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6 선택이라는 자유와 책임

by 김태라


순례길 어플에서는 알베르게에 몇 개의 침대가 있는지 볼 수 있다. 오늘 도착한 알베르게에는 ' 침대 100개‘라고 적혀있었다. 페이지 오류이거나, ‘우리 집에는 사탕 100개 있어~‘와 같은 ’ 많다 ‘의 표현일 거라 생각했다. 근데 진짜 100개가 있었다. 그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아주 넓은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기부제 알베르게는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지만 그 서비스에 대한 가격은 순례자가 직접 책정하는 곳이었다. 보통 공간 어딘가에 작은 박스가 있는데 순례자들은 떠나기 전에 익명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떠난다.

사실 알베르게의 유래가 그렇다. 옛날에는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이 아주 성스러운 행위로 여겨져서 교회나 많은 이들이 존경의 마음을 순례자들에게 자신의 집과 음식을 제공하는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통계상 순례자들은 하루에 2-30킬로미터씩 걸었기 때문에 지금의 도시나 알베르게들도 2-30km 간격으로 발전되어 현재의 도시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 알베르게는 시나 교회의 지원을 받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부제 알베르게를 유지하는 곳은 크게 천주교의 수도원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의 정신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소수의 개인 정도이다.

그런데 오늘 도착한 알베르게는 조금 달랐다. 어떠한 기부금 없이 100명이 넘는 순례자들을 케어할 수 있는 스텝들이 있는 규모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 산타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신부님이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 순례자들에게 설명했다. 그중 내 흥미를 끈 건 ’ 기부제‘의 의미에 대한 설명이었다. 신부님은 기부제라는 것은 그들이 자선단체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기부제는 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자유와 책임을 사용자에게 넘긴다는 의미라고 했다. 제공되는 모든 서비스들은 지나간 순례자들, 지금 도착한 우리, 그리고 앞으로 올 순례자들 공동의 재산이며 이곳에 운영에 대한 책임을 순례자들이 나눠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 순례자들은 이 말이 불편하게 들렸나 보다. 순례자들을 한 방에 가둬놓고 ’ 돈 많이 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동안 돈을 많이 썼으니 오늘은 기부제 알베르게로 가야지!”


순례자들에게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나도 순례길 초반에는 기부제 알베르게를 저렴하게 묵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시스템이 오히려 어렵게 느껴졌는데, 가격으로 책정하기 힘든 인간적 따듯함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음식이나 침대도, 가격으로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 보게 되는 내 인식의 변화도 한 몫했을 것이다. 결국은 기부제 알베르게에서 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기부제 알베르게를 선호하는 이유는 가격으로 책정되지 않은 순수한 친절과 따듯함이 만드는 시간은 그 공기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의 마음의 가치는 획일적인 사회의 화폐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적은 예산으로 순례길을 걷는 학생의 10유로가 여유를 가지고 여행을 하는 중년층의 30유로보다 덜 값지다고 볼 수 없다. 순례자들은 재정상태와 상관없이 걷는 이로서 동등하게 존중받는다. 기부금 운영 알베르게는 순례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자 낭만적인 문화인 것 같다. 무엇보다 이미 가격이 책정된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경험은 순례길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에서든 경험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구매할 때 눈앞에 놓인 결과물만 보았다. 그리고 결과물들을 비교하였다. 그런데 직접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니 눈에 보이지 않던 가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함께 고려하게 되었다. 항상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 경험이라고 할까? 이 공간에서 경험한 이 특별함이 무엇인지 정확이 잘 모르겠지만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선택이라는 자유와 책임

D+56 북쪽길 14일 차

루트 : Laredo - Güemes(보트, 히하 6km 제외 약 24km)







아침식사 시간이 되자 이미 걸을 준비를 마친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주방으로 모여들었다. 막 잠에서 깬 나도 덜 뜬 눈을 비비며 아침식사시간에 합류했다. 알베르게에는 70명이 족히 넘어 보이는 인원들이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에 음식은 막힘없이 서빙되었다. 자원 봉사자 중에는 10년 넘게 이곳에 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지금은 50명이 넘는 사람이 돌아가며 순례자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며 이 공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산타할아버지 신부님이 평생을 바쳐 만든 멋진 가족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한 자원봉사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어젯밤 신부님의 말을 영어로 통역하던 친구였다. 그는 6년 전 순례길을 걷던 중 이곳에 묵었었다고 했다. 그때 신부님에 대한 기억이 강렬해(6년 전 신부님은 지금보다 훨씬 명석하셨다고 강조했다.) 이곳을 오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며칠 전 가족 일로 가슴이 무너지는 일을 겪은 후 무작정 운전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에 와있었다고 했다. 갑자기 도착했지만 신부님은 그를 따듯하게 안아주며 반기셨다고 한다.

그가 겪은 상실의 경험을 듣다가 눈물이 났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큰 포옹을 나눴다. 그의 온기가 몸으로 전달되며 큰 사랑을 느꼈다. 떠나기 전 신부님은 나의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어주시며 나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셨다.

어제오늘 많은 순례자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남편을 잃은 후 오른 순례길에서 남동생의 부고소식을 접한 순례자, 유학 중 어머니의 부고소식을 들었던 순례자, 순례길을 걷던 중 건강 상의 이유로 집으로 돌아갔다가 몇 달 후 다시 돌아온 순례자, 순례길에서 아들의 부고소식을 들을 순례자까지 많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 주고 위로를 해주었다. 포옹을 통해 내 몸으로 전달되는 그들의 온기가 형언할 수 없도록 크고 따듯했다.

이 일련의 만남들이 ’ 인생은 결국 사람이고 사랑이다.‘라는 할아버지의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생전에도 사랑을 가르쳐주신 할아버지가 가족단위를 넘어선 더 큰 인간의 사랑에 대해 알려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던 나의 순례길이 다른 국면을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이고 사랑이다

D+57 북쪽길 15일 차

️루트 : Güemes-Santander (보트 제외 약 16km)








엄마는 몇 달 전, 아주 선명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내가 1살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오는 꿈이었다. 그렇게 꿈에서라도 한 번만 얼굴을 보여달라고 기도해도 볼 수 없었던 얼굴이었다. 꿈속의 외할머니는 아주 고운 연분홍 빛 한복을 입고 계셨다. 그 모습이 정말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잠에서 깬 엄마는 직감적으로 느꼈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를 데려가기 위해 곱게 차려입고 마중 나온 것이라는 것을. 할아버지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엄마는 급하게 본당 신부님께 연락해 할아버지의 선종을 준비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이제 내 죄는 용서받은 거야?”


신부님이 떠나신 후 외할아버지는 확인하시듯 몇 번이고 물으셨다고 했다. 엄마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제야 할아버지는 안도하듯 편안한 웃음을 지으셨다고 한다.

걷는 내내 마음이 이상했다.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웃다가 울었다 반복했다. 동시에 내가 느끼는 눈물에 이질감을 느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듯했다.

죽음이 무엇일까? 죽음은 슬픈 일일까? 믿음이 없는 내가 하는 기도가 무슨 힘이 있을까? 오히려 기만이 아닐까? 이미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안 계시니 지금 내가 하는 행위는 모두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닐까? 나의 기도는 정말 할아버지를 위한 일이 맞을까?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답이 나지는 않았다. 그냥 할아버지가 가장 기뻐하셨을 일을 하기로 했다. 순례길을 걸으며 지나가는 모든 성당에 들려 할아버지를 위한 초를 켜고 할아버지의 평안을 기도하기로 했다. 묵주에 많은 성직자의 축성을 담아 한국에 돌아가면 할아버지께 선물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도 산탄데르 대성당에서 신부님을 찾아가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부탁드렸다.


‘며칠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순례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입니다. 이 묵주에 할아버지와 저희 가족을 위한 축성을 담아주세요. 그리고 오늘 미사 때 저희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부탁드려요. 저희 할아버지의 세례명은 아오스딩입니다.’


신부님 또한 며칠 전 어머니를 떠나보내셨다며 나의 상실에 깊이 공감해 주시며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할아버지의 성함 세 글자까지 적으신 후 미사에 들어가셨다. 물론 미사는 모두 스페인어이기 때문에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처음엔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했지만 미사시간을 채우기에는 내 기도력이 딸렸다. 그냥 남들이 일어나면 일어나고 앉으면 앉았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잠시 묻어두었던 질문들이 다시 올라왔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일까? 이들의 기도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Corea del Sur...(한국의...)”


신부님의 입에서 나온 ‘꼬레아’라는 단어가 귀에 박혔다.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가 시작되었구나. 신부님은 어느 단어들보다도 천천히 무게를 실어 할아버지의 성함 세 글자를 불러주셨다. 정답을 알면서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세례명만 드릴 걸 그랬나. 이후 어떤 말씀을 이어나가셨는지 몰랐지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기도해 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았다.

지나치는 모든 성당에 들어갈 순 없었다. 미사가 없는 시간에는 성당들이 문이 잠겨 있었기에 타이밍이 좋아야 했다. 오늘 도착한 Santillana del Mar라는 마을에서는 운이 좋았다. 성당에 들어서니 수녀님들이 기도를 하고 계셨다. 수녀님들에게 다가가 구글 번역기를 돌린 화면을 보여드렸다.


‘며칠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순례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입니다. 이 묵주에 할아버지와 저희 가족을 위한 축성을 담아주세요. 저희 할아버지의 세례명은 아오스딩입니다.’


화면을 본 수녀님께서 나에게 뭐라고 말하셨다.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음성 번역기를 켜고 휴대폰의 마이크 부분을 수녀님께 들이밀었다.


“Habla ahora.(지금 말하세요.)“


수녀님은 휴대폰 화면에 뜬 문장을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으시며 혼란스러워하셨다. 음성 번역기의 안내문구였다. 나는 바디랭귀지로 ‘화면을 읽지 말고 여기에 대고 말을 하세요.’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수녀님은 내 손이 휴대폰을 가리킬 때마다 같은 문장을 계속 읽으셨다. 나를 포함한 스무 명이 넘는 수녀님들이 ‘지금 말하세요’ 블랙홀에 빠져들 때쯤 신부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다시 한번 번역한 글을 보여드렸다.


‘며칠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순례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입니다. 이 묵주에 할아버지와 저희 가족을 위한 축성을 담아주세요. 저희 할아버지의 세례명은 아오스딩입니다.’


신부님은 자리에 계신 모든 수녀님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글을 읽으셨다. 수녀님들이 그제야 ‘아~’하면서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셨다.

신부님이 묵주에 축성을 내려주셨다. 그리고 정말 정성스럽고 길게, 열정을 담아 어떤 말씀하셨는데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일련의 행위가 할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시 한번 자문했다.




Habla ahora (지금 말하세요)

D+60 북쪽길 19일 차

️루트 : Miengo-Santillana del Mar (약 1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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