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 7

by 벌판에 서서


내딸에게

얘야, 네가 아직 내 생각을 하고, 그것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구나. 나는 이제야 세상이 좀 보이는 것 같다. 내가 그 세상을 그렇게 살아내고도 이제서라도 세상이 좀 보인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 마음이 안 좋은 것은, 그 세상이 고맙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몸이 흙으로 돌아가 버린 이제야. 네 옆에 있었을 때, 그 순간이 고맙다는 것을 알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얘야, 이제 너는 울지는 않는구나. 그만큼 인생의 헛된 망상에서 벗어났다는 것이겠지. 헛된 망상이라고 하면 아주 잘못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은 헛된 것이고 쓸데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구나. 내 육체가 썩어 더 이상 나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야. 이제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은 다행이다. 그 세상에 있을 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네가 어렸을 적에 이것을 알았었다면 얼마나 큰 행복을 누리고 세상을 하직했을까? 네 아버지라는 희미한 감정만이 남아있는 이때에 내가 느끼는 아쉬움이구나.

이제 너도 반백 년 넘게 살아내고, 이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무진 애를 쓰는 것을 보니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을 너 혼자 개척하고 있는 것을 보니 좋구나.

너에게 닿을지 모르지만 여기서 네 생각을 하며 말을 해 본다. 먼 허공을 지나 순간적으로 네게 생각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한다.

내 어머니였던 분은 네가 나에게서 본 그런 모습을 가장 많이 가지신 분이다. 나는 어머니의 영리함, 자기중심적인 성격 같은 것들을 물려받았다. 내 중심주의로 사는 삶이 최선이라는 그런 생각이 내 뼛속까지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 나는 다리를 절었다. 그런 나를 부모가 원하지 않는다고 알고 보낸 어린시절이 얼마나 황폐하였을지 넌 짐작할 수 있겠지. 네가 나에게서 보아온 황폐하고 이기적이고 나 중심적인 모습은 그런 것에 밑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다. 이미 내 육체는 없지만 아직도 슬픔의 통증이 나를 찌르는구나. 나도 모르게 내 딸에게 그러한 황폐한 세계를 주었다는 것이 너무도, 지금도, 긴 장대 창으로 가슴을 찌르는구나.

얘야, 그러고 보니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죄악이구나. 다시 너에게 삶을 줄 수 있다면, 너의 어린 시절을 다시 같이 보낼 수 있다면, 나는 너를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태어나면 반대로 된다던가? 다시 태어날 때는 기억을 잃고 새로 시작한다던가? 다시 태어나면 이 깨달음을 꼭 기억하고, 뼛속에 새기고 시작하고 싶구나. 얘야.

왜 나는 젊은 시절에 너를 보지 못했는지. 내가 너를 귀여워하고 안아주고는 했지만 넌 그 순간을 따뜻하게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내가 너무도 밉구나. 내 만족을 위해 너를 안아주고, 너에게 뽀뽀해 주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그때 그것이 너에게 주는 최선이고 좋은 아버지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 그런 대우를 받지는 못했지만, 난 내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이고자 노력했다고 자부했다.

너는 그 시절을 참혹한 시기로 기억한다는 것을 여기 와서야 알게 되었구나. 내가 너의 엄마에게 한 행동들을 너는 그렇게 참혹하게 느꼈다는 것.

나는 내 아내이던 여자에게 불만을 표현한다고 한 것인데, 너를 불행하게 만들었구나. 나를 평생 싫어하도록 만들었구나. 너의 엄마에게 분노를 폭발하면서 나도 불행했다. 왜 그렇게밖에 못하는지, 반복적으로 이야기 해도 왜 듣지를 않는지 화가 났다. 한번 화를 내게 되면 더 크게 화를 내게 되었다. 너의 엄마가 말대답이라도 하게 되면 화를 돋군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죽이고 싶을 정도의 분노에 나 자신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나를 왜 그렇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가고 미웠다. 난 여자를 잘못 만났다는 생각에 불행했다. 나는 다리도 절고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는데, 좋은 여자를 못 만났는지 인생을 원망했다. 단지 너희들 엄마이니, 자식들을 위해 참고 살아가자. 내 즐거움은 집 밖에서 찾아야지. 하고 살았었다.

내가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거지. 지금 생각하면 왜 한 사람을 그렇게 몰아세우고, 조그만 일에 화를 내었는지. 내 행동이 환히 보이고, 한 끗 차이로 그렇게 악귀같이 살았고, 또 악귀인지도 모르고 있었더구나. 나는 천사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때로는 억울한 피해자로, 늘 열심히 살아가는, 친절한 사람으로 여겼다. 너희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얘야, 여기와서도 나는 아직 너를 느낄 수 있구나. 네가 나를 추억하며 슬퍼하고 나에 대한 원망을 거두어들이려 노력하는구나. 그 세계에 있을 때 주지 못한 정을 주고 싶어하는구나. 너는 이제야 나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털어버릴 수 있구나.

나도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되는 인생의 진정한 면모를 당시는 왜 몰랐던고? 인생에 겸손하고 진실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벌이겠지.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인생을 대했다면, 내 한 시간 한 시간은 무척 소중하고 진실하게 사랑으로 채워 나갔겠지. 지나고 나니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햇살 부서지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너는 그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안 것 같아 대견하고 축하해 주고 싶구나. 그것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아버지께(딸의 답장)

아버지, 그 세상에서는 어떠셔요? 아버지가 생각하시고 대비하시던 그런 세계는 아니죠? 아버지, 지금 그곳은 어떠셔요?

이제 저도 나이를 먹고 피부가 더 이상 탱탱하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버지 나이가 아주 많다고 여겼던 그때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기만 했던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아버지, 지금 내 나이의 아버지를 만나 제 한껏 잘해드리고 위로도 해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부모님 돌아가신 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그렇겠구나.’하고 부러웠습니다. 그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제가 얼마나 못 미쳤었는지요. 마음이 좁아터져서 못된 생각들만 가득 찼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를 만나 고된 인생길에 위로가 되는 딸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흡족할른지요. 제 나이를 살아가시던 아버지의 인생이 얼마나 삭막하고 외롭고 힘겨웠을지요. 딸년이라고 있는 저는 냉정하고 차갑기만 하고 독이 든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으니까요. 저의 못 미침이 제 가슴을 공격합니다. 당연한 이치겠지요. 따뜻이 보듬어 주는 좋은 딸이 한 번도 되지 못한 제가 너무도 바보 같습니다.

압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당시 제 마음의 깊이가 너무 얕고 얄팍해서 그 어떤 따스함도 담을 수 없었다는 것을요. 이제 아버지 나이가 되고 제 몸에도 변화가 오고 그 한도 끝도 없던 원망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낍니다. 그때는 색안경을 끼고 바늘구멍 같은 시야로 판단하고 살았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아버지, 검고 거센 물살을 늘 숨쉬기 벅찬 상태에서 어둠 속에서 손을 저어 나가셨지요? 언제나 앞으로 나가시지 못하셨지요? 다리 한쪽이 불편하셔서 물을 헤엄쳐서 앞으로 나아가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셨을 거예요. 단지 물살에 더 이상 휩쓸리지 않으려고 늘 괴롭도록 힘들게 헤엄치시다가 가셨지요?

아버지가 호랑이 같은 사나운 감정으로 할퀸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만큼 견고하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부여잡고 우리가 밖으로 튀어 나가지 못하게 버팅기셨어요. 지나치기도 하셨지만, 그 덕분에 온전히 한 사람으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초로의 나이에요.

이제 저는 저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부끄러움이 바탕이 된 다른 감정들도 많이 사라졌어요. 그런 상황이 나를 편하게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어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나의 생물학적 아버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