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 보고서 분석
https://www.iea.org/reports/blueprint-for-action-on-just-and-inclusive-energy-transitions
인류는 지금 거대한 에너지 전환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 문명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재편되어야 한다는 데 전세계가 공감하지만, 그 전환의 방식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의 산업 전환들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사회적 약자와 특정 지역 공동체에게 불공평한 희생을 강요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정의롭고 포용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한 행동 설계도(Blueprint for Action on Just and Inclusive Energy Transitions) 보고서는 이러한 역사적 교훈 위에서 출발합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공정하고 모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글로벌 차원의 원칙과 실행 방향을 제시하는 청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IEA가 2024년에 출범시킨 사람중심 청정에너지 전환(Global Commission on People-Centred Clean Energy Transitions) 위원회의 성과로서, 2024년 브라질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이 합의한 10대 원칙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브라질의 G20 의장국 활동을 통해 정의롭고 포용적인 전환이 국제 의제의 전면에 부상했고, 이를 이어받은 202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G20 의장국은 구호에 머무르지 않는 구체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IEA 위원회는 “사람 중심, 공정하고 포용적인 전환”이라는 가치를 각국 정부가 실천하는 데 필요한 정책 설계와 이행 전략을 담은 지침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유럽연합의 테레사 리베라 부총재와 브라질의 알렉산드레 실베이라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각국 정부, 국제기구, 노동계, 청년·원주민 공동체, 시민사회 대표들이 참여한 이 위원회는 어떻게 하면 에너지 전환을 효과적일 뿐 아니라 공정하고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게 할 것인가를 1년여간 논의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행동 설계도로, 50여 개국 이상의 사례 연구를 담아 고위 정책결정자부터 지역 공동체까지 유용하게 참조할 수 있는 실용적인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형평성을 증진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을 강조하며, 나아가 이러한 정의로운 전환이 환경 목표와 사회·경제적 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음을 실제 사례로 입증합니다.
이 행동 설계도는 2025년 남아공 G20 정상회의의 정의롭고 포용적인 전환 액션 아젠다 수립에 기여하고, 2025년 말 브라질에서 열릴 COP30 기후회의 의제에도 반영될 예정입니다. 이는 이 보고서의 원칙들이 국제사회에서 정책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아래에서는 보고서가 제시한 10대 핵심 원칙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 각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다양한 국가와 지역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IEA 보고서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해 다음의 10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합니다. 각 원칙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정책 방향과 변화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모범 사례들을 통해 원칙들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정의롭고 포용적인 전환을 위한 에너지 계획 수립 – 에너지 전환을 미리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공정성과 포용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정부가 장기 에너지 계획을 세울 때 경제·사회적 취약지역과 계층의 상황을 평가하고, 전환으로 인한 영향을 완화할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대통령 기후위원회를 설치하여 정부, 기업, 노동계, 지역사회가 함께 전환 전략을 수립하고 있으며, 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국가 계획에 통합했습니다. 칠레 역시 국가 전력 탈탄소화 계획을 수립하며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시민 공청회와 지역별 협의를 진행해 왔는데,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초기부터 반영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스페인은 2019년 석탄산업 폐쇄를 앞두고 정의로운 전환 전략을 수립하여 2020년 정의로운 전환 연구소를 설립했고, 정부·기업·노동자가 참여하는 삼자협의로 지역별 긴급_action_plan을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석탄광 폐쇄 지역에 대한 경제적 영향 평가와 고용 유지 대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재생에너지 산업 투자와 노동자 재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촉진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에너지 전환이 무계획적으로 진행될 때 생길 수 있는 지역 경제 붕괴와 실업 충격을 예방하고, 선제적 대응을 가능하게 합니다.
에너지 빈곤 종식 –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은 에너지 접근성 개선과 함께 가야 합니다. 아직도 전 세계 수억 명이 기본적인 전기조차 없이 살고 있으며, 수십억 명이 전기를 쓰더라도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예컨대 약 7억5천만 명이 전력 미공급 상태에 있고, 많은 가정이 조리나 난방을 위해 건강에 해로운 연료를 사용하는 실정입니다. 정의로운 전환의 두 번째 원칙은 이러한 에너지 빈곤을 해소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습니다.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기와 청정 연료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을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농촌 전기화 사업, 에너지 보조금의 취약계층 집중 지원, 전기요금 체계 개편 등이 활용됩니다. 실제로 브라질은 “룩스 파라 토도스(Luz Para Todos, 모두를 위한 빛)” 프로그램을 통해 2003년 이후 농촌 지역 1,600만 명 이상에게 전기를 공급하며 에너지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남아공 일부 지역에서는 선불식 전기요금제(pre-paid meter)를 도입해 저소득 가구가 소득 범위 내에서 전기를 사용하고 요금을 관리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청정 취사 연료 보급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인도, 방글라데시 등은 LPG 등 청정연료 보조금과 배포 사업을 통해 전통 연료 사용으로 인한 여성·어린이의 건강 피해를 줄이고 있습니다. 에너지 효율 향상도 에너지 빈곤 완화의 한 축입니다. 예컨대 유럽연합 일부 국가는 저소득 가구의 노후 주택 단열 개선 사업을 보건 정책과 연계했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에너지 빈곤이 동절기 높은 사망률과 연결된다는 조사에 따라, 만성 질환이 있는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정부가 무료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단열 보강 등)을 처방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난방비 부담을 줄여줄 뿐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 지표도 개선하는 상생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기존 에너지 공급원을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에너지 기본권을 누리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회적 대화와 이해관계자 참여 –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사회적 합의와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세 번째 원칙은 정부 정책 수립과 기업 의사결정에 노동자, 지역주민, 시민사회 등 관련 당사자들이 초기부터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구조적으로 반영하면 결정의 정당성과 수용성이 높아지고, 갈등과 지연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대화 과정을 통해 지역의 특수한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고, 혜택이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로, 칠레는 석탄발전소 폐쇄 계획을 추진하며 노조, 기업, 정부가 함께하는 삼자 사회적 대화를 제도화했습니다. 노동조합(석탄화력 발전소 4곳의 노조)과 간접고용 노동자 대표, 경영진이 한자리에 모여 협의한 결과, 직업훈련과 능력개발 지원 등 공정한 일자리 전환 프로그램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고 정부의 지원책도 강화되었습니다. 남아공도 탄광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각 분야 대표가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운영, 이해관계자 간의 지속적 대화 채널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대화의 장은 단지 의견을 듣는 것을 넘어, 함께 해결책을 찾는 협력으로 이어집니다. 캐나다 정부는 2023년 지속가능한 직업법(Sustainable Jobs Act)을 제정하여 노동자, 원주민, 산업계, 지역 공동체가 정기적으로 정부에 조언하는 지속가능직업 파트너십 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이처럼 법제화된 대화 구조를 통해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집단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적 대화는 에너지 전환에 따른 이해 충돌을 조정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에너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핵심 수단입니다.
사회적 보호 – 급격한 산업 전환은 일자리 상실, 생계 위협, 지역경제 침체 등 사회적 충격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원칙은 이러한 충격을 흡수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사회안전망과 정책 패키지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특히 비공식 부문 노동자나 기존 제도에서 보호받지 못하던 계층까지 포괄하는 맞춤형 사회 보호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위한 실업급여 연장, 재취업 지원,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사전에 준비되어야 합니다. 스페인은 석탄 광산 폐쇄로 타격을 받을 지역 주민과 노동자를 위해 긴급 사회 보호 패키지를 도입했습니다. 여기에는 영향받는 지역의 경제 다변화를 지원하고, 석탄산업 노동자에게 재훈련과 재배치 지원금, 조기퇴직시 연금 보전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에너지 가격 정책도 사회적 보호의 일부입니다.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보조금을 축소하여 재원을 확보하는 대신, 그 재원을 가장 취약한 계층의 지원에 투입하는 전략이 대표적입니다. 이집트는 2014년 대대적인 연료 보조금 개혁을 단행하며 동시에 식량 보조 확대, 공무원 최저임금 인상, 연금 지급 확대 등 다각적인 사회보장 강화 조치를 병행했습니다. 그 결과 정부 예산 약 150억 달러를 절감하면서도 저소득층의 생계를 보호하여 개혁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는 대기오염 저감지역(ULEZ)을 확대하면서 낡은 차량을 보유한 저소득 운전자, 장애인, 영세 자영업자를 위해 1억10백만 파운드(약 1,800억원) 규모의 폐차 보조금 제도를 도입해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환경규제와 사회적 형평을 함께 추구한 사례입니다. 또한 사회적 보호에는 새로운 기회 창출도 포함됩니다. 일부 국가는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지역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고, 장기 실업자나 청년을 에너지 효율 분야 컨설턴트로 양성하는 등 (일자리 창출형) 복지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에서는 “아무도 뒤처지지 않도록”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정책의 포용성 – 다섯 번째 원칙은 에너지·기후 정책을 설계할 때 사회 각 계층과 집단이 처한 구조적 장벽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도록 정책을 맞춤 설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획일적 정책이 아니라, 여성, 청년, 노년층, 소수민족, 장애인, 저소득층 등 다양한 집단의 상황과 필요를 고려한 교차적(intersectional)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지 형평성 차원을 넘어, 그렇게 해야 정책의 실효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보조금이나 에너지 효율 대출 정책을 디자인할 때, 여성이 소유한 가구나 기업은 정보나 자본 접근에서 불리하지는 않은지, 농촌 지역 주민들은 신청 절차에서 소외되지 않는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정책 포용성의 한 축은 성평등 관점의 통합입니다. 보고서는 “여성과 여성 주도의 기업 참여를 장려하는 것이 에너지 정책에 성평등 관점을 주류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세네갈은 에너지 부문에서 여성의 참여를 늘리고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세네갈 에너지부는 2022년 성별·에너지 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여성단체와 여성 기업인들이 에너지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가치사슬 전반에서 195개의 여성주도 기업(여성 기업인 899명 참여)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4개 부처가 정책 결정에 성인지 관행을 도입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한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는 “라 로리따(La Rolita)”라는 혁신적인 시영 버스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전기버스 운전기사로 여성들을 적극 채용하고 한부모 가정, 청년 등 취업 취약계층 700여 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에 버스노선이 부족했던 지역에 100% 전기버스를 투입함과 동시에 여성·청년에 기회를 주어 교통과 고용 두 측면의 포용성을 달성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이처럼 정책의 포용성을 높이는 것은 에너지 전환의 혜택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동력이 됩니다.
권리 존중 – 여섯 번째 원칙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인권과 기본권이 훼손되지 않아야 하며, 오히려 증진되어야 한다는 가치 선언입니다. 여기에는 노동자의 권리, 지역주민과 소비자의 권리, 그리고 특히 원주민과 지역공동체의 권리가 포함됩니다. 청정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명목으로 어느 한 집단에 일방적인 희생이나 피해를 떠넘겨서는 안 되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정당한 의사결정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보고서는 “원주민은 전환으로 인한 부당한 부담을 져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 전환에서 이익을 얻고 의사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산업 확대로 인한 광산 개발, 대규모 인프라 건설 등이 진행될 때, 토착 주민과 지역사회에 환경 피해나 삶의 터전 상실 등이 발생할 우려가 큽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전 동의에 기반한 협의(Free, Prior and Informed Consent) 원칙이 국제적으로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족이 소유한 토지에서 지열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지역 마오리 공동체와 발전기업이 공동 소유 형태로 프로젝트를 추진한 사례가 있습니다. Nga Awa Purua 지열발전소는 국영전력회사와 마오리 토지신탁이 지분을 공유하는 합작 모델로 건설되어, 원주민 공동체가 영구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이익을 배분받고 있습니다. 또한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숲 복원, 생물다양성 보호 등 지역에 실질적 혜택을 주는 부수 프로그램들도 함께 시행되었습니다. 이처럼 협력적 파트너십을 통해 전통 공동체의 권리를 존중한 프로젝트는, 외부 개발로 인한 갈등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한 모범 사례로 꼽힙니다. 한편 에너지 전환 정책은 장애인의 접근권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 충전 인프라나 대중교통 전기화 과정에서 장애인 친화적 설계가 반영되고 있는지, 에너지 설비 현장에 장애인의 고용 참여가 배제되지 않는지 등을 살펴야 합니다. 권리 존중 원칙은 궁극적으로 에너지 전환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으며, 이는 정의로운 전환의 근본 윤리라 할 수 있습니다.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청정에너지 솔루션에 대한 투자 – 일곱 번째 원칙은 정의롭고 포용적인 전환을 위해 재정적·기술적 투자가 반드시 확보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특히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서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자본비용이 선진국보다 훨씬 높아 청정에너지 투자 장벽이 큽니다. 민간 금융기관들이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책정하다보니, 같은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라도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국가에서는 금융비용 때문에 생산단가가 선진국의 두 배에 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본비용 격차를 줄이는 것이 전 세계 균형 있는 에너지 전환의 열쇠라고 보고서는 지적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 공조를 통한 저리의 자금 공급, 공적 금융기관의 역할 확대, 혁신 금융수단 활용 등이 필요합니다. 보고서는 예로서 각국이 탄소세 수입을 재투자하거나 기존의 화석연료 보조금을 개혁하여 취약계층 지원 및 청정에너지 보급 재원으로 돌리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실제로 캐나다, 독일 등은 탄소세 수입을 전기차 보조금이나 저소득층 에너지 비용 지원에 활용하고 있고, 인도네시아는 연료보조금을 축소하는 대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투자 기금을 조성한 바 있습니다. 또한 공정한 전환 파트너십(JETP)처럼 선진국들이 재원을 모아 석탄 의존국의 청정에너지 전환을 돕는 새로운 국제 협력 모델도 등장했습니다. 남아공, 인도네시아 등은 이러한 파트너십을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받고 석탄발전 감축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청정에너지 기술 자체에 대한 투자도 필수적입니다. 배터리 저장기술, 스마트그리드, 그린 수소 등 간헐성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고 에너지 안보를 높여줄 기술 혁신에 각국이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전력 공급의 신뢰성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어, 전환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높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모두가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하고, 믿을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청정에너지 솔루션을 만들기 위한 투자는, 정의로운 전환의 물질적 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솔루션의 실행 – 여덟 번째 원칙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구현되는 솔루션이 에너지 안보와 지속가능성 두 측면을 모두 충족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에너지 안보란 단지 국가 차원의 공급망 안정뿐 아니라, 지역사회 차원에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에너지 공급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지속가능성은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역경제에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보고서는 특히 광업 및 자원 채굴 분야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에 필요한 핵심 광물 수요가 급증하면서 리튬, 코발트, 희토류 등의 채굴이 늘어나는데, 이에 따라 광물 자원이 풍부한 개발도상국들은 양날의 검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만약 과거 화석연료 시대처럼 원료만 수출하고 지역에는 환경오염과 낙후만 남는 식이라면, 그 전환은 결코 정의롭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채굴 활동이 지역사회에 실질적 이익을 돌려주고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합니다. 남아공의 사례를 보면, 재생에너지 설비에 필요한 부품을 현지에서 일정 비율 이상 조달하도록 의무화(로컬 콘텐츠 80% 규정)하여 신규 투자로 인한 지역 일자리와 산업 육성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칠레는 구리 등 광물 채굴세의 일부를 지역사회 개발기금으로 환원하고 있고, 호주는 광산 운영시 전통 토지 소유자인 원주민과 수익을 공유하는 협약을 법제화했습니다. 한편 분산형 에너지 솔루션의 실행도 지속가능성의 중요한 측면입니다. 중앙 대규모 발전소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 단위의 태양광 미니그리드, 지역풍력 협동조합, 농촌 마이크로그리드 같은 분산형 재생에너지를 도입하면 지역경제에 직접적인 수익이 돌아가고 중소사업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케냐,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도입된 마이크로그리드는 마을 단위로 전력을 생산·공급하여 농산물 가공, 냉장 보관 등의 새로운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는 에너지 접근과 소득창출을 함께 이루는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결국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솔루션의 구현”은 기술·경제 측면에서 안정성과 책임성을 모두 달성하는 전환을 뜻하며, 이는 정의로운 전환의 필수 조건입니다.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경제성장 – 아홉 번째 원칙은 에너지 전환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기회가 되어야 하며, 그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흔히 기후대응은 비용이고 희생이라고 여기지만, IEA 보고서는 오히려 공정한 전환이 새로운 성장과 발전의 엔진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국제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전 세계가 협력하여 청정에너지 기술과 자원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희토류, 배터리 원료 등 전략 광물 공급망에 대한 국제 공조, 재생에너지 기술의 지식 공유와 공동 연구개발, 녹색 기술에 대한 개도국 지원 등이 그런 협력에 포함됩니다. 둘째, 현지 가치 창출(Local value creation) 전략입니다. 재생에너지 설비와 인프라를 늘리는 과정에서 자국 또는 지역의 제조업, 서비스업이 참여하여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보고서는 “청정에너지 기술의 현지 제조 역량을 육성하면 자원부국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실제로 중국, 인도, 모로코 등은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기버스 등을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투자와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이는 기후 목표뿐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일자리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포용적 성장입니다. 에너지 전환으로 창출되는 새로운 산업과 경제적 혜택이 특정 다국적 기업이나 일부 계층에만 집중되지 않고, 중소기업, 지역사회, 취약계층에도 돌아가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은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에 이익공유제를 도입해, 발전 수익 일부를 지역 주민이 직접 소유한 에너지 협동조합이나 주민기금에 배분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나라들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입찰 평가 시 에너지 빈곤 해소 기여도를 가점 요소로 두어, 사업자가 지역 저소득층의 주택 효율개선이나 전기료 지원 프로그램을 함께 실행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에너지 전환을 단순한 산업구조 개편이 아니라 사회적 번영의 계기로 만드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후 재정 지원과 기술 이전을 통해 글로벌 차원의 포용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성장 원칙은 기후 대응과 경제 발전이 상충하지 않으며, 공정한 전환을 통해 포용적인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비전입니다.
양질의 일자리와 인력 개발 – 마지막 열 번째 원칙은 에너지 전환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자들이 새로운 산업으로 원활히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청정에너지 경제로 이행하며 일부 부문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겠지만, 동시에 신기술과 신산업에서는 엄청난 고용 기회가 생겨납니다. 관건은 어떻게 노동력의 이동을 관리하느냐입니다. 보고서는 “산업 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을 잘 설계하면 노동전환을 안내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먼저 필요 기술과 숙련 분석을 선제적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새로운 녹색 일자리가 얼마나 필요하고, 기존 산업 노동자 중 누가 전환 가능한 기술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재교육(reskilling)과 기술향상(upskilling) 프로그램으로 채워야 합니다. 예컨대 석탄 산업 종사자가 풍력터빈 기술자로 옮겨갈 수 있도록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훈련기간 생계를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호주는 석탄 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면서 지역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 청(Net Zero Authority)을 신설하고, 산업·교육·고용 정책을 아우르는 종합계획을 수립 중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태양광과 풍력 산업에 필요한 기술을 맵핑하여, 석탄산업 노동자들을 어떤 분야로 어떻게 재훈련시킬지 청사진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필요한 세부 기술 직군들을 도출하고, 향후 수십 년간 석탄 일자리 감소분보다 더 많은 녹색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제시했습니다. 스페인은 정의로운 전환 계획 하에 광산 지역에 중소기업 창업 지원과 지역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석탄 노동자들에게는 체계적인 재취업 알선과 이주 보조금을 제공하였습니다. 덕분에 한때 침체를 우려했던 광산 지역에 오히려 신재생에너지 장비 공장, 관광·문화 사업 등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란 단순히 숫자상의 일자리뿐 아니라 노동의 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전환 과정에서 생기는 새 일자리는 적정 임금과 안정적 고용 조건을 갖추고, 가능한 한 기존 일자리의 노조 및 단체교섭권 등의 노동권을 승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에너지 전환을 고통스런 실업의 시대가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운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만드는 것이 이 원칙의 핵심입니다.
이상 10가지 원칙은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대화를 통해 권리 존중과 정책 포용성이 담보되고, 이는 곧 효과적인 에너지 계획 수립으로 이어집니다. 사회적 보호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노력은 에너지 빈곤 해소와 포용적 성장의 토대를 만듭니다. 이처럼 하나의 원칙이 다른 원칙의 전제이자 결과로 이어지는 거미줄 같은 구조가 바로 정의로운 전환의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결국 핵심은 기술·경제적 전환을 인간과 공동체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Blueprint for Action on Just and Inclusive Energy Transitions 보고서가 전달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명료합니다. 에너지 전환은 단지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약속의 변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후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해 에너지 체계를 바꾸어야 하지만, 그 방법은 기존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답습하지 않고 새롭게 설계될 수 있습니다. IEA 보고서는 “공정하고 포용적인 전환은 단순히 배출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고 사회적 성과를 개선하며 청정에너지의 혜택을 모든 공동체에 제공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정의로운 전환이 도덕적 당위일 뿐 아니라 실용적 이득을 가져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에너지 전환을 공정하게 이끌면 각계의 지지를 얻어 더 신속한 기후 행동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로 경제도 활성화되며, 취약계층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다중의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물론 이러한 이상을 현실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보고서에 담긴 수많은 국가들의 사례는 희망과 함께 과제도 보여줍니다. 어떤 나라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정의로운 전환의 길을 찾았지만, 또 어떤 지역은 아직 이해관계 대립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자금 부족과 기술 격차로 어려움을 겪는 개발도상국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행동 설계도가 가치 있는 이유는, 전 세계 다양한 맥락에서 시도된 정책들을 모아 서로 배우고 영감을 얻을 수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한 나라에서 효과를 본 정책은 다른 나라에 교훈이 되고, 실패한 경험도 반면교사가 됩니다. 특히 각 원칙마다 제시된 핵심 성공 요소 – 이를테면 “분명한 목표 설정과 정책 연계”, “진정성 있는 협치와 대화”, “지역 맞춤형 접근”, “기술과 시장 메커니즘의 혁신적 활용”, “정부 부처 및 이해당사자 간의 조율” 등 – 은 정책 입안자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볼 수 있는 유용한 지침들입니다.
이제 국제사회는 이 원칙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단계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남아공 정부는 G20 의장국으로서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회원국들의 이행 점검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IEA와 글로벌 위원회는 COP30을 앞두고 노동계, 청년, 지역사회와 연속적인 대화와 워크숍을 열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사회적 계약”이라 부를 만합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며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구와 나눌 것인지에 대한 집단적 약속인 것입니다. 이 약속을 지켜나가는 일은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라 기업, 시민사회, 지역공동체 모두의 몫일 것입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길목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향해 함께 나아갈 때,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인류 사회의 도약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미래 세대의 역사가 달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IEA가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된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일에 놀랐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으로 에너지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만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고민들을 보고서에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협의와 존중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 당장은 비용과 비효율을 야기해보이지만 결국 스스로를 위한 길이 무엇일지를 한 번 더 고민하게 됩니다.
현실의 추상을 어떻게 세상이 작동하는 주요한 원리로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거리와 함께 이런 논의를 주류 기관에서 다루기 시작하는 일은 분명 과거와 달라진 세상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