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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 들어 온 '2021년 직원 승진 인사발령'

대리 6년만에 '진급'한 경력직 이직러의 소감

by 아코더


오전 10시 20분 O 대리가 메신저를 걸어왔다.


"김 과장님! 진급 축하해요!"


네?


놀랐다. 승진 발표가 났단다.






초딩 6년, 중딩 3년을 졸업하고 학생 10년 차에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무렵 이사를 갔다. 새로 간 동네의 고등학교 중에서 위아래 올 블랙의 H라인 교복이 날씬해 보인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1 지망에 넣었던 학교에 입학했다. 교복 브랜드가 아이니였는지 아이비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원하던 올블랙 교복과 티니위니 바람막이를 입고 3월 2일에 첫 등교를 했다.


등교 첫 날, 다소 노안이었던 내가 복학생이라는 소문이 났다. 그래서 입학 후 하루 이틀까지 나를 구경하러 기웃댄(?) 또래 학우들이 몇 있었다.







<2021년 직원 승진 인사발령>





제목만 봐도 심장이 멎을듯한 공지글이 떴다.




진급 대상 발표 당일, 처음 해보는 업무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러다 오전 10시 20분, O 대리가 사내 메신저를 걸어왔다. (전 직장이었으면 더 많이 왔을 것 같지만)

연이어서 쪽지와 채팅이 왔다. 같은 사무실 안에 있으면서 인사 한번 안 한 과장님도 축하한다고 쪽지를 보내줬다.


임직원이 1000명 넘는 회사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내 주변에 있는 직원들이 전부다. 오며 가며 얼굴을 봐도 이름을 매치 못하는 직원들이 아직도 많다. 이전에 내가 쓴 글, <경력직 이직러의 모닝커피>에서 처럼 나는 이직한 기혼여성의 고독함을 한껏 느끼며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이런 나에게 하루 종일 메신저가 끊임 없다니. 그래도 관심 가져주고 축하해주니 쪽지 하나 만으로 행복했다. 1년 반을 이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많은 메신저를 하기는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날 관심을 받았듯이 어제 진급자 발표가 나고 직원들의 메신저를 받았다. 마치 복학생 구경 온 또래 학우들의 시선 같이 어색했는데 관심이 고파서였는지 쪽지 하나하나 고마웠다. 마스크 속으로 승천하는 광대를 숨기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다소 촌스럽

회사에서 승진 축하 메시지와 장미꽃을 캘리그래피로 쓴 이미지가 들어간 메일을 보내줬다.





아, 나 과장됐구나.


그제야 실감이 났다.






2011년 12월 26일, 첫 직장에 입사했다. 이제 몇일 후면 10년 차 플랜트 엔지니어다.

아파트가 40년 되면 재건축을 하는 것과 같이 화학공장은 설계 수명 Design Life라는 것이 있는데 보통 20년이고 이에 따라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맞는다. 나는 호황 사이클의 문을 닫으며 건설 업계에 발을 디뎠다.

10년이 지난 지금 신입사원은 안 뽑고 진급 안된 적체 인원만 늘어가며 해가 갈수록 진급률은 낮아졌다. 나 또한 작년에 진급 누락을 겪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에라이, 과장이 뭐 별거냐. 진급 누락이 뭐 대수냐. 어차피 경력직이라 회사에서 순혈만큼(?) 인정받지 못하니 과장 말고 사장해야지. 월급 오르는 만큼 눈알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 보며 영혼과 시간을 드릴 바에 그냥 적당히 다닐란다.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나였다.



잘가요, 김 대리


이제 진급이 된 이상 다시 도비의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일까.

학생 10년 차, 고등학교 입학한 것 처럼

직장인 10년 차, 고등의 도비가 된 김과장 이다.

회사 생활을 짧게 했다기엔 어색한 10년차가 되었다. 허리는 아니어도 허벅지쯤 되었달까.



고등학교 입학하는 마음으로 10년차를 맞이해야지. 회사에 다닐 때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더 배우면서. 김과장의 좌충우돌 회사 뒷이야기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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