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y have trod on the Camino – but none have done it in your shoes.
많은 이들이 순례길을 걷지만 아무도 당신의 입장에서 해본 적은 없죠.
- A pilgrim
- 한 순례자가
북쪽길의 대자연은 매일 색다른 감동을 준다. ‘예쁘다’ 정도가 아니라 누가 갑자기 세게 뺨따귀를 때려서 잠깐 숨이 멈추는 느낌의 풍경이다. 초록색이 가득한 바스크 지방의 큰 산을 지나면 석회암 산과 아름다운 절벽이 가득한 칸타브리아 지방이 나오고, 이제 막 도착한 아스투리아는 프라이빗한 곶이 거친 대서양을 감싸 안아 프리이빗 한 해수욕장을 만들고 있었다. 북쪽길을 걸으며 수많은 해변을 지나왔지만 뒤처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차마 물속에 뛰어들진 못했었다. 하지만 오늘 발견한 발로타 해변(Playa de Ballota)을 그냥 지나치는 건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와, 여기가 산티아고다.’
물에 들어가자마자 바다의 온도가 발과 몸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푸르른 대서양의 색깔과 나를 감싼 절벽의 풍경이 마치 동화 같았다. 에메랄드빛의 투명한 물은 내 몸을 그대로 투사시켰다. 몇 시간을 해변에서 머물렀지만 떠나갈 때까지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절경이었다.
북쪽길의 대자연이 매일같이 내 뺨따귀를 때리는 데에 비해 음식은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다. 뭐 그냥 다 아는 맛이다. 오늘도 대충 알베르게 주인이 추천한 가까운 식당에서 점원이 추천하는 메뉴를 아무거나 주문했다. 식전 요리로 가리비 구이가 나왔다.
‘응? 여기도 산티아고인가?’
소스를 한 구운 가리비가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단순한 생선구이에 감자튀김과 샐러드가 담긴 메인 요리도, 디저트로 나온 치즈케이크도 감동적이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은 적은 있지만 뺨따귀를 맞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식당에서 만난 동네사람들과 술 한잔을 하며 오랜만에 시끄러운 밤을 보냈다. 아직 오늘 더 맞을 빰다구가 있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오니 다들 침대에 누워있었다. 방 한쪽 벽면에는 발코니가 있었는데 창문이 다 열려있었다. 추운 밤공기가 들오고 있어 조용히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순례자 무리 중 한 명이 다른 순례자를 가리키며 ‘He wants it open. (친구가 열여 놓으래)’라고 말했다. 그래서 ‘Can I close few of them? (몇 개만 닫아도 될까?)’ 했더니 한숨을 푹 쉰다. 창문 몇 개를 닫으려고 하니 다른 순례자가 ‘Keep the windows open.(창문 열어 놔.)’라고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순례자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얼어버렸다. 여기가 자기 방도 아니고, ‘Is it okay?(괜찮을까?)’ 도 아니고, ‘Please(그래줄 수 있어?)’도 아닌 이 무례함은 뭐지? 맞지도 않은 뺨이 얼얼했다. 'May I ask why?(왜인지 물어봐도 될까?)‘라고 했더니 더워서란다. 그래서 ‘I have hard time sleeping with cold night air though.(나는 밤공기 맞으면 잠 못 자는데)'라고 했더니 들은 채도 안 한다. 그들 무리가 과반수였기에 창문을 열어 둔 채로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마신 술과 발의 통증 때문도 있었지만 그들의 무례함이 기분이 나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중에 얼굴을 마주하면 할 말들을 혼자 머릿속으로 되뇌다 잠에 들었다.
새벽 6시쯤 무리들은 아침 일찍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자고 있든 말든 창문을 다 열어젖히고 큰 소리로 대화를 했다. 어젯밤의 분노를 간직한 채 잠이 든 상태여서 더 짜증이 났다. 신경질적으로 침낭을 머리까지 끌어당겼지만 마치 내가 없는 사람처럼 모든 행동을 시끄럽게 했다. 너무 화가 나 한국말로 ’와 매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나'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침낭을 얼굴 끝까지 뒤집어쓰고 다시 잠에 들었다.
첫 수영, 첫 음주, 첫 블랙리스트
D+64 북쪽길 23일 차
루트 : Pendueles - Llanes (약 16km)
”난 내일 버스를 타고 이동할 거야 "
스코틀랜드(이하 스콧)에서 온 순례자가 말했다. 보통 큰 도시에 들어가기 전 변두리에는 아스팔트길이 길게 이어지는데 걷기에 힘들어서라고 했다. 이를 듣던 독일에서 온 순례자가 지적했다.
”좋은 길만 선택해서 걷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좋지 않은 길도 경험해야 진정한 순례길이지. "
스콧 순례자는 어차피 우리 모두에게는 걸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을 예쁜 길을 걷는 데에 쓰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그리고 어떤 길이든 걷는 행위 자체에서 고통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500년 전 한 순례자가 걷고 있었다고 상상해 봐. 발이 아파. 더 걸으면 부상을 당해서 산티아고에 못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근데 마침 마차가 지나가. 그 순례자는 마차에 안 탈까? 탔을 걸? "
맞는 말이었다. 옛날에도 마차를 얻어 타고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최초의 순례자로 알려져 있는 아스투리아스(Asturias)의 왕 알폰소 2세도 분명 마차를 탔을 것이다. 짐도 하인들이 들었을 것이다. 11세기 사람들은 ‘제대로’ 걷는 법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스콧 순례자의 의견에 더 동의를 했지만 내 순례길은 독일인 순례자가 말하는 시간으로 채우고자 했다. 순례길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었다. 모든 무게를 내 등에 메고, 웬만해선 모든 길을 내 발로 직접 걷고 싶었다. 어느 순간엔 그런 나 자신이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왜 스스로가 만든 ‘제대로’라는 틀에 갇혀서 발의 통증을 인내하고 있을까. 나도 힘들면 버스도 타고, 발이 아프면 당나귀 서비스도 이용하면서 자유롭게 걷고 싶었다.
나는 독일 순례자에게 배낭을 다음 알베르게에 미리 보내는 ‘당나귀 서비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의 옆에 앉아있던 프랑스인 순례자가 조심스럽게 그가 이미 그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 했다. 독일인 순례자는 짐이 가벼운 게 걷는 걸 즐기는데에 도움 된다고 대답했다.
둘은 계속해서 순례길을 경험하는 최선의 방식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이 재미있는 논쟁을 바라보며 남들이 어떻게 걷든, 내가 걸어보지 않은 그 경험을 어찌 감히 평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난 순례자들 중 누군가는 북쪽길이 너무 관광지스럽다고 했고, 누군가는 너무 조용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너무 힘들다고 했고, 누군가는 너무 지루하다고 했다.
순례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순례길에는 정답이 없다.’는 하나의 명제만이 명확해진다. 순례길 초기에는 남들처럼 걸어보는 것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걸으며 깨달았다. 내가 자유롭게 걷지 못하는 게 아니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점심부터 걷는 걸 편해한다는 것을. 내가 남들보다 부족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질문하기 위해 불안을 선택했다는 것을.
순례길을 제대로 걷는 방법에 대한 긴 논쟁의 끝은 매운맛이 나는 야생화를 나눠 먹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순례길 제대로 걷는 법
D+67 북쪽길 26일 차
루트 :Duesos - Priesca(약 15km)
”푸하하하. 얘 로드킬 당한 거 아니야? "
어제저녁 순례자들과 납작하게 찌부러진 빵을 보며 로드킬을 당한 것 같다며 키득키득 농담을 나눴었다. 차들이 뺨을 베어갈 속도로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 안에 갇힌 지금은 그 농담이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분명히 지도를 따라 걸어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차도 중간이었다. 긴 도로 전체가 개구멍 하나 없이 높은 철조망과 가시덩굴로 막혀있어 탈출이 불가능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고가도로 위에 있었고 5미터 아래에는 내가 걸었어야 할 흙길이 보였다. 비상 탈출 사다리라도 있을까 길 주위를 한참을 살폈지만 탈출구는 없었다. 트럭이 날카롭게 가른 공기가 내 몸을 무겁게 밀쳐내며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무서웠다. 그런데 제일 무서운 건 몇 시간 동안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따라 터널을 지나가기로 했다. 차들의 빠른 속도로 인해 갈라진 공기의 굉음이 터널 가득 시끄럽게 진동했다. 날카롭게 갈라진 공기들의 비명 속에서 사람 목소리 하나가 섞여 들려왔다. 목소리를 따라가보니 SOS 긴급전화 기계가 있었다. 다행히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었나 보다. 터널 안에 진동하는 자동차들 굉음에 묻혀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행여나 전화를 끊어버릴까 조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잘 안 들려! 나 갇혔어! 나가는 길이 없어!!!"
상대방도 내 말이 잘 안 들리는 듯했다. 그가 뭐라고 더 말을 했지만 여전히 알아듣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터널에서 힘껏 소리까지 지르고 나니 이곳을 지나갈 자신이 더욱 나질 않았다. 왔던 길을 조금 돌아가 높이 뻗어있는 철조망 앞으로 갔다. 어쩔 수 없다. 여기를 넘어야 한다.
철조망에 발을 올리니 얇은 철사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철사그물을 지탱하는 철기둥을 붙잡고 최대한 힘을 써 반대편 철조망에 올라섰다. 느슨한 철조망이 너무 흔들려 힘을 쓰기가 어려웠다. 어떻게든 다리 하나를 반대편으로 옮겼지만 너무 흔들려 결국은 뾰족한 철가시 위에 앉았다. 레깅스가 찢어져 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지탱할 곳이 없어 일어날 수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바닥에 떨어지는 데에 성공했다. 엉덩이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다음 관문은 무성하게 자란 가시덩굴이었다. 발로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발에 닿지 않는 가시들이 그대로 내 몸을 찔렀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요 녀석들은 발을 떼자마자 제자리로 돌아왔고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작은 가시들의 하찮은 공격들이 계속되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시 철조망을 건너 고속도로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가시덩굴 너머로 러닝 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헬프미이이이!!!!!!!!!(도와주세요오 오오!!!!!!!!!)"
스페인어로 ‘안녕하세요’를 외우기 전에 ‘도와주세요’를 외웠어야 했다. 달리는 사람은 기척이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무선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큰일이었다. 그를 놓치면 언제 다른 사람이 지나갈지 모를 일이었기에 단전에서 모든 힘을 끌어올려 다시 한번 소리쳤다. 다행히 나의 간절함이 닿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는 두께가 있는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덕분에 순례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받은 스트레스와 안도감에 몸에 힘이 빠졌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오늘의 마지막 관문을 향해 발을 옮겼다. 오늘 나는 계속 북쪽길(Camino del Norte)과 프리미티보길(Camino Primitivo) 중 어떤 길을 걸을지 선택해야 한다.
프리미티보길은 순례길에서 처음 알게 된 길이다. ‘최초(Primitivo)의 길’이라는 의미를 가진 프리미티보길은 이름 그대로 순례길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길인데 9세기 경,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 알폰소 2세가 처음 걸었던 길로 알려져 있다. 오비에도에서 산티아고까지 이어진 길로 총 320킬로미터의 거리로 다른 길들에 비해 짧지만 높은 산지대를 지나가기 때문에 ‘짧고 굵은 길’이라고 알려져 있다.
프리미티보길을 선택한다면 내륙의 산 길을 지나가고 북쪽길을 선택하게 된다면 계속 해안길을 지나간다. 많은 순례자들이 프리미티보길을 추천했지만 이미 피로가 많이 쌓인 현재 상태에서 산을 걷다가 몸이 부서질까 걱정되었다. 이제 막 스페인 해변의 아름다움에 빠지기 한 시점에서 다시 해변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웠다.
둘 다 걸어보고 싶었기에 1유로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기로 했다. 처음이라는 의미의 프리미티보는 1이라는 숫자 면을, 북쪽길은 반대 면을 하기로 했다. 1이 나왔다. 미련 없이 프리미티보길로 향했다.
Camino Primitivo 최초의 길
D+68 북쪽길 27일 차
루트 :Priesca-VegadeSariego(약 27km)