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길은 걷는 내내 예쁘긴 했지만 오늘은 정말 역대급이었다. 왼편에는 고도 2,000미터가 넘는 산이 하늘을 뚫을 듯이 솓아있고 오른편에는 바위 절벽이 시원하게 펼쳐진 해안선이 펼쳐졌다. 각도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풍경 사진을 찍느라 아빠한테 온 전화도 대충 받다가 끊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은 아빠 생신이었다. 어버이날도 잊고 지나간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오늘은 단테의 신곡 오디오북을 들었다. 단테의 신곡은 인생의 최전성기이자 한 중간에서 어두움의 숲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는 단테가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단테의 나이나 어두운 숲을 헤매는 것이나 현재의 나와 비슷해서 쉽게 주인공에 이입될 수 있었다. 오늘 나에게 꽂힌 부분은 제1 지옥인 ‘림보’였다. 림보는 신을 모르는 선한 자들이 가는 곳으로 고통은 없지만 슬픔이 가득 찬 곳이라고 묘사된다. 그곳에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대부분의 철학자, 작가,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아이 등이 있었다. 인간계에서 가장 지혜 있는 인간들이라 여겨지는 이들이 결국 자신 스스로의 행복이나 광명을 찾지 못했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나는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하는 질문의 대부분은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편안함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한 질문들을 했는데 나중에서야 내가 질문하기 때문에 우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삶에 가진 질문들은 언제나 천국을 지향하지만 매번 내 발로 지옥(반드시 부정적 의미가 아닌)으로 다녀오는 느낌과 비슷하다. 예전에는 질문을 멈추는 시도도 했지만 현재는 불행하게도 이게 내가 태어난 꼬락서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30대 중반이 되니 지옥살이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단테의 신곡에서 역사상 최고의 질문쟁이들이 사람들이 림보에서 영원히 고통받고 있다고 하니 내 인생에도 어차피 천국은 없을 거라는 답안지를 미리 본 것 같아 역설적으로 위로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죽음은 나에게 아주 가까운 문제이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는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이라는 명제를 붙여 생각하곤 한다. 죽음에 가까웠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는 내 인생의 큰 추동이 되어왔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외로운 죽음인 것 같다. 사람은 결국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마지막 날에는 사람들과 함께이고 싶다. 포르투갈길을 걸을 때 혼자 걷는 건 좋았지만 막상 산티아고에 혼자 도착하니 외롭다고 느껴졌다. 이번에는 꼭 사람들과 함께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다.
다행이다 나만 지옥행이 아니라서
D+54 북쪽길 12일 차
️루트 : Sámano - Liendo (27km)
‘오늘 할아버지가 천국으로 가셨다.’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외할아버지는 몇 달 전 빙판에서 넘어지신 후 병원에 입원해 계셨었다. 큰 사고도 아니었고 딱히 지병이 있으셨던 것도 아니었기에 전혀 기대하지 못한 부고소식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머리가 멍했고 눈물만 났다.
내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자 카페에 있던 순례자들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일단 항공권을 알아봤다. 지금 바로 비행기표를 끊어야 하는 건가? 지금 이 마을에서 어떻게 이동할 수 있지? 그럼 순례길은 어떻게 해야 하지? 산티아고에 두고 온 짐은? 장례식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나? 문득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을 때 발생할 비용들이 부담되었다.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돈 걱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너무 속상했다. 못났다. 진짜 못났다. 이 부끄러운 마음을 차마 가족들에게 말하지는 못 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한국행 고민을 하는 걸 보니 할아버지랑은 친하진 않았던 것 같네. 장례는 결국 남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 엄마의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친구의 말에 동의했다. 외할아버지는 떠나셨고 나에게는 엄마의 마음이 중요했다. 그런데 귀국을 고민하는 건 내가 할아버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의미인가? 할아버지는 결국 엄마의 가족이라고 느끼는 건가? 자문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가족들도 경황이 없었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에 일단 엄마와 통화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천주교 신자였던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드리자.
문이 연 성당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지나치는 성당들을 굳이 방문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거의 모든 성당의 문이 잠겨있었다.
두 시간 정도를 걷고 나서야 문이 연 성당을 찾을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수녀원으로 알베르게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알베르게 접수를 받는 창구에 수녀님 한 분이 앉아계셨다.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마음을 엄한 수녀님께 물었다. 스페인어로 번역한 구글 번역기 화면을 보여드렸다.
‘오늘 저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순례길을 걷고 있어요. 지금 제가 할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녁 미사에 할아버지 연도 미사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
수녀님은 '미사 전에 신부님이 도착하시니 그때 신부님께 물어봐라 '라고만 하셨다. 엄마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이 친적들과 연락이 닿았다. 친적들은 어차피 장례식에 참석 못하니 순례길을 끝내고 와서 할아버지를 찾아뵈라고 했다. 걷던 순례길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도, 지금 한국에 가지 않는 것도 최선의 답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을 때 한 순례자에게 나의 못난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순례길은 천 년이 넘게 여기에 있었어. 사라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가족과의 시간은 이번 한 번이야."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잘못된 선택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곤 그가 순례길에서 만난 순례자 중 해외에서 가족의 부고를 경험한 다른 순례자와 대화해 보는 게 어떠냐며 그와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전화기 너머 순례자는 나의 고민들을 차분히 공감하며 들어주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건 최선의 선택일 거예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선명해졌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큰 마음먹고 온 순례길도 중요하니 가족과 함께 있다가 스페인에 다시 돌아오자. 이렇게 결정하고 엄마와 통화를 했다. 그런데 엄마는 순례길을 다 걷고 할아버지를 뵈러 오라고 했다. 엄마의 말에 조금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끼며 또 죄책감이 들었다.
“나래야, 중요한 건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거야.”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 미사에 참여했다. 신부님께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부탁드렸지만 미사가 스페인어로 진행이 되었기에 이해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내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갑자기 종교의식에 의지하려는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가. 나는 어떤 위안을 받고 싶어서 이런 행위를 하고 있는 건가. 미사는 할아버지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가.
모두가 떠난 빈 성당 안에서 한참 동안 마리아의 품에 안겨있는 최후의 예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축 쳐진 예수의 모습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모습은 예수의 진짜 최후가 아니다. 그는 사흘 뒤 부활해 하나님이 그 자체가 된다. 내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이 갑자기 이상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 여기가 할아버지의 집이구나, 그리고 모든 곳이 그러하구나 '
유년시절, 나에게 집은 숨이 막히는 공간이었다. 이혼한 부모님은 내 행동이 마음에 안 들 때면 ' 엄마한테 가서 살아, 아빠한테 가서 살아.‘라며 편 나누기를 일삼았다. 그럴 때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너무 두려웠다.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엄마, 아빠 그 누구도 나에게 돌아갈 집이 되어주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어느 하나 그대로인 것이 없던 나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돌아갈 수 있는 집이 되어주셨다. 방황하던 시절 갈 곳이 없는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주신 유일한 가족이셨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듯한 밥을 차려 주신 유일한 부모셨다. 깜깜한 늦은 저녁, 집에 돌아갔을 때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차려놓으신 밥 한상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따듯한 밥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던 김의 이미지가, 그 환대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나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감각은 이후에도 내가 힘들 때에 무엇보다 큰 에너지가 되어주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집이자 고향이셨다.
오랜만에 기도문을 꺼내 보았다. 각 문장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기도문들이 말이 되게 읽히기 시작했다.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결국 모두 우리들 마음 안에서 수만 가지 버전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에게 천주교, 그리고 종교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믿음과 얼마나 다른 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나의 방식대로 순례길에서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드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중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가르쳐주시고 실천하신 분이다. 예수가 인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의 집 나의 고향, 이 아오스딩
D+55 북쪽길 13일 차
루트 :Liendo-Laredo(약 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