 켠이 남아있었지만 우리 동네도 아닌데 뭐 어때, 하고 거리에서 그냥 막 울고 또 이내 마음을 추스렸다. 내게 '혼자 여행'이라는 미션을 주고 여행 전 준비 기간과 정신없는 여행 기간, 그리고 여행 후 정리하는 기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사산휴가 한 달이 끝났다.  



사랑


 사산휴가가 끝나는 날이 내 생일이었어서 지인들이 기프티콘을 보내주었다. 위로 보다는 축하받는 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날이라 더욱 기분 좋은 하루였다. 내 취향을 잘 아는 지인들은 문구류를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전해 오는 따뜻한 마음들이 감사했다. 나를 위해주는 그 마음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엄마가 통화하면서 울었던 이유도 깊은 곳에 나를 향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이 사산의 아픔을 많이 치유해 주었다. 나는 크리스찬이어서 신앙의 힘으로 회복하기도 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들에 밑줄 그으며 마음속 상처는 아물고 새살이 났다.


두려움이 평안이 되기까지 많은 눈물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생사화복은 신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힘으로 안 되는 많은 점에서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도 생각해 보았다. 새로운 햇빛을 받기 위해 장마기간을 지나듯 자연의 섭리대로 이 시간을 보내는구나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어두운 날들 모두 지나가고 밝은 날 또 올 거다. 물론 또다시 어두운 날 올 수도 있지만, 그 날들 또한 지나간다는 사실을 또 알게 되었다. 이 여름도 지나 곧 가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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