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 나는 왜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있는 거지?

by 김태라

오늘은 아침부터 왜이렇게 짜증이 났는지 모르겠다. 단지 졸려서인지, 한 순례자의 배낭 무게에 대한 어줍지 않은 충고가 기분 나빠서였는지, 오늘따라 길을 가득 메운 순례자들의 소음 때문인지 몰랐다.

체크아웃 후 짐을 들고 주방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어제 슈퍼에서 장을 본 후여서 배낭에 음식이 가득했다. 넘치려는 배낭을 닫으려 고군분투하던 나를 보고 한 순례자가 웃으며 욕심을 덜어내라고 말했다. 기분이 나빴다. 내 배낭 안에 든 것들을 욕심이라고 부른 것이 기분이 나쁜 건지, 나누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 기분 나쁜 건지는 몰랐다. 배낭 안 물건들을 괜히 더 세게 눌러 담고 길에 나섰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하루종일 배낭 안 물건들을 스캔하며 걸었다. 내 가방의 무게는 역시 내가 감당 못 할 무게인 것인가. 내가 지고 가기로 결정했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역시 덜어내야 하나.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짐을 맡길 수 있는 서비스가 있을까. 웬만해서는 짐을 맡기지 않고 모든 걸 내 등에 지고 가려고 했던 건 미련한 욕심이었나. 덜어낸다면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가끔 쉬는 날 예쁘게 입고 돌아다니고 싶어서 산 옷, 바다가 나오면 수영하고 싶어서 산 비키니, 피곤해서 펴보기도 힘든 전자책, 가방 무게에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하는 삼각대… 이건 필요하지 않을까? 보온병도 아마 가벼운 플라스틱 물병으로 교체할 수 있을 것 같아. 국제운전면허증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산티아고까지 이제 45키로미터 남짓 남았다. 다들 그곳으로 걷는다기에 시작한 길이다. 그럼에도 그곳에 도착하면 특별한 것을 경험하지 않을까 기대한 적도있다. 도착했을 때를 상상하면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하루빨리 도착하길 더 간절히 원할수록, 기쁨보다는 한 가지 질문이 마음속에 가득하다.


'나는 왜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있는 거지? 산티아고에 도착하는게 왜, 언제부터 나에게 중요한 일이 된 거지?'


하루종일 머리가 어지러웠다. 새로운 부위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고도 어지러움이 계속된다. 하루만 쉬고 싶은데 산티아고가 바로 코 앞이니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겠다. 이제 이틀만 남았다. 할 수 있다.



나는 왜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있는 거지?

D+29 포르투갈길 29일 차

루트 :Pontevedra-Caldas de Reis(약 23km)








새벽까지 잠이 안 왔다. 잠에 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주방으로 나와 내 신체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 보았다. 그중에는 내 배낭 안에 든 것들에 대한 수치감도 있었다. 수영복, 관광용 옷, 카메라 삼각대 등, 순례자로서 필요하지 않은 것이지만 내가 선택한 것들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게 나의 직업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돈을 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업이라는 것은 돈을 벌기위해 하는 행위인데 나는 영화를 통해 제대로 수입 활동을 못하고 있으니 아마 취미에 가까운 것 같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럴다할 대표작도 없다.

나는 어설픈 나의 존재가 창피하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는동안 나는 일도, 유학도, 여행도 아닌 유랑질로 20대를 보낸 것이 창피하고, 스스로를 영화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창피하고, 동생보다 돈을 못 버는 것이 창피하고, 30대가 되어서도 전세자금은 커녕 다음 달 월세자금을 걱정하며 사는 것이, 그런 주제에 쇼핑을 좋아하는 것이, 혼자 사는 것이, 불행했던 가족의 전사가, 얼굴의 흉터가, 두 손가득 잡히는 뱃살이, 내 몸에 습관처럼 자리한 우울이, 더 알지 못하는 무식함이, 더 아름답지 못한 나의 몸이, 더 움직이지 않는 나의 게으름이, 일기에조차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 인생의 허접함이 정말이지 너무 창피하다.

그리고 어제 한 순례자가 내 배낭을 보고 웃었을 때 내가 지고 가는 것들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아마 나는 '잘 걷는' 순례자가 되고 싶었나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가장 순례자다운 순례자상‘을 만들어 놓고 내가 그것에 못 미치는 이유들을 만들었던 것같다. 내 배낭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거르지 않은 마음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수치스러워하고 있는 마음을 인정하니 역설적으로 더 이상 수치스럽지 않게 되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 나였어! 모두 나였어.‘



내 배낭 사랑해 주기

D+30 포르투갈길 30일 차

루트 :Caldas de Reis-A Coruña(약 27km)








산티아고 대성당은 신비한 공간이었다. 도시에는 지난 시간 만났던 사람들로 가득했다. 함께 걸었던 사람,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었던 사람, 길을 물었던 사람 등 내가 걸으며 만난 이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었다, 덕분에 처음 오는 도시가 낯설지 않고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 집처럼 느껴졌다. 프랑스길, 북쪽길, 프리미티보길, 은의 길 등 다른 길을 걸은 순례자들까지 모여들여 도시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꼭 만났던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배낭을 멘 모든 이들은 친구였다. 눈이 마주치는 모든 이와 ’축하해!‘라며 인사를 나누었다. 완주를 했다는 기쁨의 미소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같은 시간과 감정을 공유했다. 소설 해리포터의 첫 챕터에서 볼드모트가 사라진 후 잔뜩 흥분한 마법사들이 길거리로 나와 모든 이들과 축하를 나누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계속해서 새롭게 도착하는 순례자들 덕분에 환희의 순간은 영원처럼보였다.

많은 이들이 산티아고의 유해가 있다고 알려진 도시를 향해 걷는다. 그 유해가 진짜 있는지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믿고 걷는다. 걷다 보니 이 지점이 재미있었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향해 걷는다. 죽음이 있는 도시엔 잘 도착했다는 기쁨과 축하가 가득하다. 처음 오는 이 장소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하다. 다들 누적된 피로에 발을 절뚝이며 걸으면서도 표정은 너무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나에겐 이 모습이 사후세계처럼 보였다. 이게 천주교에서 말하는 천국인가? 잠시 생각했다.



포르투갈길 완주

D+31 포르투갈길 31일 차

루트 :A Coruña - Santiago de Compostela(약 18km)








도착한 후 이틀은 순례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 서로의 완주를 기뻐하기에 바빴다. 3일 차에는 계속 잠만 잤다. 밤마다 발뒤꿈치의 통증에 잠에 깼다. 계속 마사지를 해주고 크림도 발라줬지만 아파서 다시 잠에 들 수 없었다. 소염진통제를 먹고 몇 시간 후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상태를 보니 며칠은 더 쉬어야 할 것 같아 호스텔을 이틀 더 예약했다.

4일 차엔 북쪽길 가기 전에 정리할 일들을 처리했다. 산티아고에서 이룬으로 가는 버스와 산티아고에서 마드리드에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다시 순례길에 오르기 위한 회복이 우선이었기에 최대한 걷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시를 걷다 보면 금방 2만 보가 넘어섰다. 스마트 시계는 ‘쉴 거면 제대로 쉬어!’라고 알람을 보내왔다. 하루에 한 번씩은 대성당 스퀘어에 막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자들을 구경하러 갔다. 이 공간은 언제나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다. 이곳의 시간은 특별한 그 순간 안에 멈춰 있었다. 이제 막 순례길을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순례길 끝의 환희를 보고 있자니 시간이 반으로 접힌 느낌이 들었다.

산티아고에서 6일을 쉬고 오늘 오후에 이룬으로 떠난다. 두 번째 맞는 순례길에는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산티아고순례길 북쪽길 D-1

D+37 산티아고에서 재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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