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오감에 집중하며 쓰는 럭셔리한 감사일기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감사일기 쓰기

by 아코더


감사일기를 기록하는 가장 럭셔리한 환경을 상상해보자.

잠들기 전 10시반 정도가 딱 좋겠다. 샤워를 마치고 스킨 로션을 건조하지 않게 발라준다. 하루를 마감한 그 시간. 몸을 편안하게 풀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눈에 안정감을 주는 아이보리빛의 은은한 형광등이 필요할테다. 만년필에 윈저뉴튼 블루블랙 잉크를 담는다. 따뜻한 차가 담긴 컵을 들고 침실에 들어 온다. 오로지 나 혼자 있는 안온하고 아늑한 이 공간에 대추, 구기자, 지황이 담긴 구수한 안심차 향이 방안 가득 퍼진다. 뚝배기 처럼 따뜻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묵직한 컵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어깨와 등이 편하도록 적당히 기울어진 등배개에 몸을 기댄다. 베드 테이블 위에 손바닥 만한 검정색 몰스킨 노트를 올려놓고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는다.


자, 이정도 준비가 되었으면 감사일기를 써볼까.


사각사각, 만년필 펜촉이 마치 탭댄서처럼 종이위에서 춤추며 나는 소리만이 방안 가득 퍼진다. 몰스킨 노트에 끄적이며 내가 딱 좋아하는 가는 세필의 만년필 필감을 손으로 느끼고 사각거리는 소리를 귀로 들으며 이 시간을 즐긴다.


'오늘도 안전하게 무탈하게 잘 살았구나. 오늘 하루는 어떤 것들이 감사했더라.' 하며 하루를 쓰담아 본다. 사소하면서도 감사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내면의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인다. 배경음악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카페에서 듣기 좋은 노래'를 재생하고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청각을 집중한다.


감사의 내용을 한자 한자 적는데 마음을 다한다. 거창하지 않다. 하루 일과 중 큰 성과나 필적할만한 일이 있었다면 거창해 질 수 있지만 대개 사소한 것들이 떠오른다, 이를 테면 아침에 출근 할 때 지하철이 한번에 와서 감사하다. 출근 길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바로 우리 집 층수에 머물러 있어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에 감사하다. 점심 때 구내식당에 나온 따뜻하고 바삭한 튀김 건빵, 아 감사하다! 별 거 아닌듯 해보이는 작은 일들이다.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써두면 언제라도 그날이 비디오 재생되듯 기억 난다.


깊은 밤.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최상의 공간에서 최적의 상태로 감사일기를 기록해 보자.

달달한 대추차의 향으로부터 전해지는 후각,

편안한 조명으로부터의 시각,

사각거리는 만년필 필감의 촉각,

잔잔한 재즈 피아노 선율로부터의 청각,

고소하면서도 따뜻한 차로부터의 미각까지


나를 둘러싼 오감이 완벽하다.


하루를 마무리 하는 이 시간, 오늘 하루도 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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