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39
하늘을 한 뼘도 볼 수 없게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오늘은 어떤 날궂이가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희한하게도 요양원에선 이런 날씨에 날궂이 행사가 빠지지 않습니다.
비는 안 오는데 날씨가 음산하니 기분도 푹 가라앉아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오전 내내 어둑어둑한 날씨 속에서 일을 합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어르신들을 식사 장소로 이동시켜 드리느라 바삐 움직이는 사이로 누군가 복도를 기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사과나무님입니다.
걸음을 걷지 못하시고 심한 치매를 앓고 계시는 사과나무님은 소대변만 못 가리시고 팔다리 움직임과 말씀하시는 것은 비교적 잘하시는 편입니다.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셔서 걷지 못하시는 데 사과나무님은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그래서 종종 기어서 나오시곤 하십니다.
나오시면서 누군가 마주치면 그때부터 "배고파 밥 줘" 하시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십니다.
소리만 지르시면 다행인데 심한 욕설까지 퍼부으십니다. 특히 이런 날은 꼭 날궂이를 심하게 하십니다.
침상에서 내려오시는 순간을 놓친 우리들 잘못이 큽니다.
침상 안전바를 타 넘으시어 내려오시기 때문에 낙상 위험이 최고치입니다.
만약 낙상으로 어느 부위하나 골절이라도 되셨다면...
생각만으로 아찔 합니다.
우리들은 서로 바쁘다고 사과나무님의 침상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아무도 못 보았습니다.
사실은 근무태만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과나무님은 정말 통제하기 힘듭니다.
오늘 같은 일은 수도 없이 있는 일이고 밤에도 주무시지 않고 침상 탈출과 욕설 고성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어르신들도 잠을 못 주무시는 날이 허다합니다.
결국 오늘 오후 보호자들과 협의하에 타협점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안 드리고 있었던 정신의학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드리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 약을 드시면 요양원은 조용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보았습니다.
그 약을 드신 분들은 극도로 기력이 쇠약해지시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