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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나의 생물학적 아버지 2)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 6

by 벌판에 서서

사람은 큰 부분이 먼저 눈에 보이고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 매인다.

나도 아버지에 대해 크게 인식된 부분을 전체로 생각했고, 긴 시간 실제 아버지에 매여 살았다. 아버지의 부족한 부분을 씹고 씹으면서 뱉어 내지 못한 것 같다. 아버지는 나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곤 했다. 그 부분을 나는 질겅질겅 씹으며 마음에 서리는 어둠에 불행했다. 그러한 마음 뒤에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버지가 비교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난 아버지가 어렵고 강퍅한 삶을 살 때 조우 하였다. 사실 언니를 제외한 자식들 모두가 예민한 청소년기를 그런 아버지를 견디며 살아내었다. 아버지가 벚꽃같이 활짝 화려하게 필 때 그곳에 있지 못했다. 아버지가 바깥에서 정신없이 바쁘고 가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 내팽개쳐져 있었다. 아버지가 젖은 낙엽처럼 추레하고 주변을 검게 물들일 때 옆에 밀착해 있었고 그곳에서 자랐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한 장면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순간과 그 감정은 나이를 먹고서도, 아버지가 늙어 힘이 없을 때도 흉터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 표현에 의하면 눈이 뒤집어진 것이다. 나는 이 표현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눈은 빛을 발하고(좋은 빛은 아닌 온기 없는 폭력적인 힘뿐인) 얼굴은 약간 하얗다. 엄마도 얼굴이 하얘진다. 그리고 엄마의 눈에도 힘이 실린다. 그것은 두려움을 감춘 피해자의 눈빛이다. 아버지는 마루에서 소리를 지르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지금 생각하면 거기서 소리를 지르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자기를 알아달라는 유아적 투정이었다. 상대적 약자였던 우리들과 엄마에게는 공포스런 폭력의 표현일 뿐이었다.) 엄마도 맞받아 소리를 지르지만, 두려움에 얼굴이 더 하얘진다. 나는 다른 방에서 열린 문으로 이것을 지켜보고 있다. 두려움에 떨면서 마치 진공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이 장면으로 대변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것이 가슴 속에서 작용하고 마음을 냉냉하게 하고 아버지와 멀어지게 하였다. 어렸을 적에는 위축되었고 스스로 초라하게 생각였다. 하나의 도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위에 있는 어떤 존재일 뿐. 그런데 그들, 내 식구들의 의식은 좀 그랬던 것 같다. 인간 자체에 대한 소중하다는 존중 의식 같은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자기가 소중하기보다 피해자이거나 불쌍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뭔가 받지 못한 억울한 존재. 가족을 이끌어 가는데도 그랬던 것 같다. 가족을 돌보는 면에서는 끈질기게 끝까지 책임감의 커다란 태두리를 지켰다. 그 내부로 들어가면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내보이며 어린 우리들에게 까지 자신을 알아주고 받들어 주기를 바랐다. 오빠가 공부를 안 하고 방황할 때 엄마에게 화를 내었다. 아버지의 화를 보면 두렵고 싫은 감정뿐이었다. 이것을 벗어내는데 나는 온전히 내 인생의 몇십 년을 썼다. 그것은 끈질기게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부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남아서 세상의 온갖 대상에게 같은 감정을 내 쏘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세계를 온통 검은 칠을 하고 자신에게만 빛을 비추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바탕이 검은 칠이 되지 않거나, 타인이(그가 가족일지라도) 자신보다 밝은 빛을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 것 같다. 특히 자기의 소유이기도 하고 저급한 존재이기도 한 엄마가 밝거나 더 빛을 받을 때는 참지 못했다. 인정하지도 못했다. 주위가 검은 것은 엄마에게서 나온 검은 색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다는 것을(엄마의 잘못이고 모자람 때문이라는 것)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억지를 부리지는 않았고, 단지 엄마를 바보로 만들거나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과 한편이 되었다는 그런 감정을 가지기를 좋아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아버지가 생각하는 풍경으로, 아버지가 놓아둔 위치의 역할로 존재하였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리에게 아버지에 대해 저주하는 것이 엄마의 한풀이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만든 어둠에 갇혀 원망하며 자기는 원래 새하얀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말하였던 것이다. 너무도 열심히.


내 속에서 질겅질겅 씹던 것을 한번 조금 뱉어내어 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였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입원하시고 냉냉하던 우리 형제들이 번갈아 병원을 찾았다. 십수 년간 왕래가 뜸하던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이라는 것도 하고, 번갈아 응급실을 지키며 아버지에 대한 나의 냉냉한 감정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이해심도 생겼다. 그것은 살아오면서 아버지에 대해 느끼던 감정과는 괴리가 있는 평생 아버지에 대해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감정이었다. 일편 그 감정이 좋기도 하였다. 이제 그 지옥 같은 감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는 아버지가 사시던 방을 치우며 엄마가 없는 외롭고 황량한 마음이 기록된 메모를 보고는 마음이 이상했다. 그렇게 엄마에게 자기중심적이었던 아버지가 말년에는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받고 가셨다는 생각과 ‘말년에 혼자가 되어 전혀 행복하지는 않으셨구나’하는 쓸쓸한 생각이 겹쳤다.

그러고서는 아버지의 인생도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 방향을 모르는 캄캄한 암흑 속에서 길을 헤매인 한 장님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 무력한 어머니에 대한 아픈 마음과 싫은 마음들. 형제간에 서로 자기 상처의 깊이를 드러내며 봐 주기를 바라는 자기 목소리만 내는 상황들. 이런 것들이 쌓여 있다. 그 맨 밑에 내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우리에게 설계해 준 세계가 감싸고 있다. 아버지가 선사한 세계에서 우리 가족 모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살아내고. 그리고 아버지는 그 세계를 의지해 사셨다.

아버지의 그런 행동 저 밑바탕에는 우리 가족만이 자기 것이고 자기를 온전히 내보일 수 있는 것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 전체의 카테고리는 우리에 대한 사랑, 책임감, 도저히 놓을 수 없는 끈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인생이 배반하여도 끝까지 그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매달려 죽을 힘을 다해 지켜오셨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더 이상 나에게 어떠한 물리적인 힘도 행사하지 못한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문득문득 예전 일들이 떠올라 나를 사로잡고, 여기저기 남은 잔재들이 힘들게 하였으나 그마저도 힘을 많이 잃었다.

내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실체, 나로 인해 왜곡된 아버지 상, 사회에서 주입한 아버지상,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이상적 아버지상, 그리고, 그리고 내 저 안에 이미 존재하는 우주의 아버지. 이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눈치를 챌 수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많은 부분 그 혼재 속에서 그 어떤 것에 딸려 가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상태(아버지에게 사로잡힌 상태)에 지배받고 살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란’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넘어서 그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속에 존재하고 있는 우주의 아버지도 내가 원하는 아버지상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 아버지상에 기대어 판단하고 비판하고 늘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앎이 나에게 자유를 주고 자신감도 주었다. 나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증오하는 만큼 열등감에 시달려 왔다. 그 열등감이 타인의 아버지들에 대한 부러움을 증폭시켜 왔다. 그 열등감에서 나도 모르게 온갖 것에서 아버지를 찾고 바랐다. 늘 기대하는 만큼 얻지 못하고(기대가 잘못된 것인데) 미움과 증오를 상대에게 투사시켜 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거두어들이려 노력한다.

지독한 열등감이 조금 옅어지고, 투사를 거두어들인 자리는 마치 비가 온 진창길에 해가 들어 꾸덕꾸덕 마른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비를 맞으며 한 없이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했다. 빗속에서 욕하며 걷기도 하였다. 그 길은 암담했고, 어두웠고 스스로 추레하게 여겨졌다. 돌아보면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만들었던 길이었다.

두 팔이 있는데도 팔로 물을 젓지 않고 그대로 물결을 떠내려가며 비명을 지르는 여자와 같았다고나 할까? 내 인생의 앞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그것에 매여서 수십 년을 보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내가 이토록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하였던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아버지는 나처럼 예민하고 작은 바람에도 두려워하는 성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내가 거기에 빠져 보지 않았다면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없다. 거기에 빠져 온 인생을 던져 넣고, 그러고도 용서하고 내려놓을 수 있었을 때 주어지는 것. 그러기에 인생은 공짜가 없는 것이다. 겉으로 공짜로 얻어지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은 공짜는 아니다. 언젠가 댓가를 받으러 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 편안하다. 쪼끔, 아주 쪼끔일지라도 나는 댓가를 치루었다. 그것을, 인생의 수레바퀴를, 내 관성의 반대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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