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2 내 나이 35세. 전재산 17유로

by 김태라

지갑에 20유로만 남았다. 통장잔고는 0원이었다. 대출이 필요했다. 대출을 받으려면 한국번호로 휴대폰인증이 필요했고, 한국 심카드를 쓰려면 와이파이가 필요했다.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를 찾아야 한다.

걷는 내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지금 이게 맞나 싶었다. ‘매일이 지출인데 대출까지 받아가며까지 하루 종일 걷는 아주 비생산적인 이 행위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납득시켜야 하는 걸까.’라며 자책하는 마음과 ‘모든 스트레스와 불안을 안고 꿋꿋이 걷고 있는 나의 용기에 브라보’라는 찬양의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두 개의 마음이 우위를 다투며 나의 머리를 시끄럽게 괴롭히던 중 자전거 순례자 무리가 ‘좋은 길 되세요’를 외치며 지나쳐 갔다. 이들의 쾌활한 응원에 갑자기 내 선택에 대한 불안은 사라지고 지금 내가 가진 시간에 대한 감사만 남았다.

카페를 찾았다. 한숨 돌리고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 커피 한 잔을 시켰다. 한국 심카드를 넣고 은행어플에 들어갔지만 왜인지 어플이 실행이 안 되었다. 인터넷 연결 문제인가 싶어 자리를 옮겨가며 몇 번을 다시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휴대폰을 붙잡고 몇 십 분을 씨름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올라왔다. 카페 사장은 폭풍이 온후 와이파이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와이파이를 찾으려면 다음 마을까지 걸어야 했다. 아무것도 해결 못하고 잔고만 줄었다. 이제 18.50유로 남았다.

다음 마을 카페에 도착해 또 한잔의 커피를 시켰다. 역시나 인터넷이 안 되었다. 순례자는 순례길에서 한 번은 운다는데. 나한테는 지금이 그 순간인 것 같았다.

내 나이 35세. 전재산 17유로. 오늘의 내 모습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나. 그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았다. 20대의 대부분을 세계를 유랑하며 하루하루 벌어 살다가 7년 전 한국에 돌아왔다. 내가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이유와 마음속 깊은 곳의 공허함의 이유를 찾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을 괴롭히는 데에 몇 년을 썼다. 그 안에서 오랜 기간 쌓여온 분노와 상처를 발견하고 그것을 치료하는 데에 또 몇 년을 썼다. 먹고살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영화와 방송 일을 하며 지냈다. 어찌어찌 지내다 정신 차러 보니 30대 후반이 되어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을 하며 그게 나의 정체성이라 생각했다. 그 외에 내가 기댈 수 있는 정체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 속에 속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평가에 목말랐고 예민했다.

지난 7년 한국에서의 삶은 뭔가 조금씩 안 맞는 퍼즐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조각조각이라도 조금씩 맞춰지는 그림을 보고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되돌이켜보 내가 걸어온 길은 하나의 동기로 설명이 되었다. 내가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고 싶었다. 그런 동기라면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본 이후라는 것이 이해가 된다. 소외받으며 살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라는 공동체를 찾은 이야기가 나의 인생소설인 것도 잘 이해가 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는 이상한 선택들이 이해가 된다. 나는 루피나 해리포터처럼 나만의 동료를 만나고 싶었고 그들과 그곳을 찾아 계속 돌아다녀왔다. 그 발걸음은 세계였다가 과거였고 그리고 지금은 나의 내면으로 향하고 있다.

걸으며 내가 맞춰온 퍼즐 조각을 풀어헤쳐봤다. 잘 맞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남겨두었다. 나로부터 시작하지 않은 것들은 골라내었다. 내 것이라 착각하고 아등바등 지키려고 했던 것들을 골라내고 나니 대출금이 남았다. 그래. 대출금은 진짜 내 것이다.



내 나이 35세. 전재산 17유로

D+72 프리미티보길 2일 차

루트 :Escamplero-Villapañada(약 18km)








너의 PB가 어떻게 돼?

D+77 프리미티보길 7일 차

루트 :Borres-Berducedo(약 26km)


"너의 PB(Personal Best Record 개인최고기록)가 어떻게 돼?“


오늘 함께 걸은 미국 순례자는 트랙러닝과 트레일 러닝을 즐겨한다고 했다. 나도 러닝을 좋아하기에 신이나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언제부터 달리기 시작했는지, 미국에는 어떤 마라톤들이 있는지. 그리고 마라톤 최고기록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마일로 얘기를 해서 계산이 안 됐다. 친구는 이어 대답했다.


"기록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기록이란 건 여러 컨디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거든. 뛴다는 것, 그리고 그걸 즐긴다는 게 중요하지"


순간 머리를 쾅 맞은 기분이었다. 기록을 물어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답을 들은들 비교 대상만 될 뿐 나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정보였다. 마라톤에 대한 정보를 나눌 때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정보이니 나도 모르게 물어 버렸다. 그가 잘 달리는 사람인지, 못 달리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나? 그 판단을 내가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그리고 그걸 알아서 뭐 하게? ’맞는 말이야.‘라고 대답한 후 한참을 벙쪄 있던 것 같다.

물론 내 질문이 무례하다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들 의례 관심의 표현으로 묻는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이 파생하는 개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달린다는 행위에 내포된 수많은 의미와 가치들을 말살하고 수치화된 결과 하나에 집중하게 하는 질문이다. 그런 계산을 할 의미가 아니라면 사실 나에게는 정말 필요가 없는 정보이다.

기록이 좋으면 분명 칭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보다 못 달린다고 변명하듯 말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달리는 것이 마라톤의 최고의 가치가 되는 것처럼 들린다.


’와 진짜 빠르다. 열심히 했나봐.‘,

’와 살 빠졌네. 다이어트 했나봐.‘

’와 점수가 높네. 공부 잘 하나봐.‘


나는 사회적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저런 말들을 하곤 한다. 의례하는 말인 경우에도 의도치 않게 나는 사회적 검열관과 감시자가 된다. 반대로 저런 칭찬을 들을 때 그곳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과 함께 반대 마음인 죄책감이 함께 생긴다. 가끔은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상황에서 공간이 찌그러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가치말고 더많은 소중한 것들이 존재하는데 자본주의적 언어로 잘 설명을 할 수 없다. 내 지식과 언어 역량의 부족일 수도 있지만 왠지 사회가 그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한다.


’파타타~(Patata, 감자)‘


스페인 친구가 스페인식 사진 찍을 때 외치는 구호를 알려줬다. 치즈, 김치, 스마일 정도만 들어봤는데 감자는 처음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라마다 구호가 달랐다. 독일에서 ’스파게티~‘라고 한다고 하니 이탈리아 친구가 나라를 뺏긴 얼굴을 했다. 어떤 구호가 됐든 사진 찍을 때 구호는 입이 양쪽으로 찢어지는 발음으로 끝나서 미소를 만드는게 보통인데 스페인의 구호는 파타’타‘로 끝나서 다들 턱이 벌어진채로 사진이 찍혔다. 다들 바보처럼 나왔다. 사진 망했다.



혹시... 나 지금 지옥에 갇힌 건가요?

D+78 프리미티보길 8일 차

루트 : Berducedo – Grandas de Salime (약 21km)

포르투갈길을 걷는 한달동안 산, 바다, 도시, 시골을 다 봤기 때문에 북쪽길이 얼마나 다를까했다. 그런데 북 스페인의 아름다운 대자연은 포르투갈길과 완전 색다른 경험을 선물했다. 그리고 북쪽길에서 발걸음만 살짝 틀었을 뿐인데 프리티모길은 또 북쪽길과 완전 달랐다. 일단 고지가 높은 마을들을 지나다니기 때문에 프리미티보 첫 날부터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알베르게들도 고지대에 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산새에 내려 앉은 물안개를 보며 눈을 뜬다. 내가 지금 동화 속에 있는 건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다가도 걷기 시작하면 극기훈련을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묵을 수 있는 마을이나 알베르게가 한정적이어서 오늘 만난 순례자를 매일 만나게 된다는 특징도 있다.

순례자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빈 알베르게에서 눈을 뜬 적이 많다. 그런데 프리미티보길에서 드디어 내가 일어났을 때 아직도 침대에 누워있는 순례자들을 발견했다. 게다가 떠날 채비를 하는 모든 움직임이 나만큼 꿈떴다. 덕분에 나에게도 처음으로 함께 걷는 친구들이 생겼다. 세비야 출신답게 남부 스페인 특유의 여유로움을 가진 순례자와 걷는 것보다 술을 마시고 노는 게 더 즐거운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였다. 내 발걸음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서 걷자마자 헤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내 걸음이 느린 편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느린지는 몰랐다. 오늘 친구들과 함께 출발했는데 걷다보니 무릎 부상 때문에 오늘은 4키로미터만 걷는다는 친구와 함께 걷고 있었다. 분명 나는 내 최선의 걸음 속도였는데 그는 편안한 속도였다. 친구는 곧 자신이 목표로 하는 마을에 도착하였고 나는 계속 걸어나갔다.

프리미티보 길은 단순히 산 몇 개를 지나가서 힘든 게 아니었다. 그냥 아예 평지가 거의 없었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오면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오늘은 역대급 경사였다. 대관령 도로같은 길이 계속이어졌는데 작은 자갈들 때문에 발이 미끄러워 더 힘들었다. 내리막길을 5키로정도 내려온 것같은데 또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카페는 커녕 차도를 지나는 길이라 앉아 쉴 수 있는 곳도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옥에 빠진 건가? 이것도 형벌이라면 형벌일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늦은 시간까지 도착하지 않자 먼저 도착한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그 마을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많았는지 알베르게가 다 찼다고 했다. 나 대신 친구들이 알베르게 예약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조금 고민했다. 이미 너무 지쳐있었고 친구들이 있는 마을 전에도 알베르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순례길에서는 산티아고에 함께 걸은 친구들과 도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친구에게 알베르게 예약을 부탁한다고 말하고 조금 더 힘을내어 걸었다.

이 대관령 도로는 마을까지 계속되었고 무릎과 발이 아파 걷기가 힘들어졌다. 점점 굽어지는 허리를 억지로 지탱하며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걸었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걸으면서까지 친구들과 함께 걷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대관령이 형벌이 아니라 친구들이 나의 형벌인가?

마을에 도착하자 한 식당 앞에이 시끌벅쩍했다. 친구들이 반갑게 환영해주며 내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내 손에 음식과 맥주를 쥐어주었다. 따듯하다. 친구들이 있는 곳까지 오길 잘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








안 마셔. 안 마신다고!!!

D+80 프리미티보길 10일 차

루트 :A Fonsagrada-Ocádavo(약 25km)

아침에 친구가 깨웠다. 더 자겠다고 하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11시였다. 모두가 떠난 방이 고요 했다. 침대에서 내려오려 발을 땅에 디디니 발이 부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온 몸이 아팠다. 거울을 보니 어디서 맞고 온 사람처럼 얼굴도 퉁퉁 부어있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스트레칭을 했다. 오늘은 도착 시간에 연연하지 말고 여유롭게 걷기로 했다. 그동안 친구들을 쫓아가느라 걷는 순간들을 즐기지 못 하며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밤 친구가 준 근육 크림을 바른 덕분에 무릎의 통증은 덜 했지만 하체 전체에 피로감이 느껴졌다. 잠시라도 등산스틱을 짚지 않고 걸으면 힘들었다. 천천히 숲 길을 걷고 있는데 숲 속에 홀로 있던 집 창문 너머로 한 사람이 날 불러 세웠다.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숲 속 한가운데서 날 불러 세울 이유가 없었기에 긴장이 됐다.


‘그냥 무시하고 걸을까? 뛰어야 할 타이밍인가? 배낭이 있어서 속도가 안 날 거야. 아마 금방 날 잡겠지?‘


그동안 열심히 챙겨봤던 범죄 다큐멘터리 장면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혹시 모르니 동영상을 찍을까? 동영상을 찍은들, 나와 함께 사라지면 무슨 소용이지? 급하게 SNS 라이브 방송을 켰다. 최악의 상황에서 내가 실종되더라도 영상을 본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해주겠지. 카메라가 그를 향하도록 한후 배낭에 달려있던 휴대폰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뭐가 급한지 걸어오며 질문을 시작했다.


"커피 마실래?"

"아니 괜찮아.“


"차 마실래?"

"아니.“


"초콜렛 먹을래?"

"정말 고맙지만 괜찮아."


역시나 나를 불러 세울 이유가 없었다. 그는 ’어느 나라에서 왔냐‘, ’어디로 가냐‘ 등 쓸데 없는 질문들을 이어 나갔다. 나는 예약된 알베르게 체크인 시간 때문에 빨리 가야한다고 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내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갑자기 그가 방금 나온 집에 자신의 아내가 있음을 강조하며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은 내 부인이 많이 아파. 너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그와 나눠 주면 좋겠어. 함께 차를 마시며 잠시라도 대화를 나눠 준다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내가 한사코 거절하자 이제 그는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정말 무서웠다. 늦은 오후의 숲 길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배낭을 버리고 달려야 하나. 내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까. 머릿 속으로 여러 대처 방법을 고민했다. 하필 걷던 길이 오르막이었다. 지금 발 상태로 달릴 자신이 전혀 없었다.

두 손을 모아 빌던 그의 시선이 눈에 띄게 튀어 나와있던 나의 휴대폰 카메라로 옮겨졌다. 녹화 중이라는 것을 눈치챈 건지, 내가 연신 거부해서인지, 그는 곧 발걸음을 돌렸다. 나도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지만 그가 갑자기 해머를 들고 쫓아와 내 뒷통수라도 칠까 무서웠다. 빨리 숲을 빠져 나가기 위해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정말 너무하게도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너무 힘들고, 발도 너무 아프고, 속도도 안 나는데 무서워는 죽겠고.

무사히 숲길을 빠져나온 후 한참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의도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무서움이 쉽게 가라 앉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순례길이 대부분 안전했던 걸 자신에게 상기 시키며 계속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안개로 하얗게 물들었다. 고도를 확인하니 900미터가 넘어 있었다. 금새 눈 앞이 뿌얘졌다. 목적지까지는 10키로미터가 남아 아직 몇 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난 할 수 있어. 무섭지 않아.’를 마음 속으로 연신 외쳤다.

완전히 해가 지니 눈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헤드랜턴을 꺼냈다. 눈 앞에 지나가는 안개의 연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두려움을 느낀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하는지 은근히 운치가 있다 싶으며 조금은 신나기 시작했다. 하얀 안개 속을 헤치며 한참을 걸었다. 밤 10시가 넘도록 내가 도착하지 않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친구는 나를 기다렸다가 내가 도착하면 알베르게 문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안심을 하고 조금 더 힘을 내어 걸을 수 있었다.

길은 끝날 듯 끝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다 왔으려나? 몇 번이나 지도를 확인했다. 자정을 30분 남겨 놓고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긴장을 풀었다. 복도에서 잘 준비를 한 후 조용히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조금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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