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라는 어떤 책의 제목 처럼 나는 아침에 죽음을 자주 생각한다. 발걸음이 빨라지는 출근 길, 조금만 돌아가면 공원길로 갈 수 있는데도 빠른 길로 가고 싶어서 장례식장 앞을 지나기 때문이다.
30년을 조금 넘게 살면서 죽은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하얀 면에 덮인 죽은 사람을 본 적이있다. 차가운 새벽, 경황없이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오열한다. 1년에 1번 있을까 말까 하는 그 모습을 보는 날이면 출근길 지하철에서 답이 없는 물음과 생각들이 머릿속에 차오른다.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에서는 5남매를 키우다 병으로 하늘나라에 간 아내와 그녀를 지극히 사랑한 남편이 가상현실 에서 재회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아픈 사연 앞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이길래.
인간은 나약해서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공유와 이동욱 사이에서 누굴 고를지 혼자 마음이 매번 오갔던 드라마 <도깨비> 에서는 망자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세상을 떠나는지를 생생하게 그렸다.
생명이 다하는 느낌, 내가 죽어갈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페이드 아웃될까. 숨이 다하는 순간은 물 속에 잠수할 때 숨 막히는 느낌 보다 백배쯤 더 한 답답함 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의 순간 그리고 사후세계 모두 호흡이 있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종교적인 믿음이나 과학적 추론이 있을 뿐이다.
죽음과 신앙2/5
나는 종교가 있지만 아직도 '죽음'과 '신앙'사이에 물음표가 가득하다.
교회 담임목사님이 오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며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 했다. 장례 후 첫 예배는 어린이 주일 이었는데 그날 성가대에서 '어린이들의 기도' 라는 성가대 찬양을 불러야 했다.
장례 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연습했던 곡이었으므로 곡 자체를 바꾸지 않고 노랫말에 '참, 기쁜 날'을 '참, 은혜로운 날'로 바꾸자고 지휘자님이 제안했다. 기쁘고 사랑스러운 곡이었지만 나는 그 찬양을 부르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모든 성가대원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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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부목사님들의 죽음에 관한 설교가 이어졌지만, 여전히 죽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에, 설교를 들어도 마음을 다스릴 방도를 깊이 깨닫지 못했다.
남겨진 사람의 마음 3/5
내 남은 인생에서 목도할 죽음이 때로는 두렵다.
제발 되돌려 놓아 달라고 목놓아 울어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만큼, 그러니까 30년 여년 후 쯤에는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그 때 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죽음'과 '신앙' 사이에서 번지는 물음들에 답을 내리고 싶다.
지근거리에 조사가 많아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 요즘이었다.
고인을 떠나보낸 동료를 위로하며 같이 먹먹한 시간을 보냈다. 조언을 구할 때면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답을 주는 엄마는
누구나 한번 쯤 가야 할 길을 조금 먼저 간 거다.
라고 이야기 하셨다.
그렇다. 죽음이란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할 길인 것이다.
대기업 그룹 총수도 한 나라의 대통령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수백억 자산가라 한들 자신이 죽어서 나의 죽음을 슬퍼하는 만큼에 비례하여 유산을 주겠다고 유언 남길 수 없을 테다.
주말 아침에 유언장을 써 보세요4/5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꿈 제작가 도제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의뢰하는 꿈을 제작한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종종 죽은 사람이 의뢰해둔 꿈을 통해 만난다고 상상 해본다.
세상을 떠난 후, 살아 있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글이 유언장이다. 유언장을 쓰면 삶이 헛되다는 걸 느끼고 용서하는 마음이 피어난다.
예능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에서 강형욱 훈련사는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 주인과 같이 살아 행복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라고 이야기 한다.
"주인 아줌마, 같이 살면서 행복했어요. 고마웠어요."
개는 유언장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인간은 유언장을 남길 수 있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같이 살면서 행복했고 고마웠다고 남겨본다.
유언장을 적을 때는 어둑한 새벽이 좋다.
하루를 마감하는 밤 시간에 유언장을 적는다면 베갯잎에 소를 이루며 우울한 밤을 보낼 수도 있다. 쓰린 마음 적시는 한두잔 술이 한두병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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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 새벽이나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한 문장 한 문장 눌러 적는 것이 좋겠다.
유언(遺言)이란 어떤 사람이 죽음에 임박하여 남기는 말이다. 유언장에는 필시 정확한 날짜와 서명이 들어가야 효력이 있다.
인간은 본디 선하다라는 성선설을 믿기 때문일까. 유언장을 쓰다 보면 원수와 화해하고 고마웠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회한과 감사를 오가며 마음이 바쁘다. 꼬일대로 꼬였던 응어리는 풀어지고 연민, 아쉬움, 한켠으로는 미안함 같은 것들이 남는다. 목구멍이 뜨끈거리고 눈물이 차오르는 걸 막아낼 도리가 없다.
달콤한 초콜렛맛, 쓴 홍삼맛, 고소한 커피맛을 느끼며 살고 있는 지구와 언제 이별할지 모르겠다.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하늘로 간다는데, 장엄한 광경을 찍는 드론에 올라탄 듯 세상을 내려다 보는 느낌일까.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 5/5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이라는 곡을 얼마 전 팬텀싱어에서 부르는 모습을 보는데 이별 노래 앞에서 눈물 줄줄은 피할 수 없었다.
우리가 지구를 떠나는 날, 나의 죽음을 슬퍼하고 나를 그리워 해줄 사람들에게 남기는 편지 한통 남기는 시간을통해
분명 새로운 주말 아침을 맞이하리라 믿는다.
윤상이 "아주 신중한 선곡이었다." 라고 팬텀싱어 곡에 소감을 나눈<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띄우며 이 글을 닫는다.
넌 분명 이 세상엔 없는데 그래도 이젠 나 울지 않아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더 이상은 슬프지 않아 습관처럼 하늘만 볼 뿐 너와 난 함께 있는걸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너의 숨결도 마지막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