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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스윔 Sep 24. 2023

귀촌한 기획자, 양양의 IT회사

읍면리에서 살아남기

누가 양양에서 사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면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내가 양양을 떠나면 아무도 양양에 정착하지 못할 거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사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도 아니고

양고(양양의 유일한 고등학교인 양양고를 양고라고 부르는 양양)를 나오지도 않았으며

말만 하면 알아들을 직업의 종사자도 아니고

대중적으로 아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학연, 지연, 혈연 그 무엇도 없이 내려온...


어떤 계획도 없었고 그냥 서울살이가 힘들어 시작한 서핑이 재미있고

서울보다 양양이 마음이 편해서 가진걸 다 털어 시작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시작한 양양살이....

벌써 7년이나 지난 일이 되어버린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양양으로 이사를 오게 된 데는 수많은 이벤트가 쌓여 이루어진 일이다.

오늘은 양양으로 이사 온 과정보다 지금에 대해 기록해 보려 한다.


강원도 양양, 아주 멀지도 않은 내가 양양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던 2014년만 해도 나조차 양양의 존재를 몰랐다.

2014년에 이미 운전한 지 10년이 거진 다 돼 가는 시점이었는데도 강원도 바다는 속초 아니면 강릉이었고 내려가면 정동진이 있는 걸 아는 정도였다.

사실 양양은 꽤나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초와 강릉사이의 지나가는 길이었다.

서핑으로 양양을 알게 되었을 때도 양양에 내려와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이면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없을 때라는 대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2023년이 된 지금 나는 양양에 나에겐 너무나도 커다란 노마드오아시스, 힐러스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건축을 했고 그곳 한 켠에 UIUX 컨설팅과 설계를 주로 하는 법인회사를 차렸다.


코즈는 함께 그리는 더 나은 미래라는 비전이 있다.

처음 코즈를 설립했을 때만 해도 코로나가 아직 시들지 않은 때였다.

비상주로 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많이 있었고 온라인을 통한 서비스 확장이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곧 코로나가 종식되고 일이 없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고, 금리가 오르고, 리모트워크를 하던 기업들은 다시 사람들을 안으로 불러 모으고 더욱 바짝 조여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에서 양양에 있는 회사에 일을 내려줄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비상주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사라졌고 SI시장에서 UIUX는 없어도 되는 수준의 미미한 역할이라고 여겨졌다.


우리는 그렇게 사그라져 가야 할까?

당장 자금이 부족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자금은 부족하다. 건축을 하며 대출이라는 대출은 모두 받았고 매 달 자금난에 허덕인다.


존버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존버할 방법은 없다. 무엇을 기반으로 존버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다시 도시로 가야 할까?

아니면 사무실 주소라도 강남 어디께, 혹은 판교 어디께에 내야 할까?

가까운 주문진 시장에서 쥐포를 떼다 팔아볼까? 커피 영업을 하러 갈까? 온라인 스토어를 열어볼까?

이래서 결국 농사를 지어야 하는 수순으로 가게 되는 걸까?

바닷가 근처 하늘이 너무 예쁜, 산과 들로 둘러쌓인 힐러스와 그 안의 코즈


나는 직장에 대한 갈망은 없다. 하지만 직업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꿈은 여전히 아주 크다.


사실 예전부터 나는 20년을 꽉 채워 일하면 은퇴를 하고 싶었다.

그 정도면 일할 만큼 했을 거고 돈도 조금은 모았겠지... 소소하게 아르바이트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은퇴계획...


하지만 막상 20년이 되고 보니 내 직업이 없어지지 않기를 나의 경력이, 나의 경험이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방 그것도 읍면리단위의 시골마을에 내가 노마드오아시스 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걸고 힐러스라는 건축물을 짓고, 코즈라는 법인회사를 세운 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이 더 이상 "기획자무용론"같은 검색어와 연결되지 않기를 바람이었다.


양질의 기획자를 양성하고, 나의 경험을 이어내려 줄 수 있는, 그러면서 그들이 도시에서 지치고 힘들 때 한숨 돌리러 갈 수 있는 곳이며 더불어 다시 힘을 얻어 갈 수 있는 곳이길 바라는 마음이 이곳까지 다다르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허덕이다 보니 그런 기억들까지 모두 잊게 되어갔다.

그렇게 귀촌한 기획자는 직업을, 꿈을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 같은 기회가 몇 번에 걸쳐 찾아왔다.

다행히 그 기회들을 잘 포착해 냈고 어렵지만 한 겹 한 겹 쌓아가고 있다.


그래서 근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렇게 저렇게 방향을 틀어가며 방법을 찾았고 이제야 조금씩 방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더불어 "기획자"라는 직업에 대한 미래의 비전이 내가 "돈"이라는 걸 벌어야 실현가능하다는 것도 더욱 뼈저리게 느껴지고 있다.


도달 목표가 100이라면 아직 3쯤 되었을까 싶은 미미한 발전이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처럼 한 발자국이 소중하다 못해 깨어질까 봐 두려운 요즘이지만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코즈의 회사소개 중 일부, 차곡차곡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있다.



코즈의 회사소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머무는 곳이 도시였다면 훨씬 수월했을지 모를 수많은 허들을 넘어 우리가 원하는 진짜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을 정보라는 컨테이너에 차곡차곡 담아 노하우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도시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코즈는 누군가와의 경쟁을 위한 발전이 아닌 우리의 미래를 위한 발전을 고민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온라인 서비스를 기획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UIUX 컨설팅을 합니다.
비즈니스의 전략을 제시하고 구현하고 거기에 꼭 맞는 매력을 찾아주는 브랜딩을 합니다.
더 높게, 더 멀리 가기 위한 플랫폼을 만듭니다.


개개인의 삶의 여정 속에서 만나 낯선 바닷가 어느 작은 컨테이너에서 시작한 코즈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수용하고 이해하며 함께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귀촌한 기획자, 양양의 IT회사는

오늘도 역시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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