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8 힘들어서 감사하다

by 김태라


몰랐는데 지금까지 걸으면서 한국인은커녕 동양인 순례자를 한 명도 못 만났다. 순례자들 무리와 함께 하는 순간에도 내가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칼로 치즈를 자를 때마다 이소룡의 기합소리를 내는 어떤 순례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늘 도착한 알베르게는 산 중턱에 자리한 오래된 역사를 가진 수도원이었다. 아름답다고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산 중턱이니 근처에 슈퍼마켓이나 식당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다행히 수도원에서 신부님들이 직접 만드신 치즈와 빵을 구할 수 있었다. 아직 저녁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배가 고픈 순례자들이 식당테이블에 모여 각자의 음식을 나눠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중 한 순례자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내었다.

그가 아일랜드에서 트레킹을 할 때 만난 한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아일랜드까지 온 주제에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는 것이 웃음 포인트 중 하나라는 듯 이를 강조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그가 샌드위치를 젓가락으로 먹었다는 것이었다. 손으로 먹는 음식을 굳이 젓가락으로 먹은 것이 그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그는 자신이 느낀 황당함을 공감받기 위해 사람들의 눈을 하나씩 쳐다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사람들이 살짝 웃으며 호응해 주었지만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그는 나에게 ‘너희는 모든 음식을 다 젓가락으로 먹냐?’며 그 한국인이 한 ‘이상한 행동’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그의 말투에는 묘한 조롱이 섞여있었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일단 오늘 이 테이블에도 영어나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강조하며 반대로 내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한국음식에서 쌈은 한 입에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몇 외국인 친구들이 속이 터져 흐르는데도 굳이 쌈을 마치 샌드위치를 먹듯이 몇 입에 나눠먹는 걸 본 적이 꽤 있다. 그렇게 먹으면 흘린다고 말해도 친구들은 그게 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이상한’ 모습이 그들에게는 편한 방식일 수 있으니 그걸 별로 조롱의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색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여행을 많이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신기할 수 있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칼을 들어 치즈를 자르는 순간 그가 크게 외치는 ‘아뵤오‘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칼을 사무라이처럼 요란하게 휘두르며 ' 너는 이렇게 잘라먹을 줄 알았어 '라고 말했다. 잠깐 뇌가 멈췄다. 몇몇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고 그는 자신의 재밌는 농담에 꽤나 만족했다. 그리고 내가 칼로 치즈를 자를 때마다 이소룡의 기합소리를 내었다.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테이블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냥 웃어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아, 코로나로 멈춘 신경세포야 잠깐만 깨어나라.


“So racist.” (완전 인종차별적 발언이네)


나는 작게 머리를 저어 보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눈썹을 크게 들어 올리고 크게 입방귀를 뀌었다. 나 나름대로 한 프랑스식 농담이었다. 프랑스에 살면서 배운 프랑스인 특유의 강조하며 비꼬는 말투를 여기에서 써먹을 줄은 몰랐다. 몇 명의 사람들은 웃었지만 몇 명의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 그가 농담인 거 알지?‘라며 나서서 그를 변호했다. 나도 그가 정말 형편없는 농담을 한 것뿐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 나도 농담이었어 '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힘든 순간들이 있다.


“나는 한국에서 왔어.”

“오! 내 친척 중에 베트남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 있어. 그 여자가 만든 베트남 음식은 최고야!”


며칠 전 걷다가 만난 한 순례자가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반가워하며 이야기했다. 당황한 나는 짧은 순간 ' 오! 스위스 사람이라고? 나 비틀즈 완전 팬이야!‘라고 받아쳐야 할지, 베트남과 대한민국이 가족이 되려면 얼마나 오래된 역사로 거슬러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결국 그냥 ’잘 됐네.(Good for you.)‘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의 일행이 ’야, 베트남과 한국은 너무 다른 나라잖아.‘라며 지적했지만 그는 ' 진짜 미안한데 너넨 나한텐 다 똑같아 보여.‘라며 자신의 무지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너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도 순례길에서 하루에 많은 순례자들과 만났다 헤어지다 보면 오늘 만난 이 서양인이 어제 만난 그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게 얼마만이야 '라고 말한 적도 있다. (다만 나는 ' 미안해. 너네들은 다 똑같이 생겼어.’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들이 똑같이 생긴 게 아니라 내가 익숙하지 않은 거라는 정도는 알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많이 못해본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 순례자와 비슷한 반응을 할 것이 쉽게 상상이 되기에 화를 내기가 힘들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나도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더 열심히 세계사 공부를 해야겠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당

D+47 북쪽길 5일 차

✔️루트 : #MarkinaXemein-#Zenarruza (약 9km)








나만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홀로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특히 그랬다. 순례길에서 만나 함께 걷게 되었다는 순례자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외롭지 않다. 오히려 내가 만난, 혹은 만날 모든 이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우연히 한 공간에 모여든다. 함께 씻고, 먹고, 웃고 떠들며 함께 잠에 든다. 그리고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 각자가 된다. 다음 알베르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이도 있고, 함께 걷기로 한 이도 있고, 함께 걷다가도 따로 걷기로 결정한 이들도 있다. ‘부엔까미노(좋은 길 되세요.)’라는 인사로 서로의 안녕을 빌면서도 아쉬워하는 이는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같은 길을 가기에 결국은 다시 만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여정을 같이 하는 것만이 ‘함께’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내 세상에서 ‘함께’라는 의미가 확장되고 있음을 느낀다. 순례길을 걷는 모든 이와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단절되어 있던 몸의 감각들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 종아리와 무릎이 당긴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면 숨이 차서 ‘힘들다’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 버프로 쉼 없이 올라가던 오르막길을 이제는 몇 번이나 쉬며 올라가야 한다. 걸을 때마다 무릎도 아프고 발 뒤꿈치도 아프다. 콧물도 나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오르막길을 오르던 강철다리와 심장을 잃었다. 그럼에도 돌아온 통증이 반갑다. 이제야 몸이 제대로 일을 하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약해진 게 반가운 건 처음이다. 저녁 식사 땐 완벽하진 않지만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행복하다.





힘들어서 감사하다

D+48 북쪽길 6일 차

루트 :Zanarruza-Gernika(약 19km)








아침을 먹기 위해 모인 순례자들이 오늘 어디로 갈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26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빌바오(Bilbao)로 향하는 듯했다.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어젯밤 잘 먹고 잘 잤기에 컨디션이 꽤 괜찮았다. 오늘 아침엔 커피 맛이 살짝 느껴져서 기분도 좋았다.

오늘은 드디어 비가 오지 않는 길을 걷을 수 있었다. 어제 시장에서 산 두꺼운 우비 덕분에 몸도 따듯했다. 일주일 넘게 내리 내린 비 때문에 산

길은 아직 많이 질었다. 라라베츄(Larrabetzu)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 하늘에 낀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햇살이 분자 단위로 내 몸을 하나하나를 깨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을 감으니 세상이 빛으로 넘쳐흘렀다.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햇살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단 한 번도 햇살에 이처럼 감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새삼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날씨를 가진 나라에서 태어난 건지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순례자들이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오랜만에 만난 햇살을 온몸으로 즐기는 듯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알베르게가 열려면 두 시간 정도 남았지만 햇살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이 마을에 머무르기로 했다. 알베르게 대문 앞에 배낭이 일자로 줄을 서 있었다. 도착한 순서를 표시하기 위한 일종의 번호표였다. 아마 순례길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일 테지만 나는 알베르게 문이 열기 전에 도착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꽤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슈퍼마켓에서 산 토마토와 참치, 치즈를 잘라 넣어 간단히 샐러드를 만들었다. 빵과 함께 끼니를 때운 후 침대에 누워 일기를 썼다. 오랜만에 빨래도 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금방 잘 시간이 되었다.

아픈 탓도 있겠지만 빨리 가고 싶다는 조급함이 많이 준 것 같다. 처음에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과 모든 길을 내 발로 걸으려는 욕심에 내 몸을 힘들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쫓아오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버리기 힘든 마음이었다. 지난 며칠간 적당한 거리를 걷고 멈출 줄 아는 나의 선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오늘도 멈추길 정말 잘했다.




멈출 줄 아는 마음

D+49 북쪽길 7일 차

루트 :Muxika-Larrabetzu(약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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