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9 순혈의 영광 바이바이

by 김태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처음 코로나가 세상을 덮쳤을 때 내심 기뻤다. 이대로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도태되는 느낌을 받고 있었기에 세상의 멈춤에 내 죄책감을 덜었다. 사람들을 안 만나고 사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처음이었다. 죄책감 없이 방 안에서 뒹굴 거리는 것은. 처음으로 진짜 쉼을 경험했다.


- 2021년 메모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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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이랬다.


- 오전에 체크아웃

- 배낭은 호스텔에 맡기고 도시구경

-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5시쯤 버스터미널로 이동

- 12시간 동안 이룬 행 버스 안에서 쪽잠

- 아침 6시에 이룬에 도착하자마자 북쪽길 시작!


이룬은 산티아고에서 동쪽으로 82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이다. 오늘은 북쪽길의 시작점인 이룬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북쪽길은 중세시대 이슬람교에게 장악된 지역을 피해 걷다 보니 생긴 길이라고 하는데 지나가는 길에는 바스코, 칸타브리아, 아스투리아스, 갈리아 등 4개의 지방을 통과한다. 새로운 길에 대한 설렘을 안고 이룬 행 버스에 올랐다.

나는 잘 때나, 비행기나 버스 같은 밀폐된 공간에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할 때 꼭 마스크를 쓴다. 기관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더 좋은 비말 차단 마스크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가래 가득 찬 기침과 재채기를 계속하는 사람들과 버스 안에 꼼짝없이 갇혔기 때문이다. 그들 중 누구도 손으로 입을 가리는 매너 따윈 보이지 않았다. 화딱지가 났다.

코로나 이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는데 입을 안 가리고 기침을 하는 사람들을 극혐 했다. 가벼운 기침이든 의도치 않은 재채기에도 나는 잘 감기에 옮았다. 제일 억울한 건 감기를 옮긴 사람들은 이, 삼일 정도 약국 약을 먹고 낫는데 나는 한 달을 꼬박 침대 위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감기 걸린 사람의 작은 행동에 굉장히 민감하다. 손을 안 가리고 기침하는 사람들과의 12시간 동행은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게 했다.

플라시보인지 버스 안에서 바로 몸살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피곤인지 감기인지 분간이 안 됐지만 일단 가지고 있던 감기약과 진통제를 몸에 때려 박았다. 감기를 질색하는 나의 오랜 노하우인데 조금이라도 감기 비슷한 느낌이 오면 먹을 수 있는 최대치의 약을 몸에 미리 때려 박는 수법이다. 그럼에도 이룬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열이 나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약국으로 향했다. 감기약과 코로나 자가검진 키트를 샀다. 다행히 코로나는 음성으로 나왔다. 몸의 통증이 제발 피곤함이길 바랐다. 하루 쉬고 갈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산티아고에서 이미 6일을 쉬었기 때문에 더 쉬고 싶지 않았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기로 했다.

걷는 내내 아픈 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도 이왕 아픈 거 화가 난 것보다 즐겁게 걷는 게 좋으니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다. 약 때문인지 열 때문인지 정신이 몽롱했다. 구름이 앞뒤로 움직이고 나무들이 이상하게 춤을 추었다. 술에 취한 상태로 걷는다고 생각하니 이 기분도 나쁘진 않았다.

북쪽길은 첫 일주일 동안 큰 산맥을 지나가기 때문에 정말 힘들다고 들었다.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는데도 힘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포르투갈길 완주한 순례자의 짬바인가 싶어 내심 뿌듯했다. 이제 배낭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도 아름다운 안개 낀 산 길이 몽롱한 눈으로 보니 더 동화 속 풍경 같았다. 걷는 내내 풍경에 감탄하며 북쪽길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 생각했다.

오후의 해가 지기 시작하자 땀이 비 오듯이 나고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택시라도 불러 내려가고 싶었지만 산 중턱이라 10킬로미터가 넘는 산 길을 꼬박 다 걸어내야 했다. 호스텔에 도착했을 땐 눈조차 제대로 뜨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 몸살 때문에 온몸의 근육이 아렸다. 코와 귀가 다 막히고 목에 통증이 심했다. 씻은 후 약들을 최대한 몸에 집어넣고 침대에 누웠다.




화딱지가 나

D+38 북쪽길 1일 차

루트 :Irun-San Sebastián(보트 제외 약 25km)








밤새 땀에 흠뻑 젖어 뒤척였다. 코와 귀가 다 막힌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아픈 몸보다는 스케줄을 더 지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냥 걷기로 결정하고 혹시 모르니 코로나 자가기트로 검사를 다시 했다. 모범 시민으로서의 습관이었다. 2019년부터 쌓아온 데이터로 말미암아 코로나일리는 없었다. 지난 3년간 감기는 수없이 걸렸지만 코로나인적은 없었다. 그래서 내심 나는 슈퍼항체를 가진 인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멸망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존재가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대한 자신감이 붙고 있었기에 자가검사키드 결과가 나오는 동안 배낭까지 메고 나갈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쓰레기더미와 함께 집어든 자가키트에는 처음 보는 두 줄이 있었다. 드디어 걸렸다. 코로나.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코로나이기에 관리지침은 알았어도 대응지침은 몰랐다. 하필 걸려도 스페인에서 걸리다니.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랐다. 숙소 측에 알려야 하는 건지, 바로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건지. 아픈 건 계획에 없었기에 멘붕이 왔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다행히 격리는 풀린 상태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병원에 가기로 했다.

산세바스티안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정문에는 데모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가득했다. 몇 년 동안 청소를 한 번도 안 한 건지 찢겨나간 데모 전단지들이 병원 내부 바닥을 굴러 다니고 있었다. 의료사고가 많았던 것일까? 왠지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들 것 같은 분위기였다. 조금이라도 오해받아 이상한 주사를 처방받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 한번 구글 번역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응급실로 향했다.

구글 번역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행인 건지 모르지만 코로나 키트의 두 줄은 만국공통어였다. 간단한 검사를 몇 개 받고는 일상생활 계속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식당이나 슈퍼마켓에 자유롭게 가도 된다고 했다. 규제가 풀린 것이 다행인 건지 아닌지 잘 판단이 안 되었다. 코로나라는 이름 때문에 뭔가 찝찝했다. 나중에 스페인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북쪽길에서 코로나 단체감염! 순례길 폐쇄 결정!’이라는 헤드라인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무엇보다 너무 아팠다. 걷는 걸 잠깐 멈추기로 했다.

호텔에 며칠 체크인을 했다. 숙소 내 있는 자판기 음식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며 약을 먹고 하루종일 잠만 잤다. 순례길에 온 뒤로는 쉬는 날에도 여기저기 구경 다니느라 제대로 쉰 날이 없는데 처음으로 제대로 쉬었다. 아픈 건 괴롭지만 좋은 시기에 잘 걸렸다 싶었다. 바이러스로 인류가 멸종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간 중 하나가 되는 행복한 상상을 이제 더 못 하는 게 좀 아쉽긴 하다.



순혈의 영광 바이바이

D+39~43 코로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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